[더팩트ㅣ국회=김시형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반도체특별법 주52시간제 예외 조항과 관련해 유연성을 늘리는 타협안을 제시한 데 이어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대 핵심 수출기업의 애로사항을 들었다. "경제인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이 대표는 경제에 이어 외교에서도 '실용주의' 노선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이 대표의 실용주의 이슈 선점 속 정책의 당위성 성립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표는 5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트럼프 2.0 시대 핵심 수출기업의 고민을 듣는다' 종합토론 경청간담회에서 "격랑하는 국제 질서 속 국제통상의 중지를 모아야 한다"며 "국제통상 문제를 해결할 가장 빠른 방법은 일선 기업들과 경제인들의 의견"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날 토론회를 주재하며 경제외교와 통상교섭, 산업정책과 관련한 기업들에게 직접 질문에 나서는 등 기업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경청했다. 이 대표는 앞선 첫 번째 경청간담회에서도 축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임기 당시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뛰어넘을 변화에 대응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며 대미 통상경제·외교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지난달 22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트럼프 시대에서 우리 경제와 산업의 충격을 최소화하려면 실용적인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자동차를 포함한 우리의 수출 주력산업과 무역통상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잘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기업 관계자들은 산업 지원을 비롯해 미국 무역정책 대응을 위해 미국 조야를 설득해줄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토론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반도체 경기 전망과 특히 수출기업에 대한 전망이 상당히 안좋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방향으로 양측 간 협력을 긴밀하게 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토론회 한 참석자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지금 수출도 안 좋고 내수도 안 좋은 상황이라 경제 위기에 대한 당의 공감대를 형성했다"며 "기업들의 반도체 보조금 지원 요구도 있었고 경제 위기를 돌파하려면 통상특위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에 대응할 국회 차원의 '통상특위'를 꾸리자고 제안하며 연일 적극 이슈 선점에 나서는 모습이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멕시코·중국에 관세를 전면 부과한 점을 거론하며 "해당 국가에 공장을 가진 우리 기업에게도 직격탄이다. 국회 통상특위를 만들어 초당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 대표는 지난 3일 반도체특별법 '주52시간제' 예외 조항과 관련한 토론회도 직접 주재하며 총 노동시간의 변동 없이 일을 몰아서 할 수 있게 유연성을 늘리는 타협안을 제시하는 등 실용주의 정책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여당에서는 이같은 이 대표의 행보를 두고 "실용주의 코스프레"라고 비판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전날 "이 대표가 갑자기 매우 자유 시장경제 질서에 친화적인 행보를 시작했다"며 "탄핵정국 이후 본인 지지율이 일정한 박스권에 갇혀 있단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도 "불과 7개월 전에 경제와 기업을 살리기 위해 주 52시간제에 대해 정부여당이 협조를 구할 때 '제도 개악에 절대 협조하지 않겠다'고 했던 이 대표 말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며 "선거용, 방탄용 실용주의 코스프레라는 해석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라고 비판했다.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도 전날 "여당과의 논의 한 번 없이 불쑥 통상특위를 제안하고, 닥쳐올 무언가를 준비하듯 지금까지 보여준 안보관·외교관마저 다급하게 바꾸더니, 급한 마음에 일단 지르고 보자는 심산인 것처럼 보인다"며 이 대표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이 대표의 행보를 두고 섣부른 정책 기조 변화보다 정책의 당위성 성립과 당내 공감대 형성이 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수영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말로만 실용주의를 내세우기보다 '말바꾸기' 지적과 관련한 불신의 꼬리표를 제거하려면 이 대표가 외교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당과 함께 근본적으로 재정립하고 동의받는 게 우선"이라며 "정책 당위성을 획득하지 않으면 대세에 따라가는 듯한 조급증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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