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김시형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반도체특별법의 주요 쟁점인 주52시간제 예외 조항과 관련해 총 노동시간의 변동 없이 일을 몰아서 할 수 있게 유연성을 늘리는 타협안을 제시하며 실용주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조기 대선 가능성 속 중도층 확장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동시에 '집토끼'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대표는 3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세 번째 정책 디베이트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 적용 제외 어떻게' 토론회를 직접 주재했다. 좌장을 맡은 이 대표는 경영계와 노동계 주장의 쟁점을 좁히고 직접 팩트체크에 나서거나 대안 도출을 이끄는 등 적극적으로 주재에 나섰다.
이 대표의 토론회 주재는 지난달 상법 개정 토론에 이어 두 번째다. 이 대표는 지난달 19일 열린 상법 개정 토론회에서 "한 때 '개미'였고 앞으로 되돌아갈 개미 투자자로서 아쉬운 점이 많이 있다. '국장'을 탈출하는 개미들이 많아지고 있는 문제를 고치는 게 국가적 차원에서 필요하다"며 주주 보호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상법 개정안 추진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민생 행보에 드라이브를 걸어 왔다.
이 대표는 이날 토론회에서 "구더기가 무서우니 장을 못 담그는건 안 된다"며 R&D 연구개발자들의 근로시간 유연성을 늘리되 총 노동시간은 유지하는 방안을 타협안으로 제시했다.
이 대표는 "가능하면 노동 시간에 예외를 두지 않아야 좋다고 생각하지만 총 노동시간을 늘리지 않으면서 R&D 고소득 전문가들이 한쪽으로 몰아서 일하게 해달라는 말을 거절하기 어렵다"며 이같이 밝혔다.
당초 민주당은 기존 근로기준법상 예외 제도를 활용하는 방안으로 충분하다며 반도체 산업에만 주52시간제 예외를 둘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반도체특별법과 관련해 "필요한 조치를 과감하고 전향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기류가 다소 달라졌다. 진성준 정책위의장도 전날 SNS에 "예외제도를 활용하기 곤란한 실제적인 사유가 있다면 현행 제도를 수정·보완할 용의가 있다"고 적었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후 민주당 고위전략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반도체특별법의 방향성에 대해 "이 대표가 토론회에서 재계와 노동계의 입장을 정확하게 정리했으니 당내 분석 과정을 한 번 더 거치고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의 이같은 행보는 최근 이어지는 실용주의 태도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 대표는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서 '탈이념'과 '탈진영'을 강조하며 "이념과 진영이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현실적 실용주의가 위기 극복과 성장 발전의 동력"이라는 메시지를 냈다.
이어 자신의 '1호 공약'인 기본소득 정책도 보류했다. 이 대표는 "지금은 경제적 안정과 회복 그리고 성장 문제가 가장 시급한 상황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또다른 대표 공약인 전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도 추경 편성을 전제로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 대표는 지난달 31일 "만약 민생지원금 때문에 추경을 못하겠다면 민생지원금을 포기하겠다"며 경기 회복을 위한 추경 편성을 정부에 재차 촉구했다.
이 과정에서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도 꺼냈다. 이 대표는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가 아니겠냐"며 "회복과 성장이 이 시대의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과제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날 토론회에서도 '전체 합의'보다 '우선 처리'를 강조하는 합리적 대안을 제시했다. 이 대표는 "합의되는 것부터 먼저 처리하고 합의되지 않는 건 나중에 하는 것도 방법이 아니겠나"라며 "모든게 합의된 후 한꺼번에 처리하기보다 불가피한 일은 합리적 선에서 타결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같은 실용주의 기조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조기 대선 가능성 속 중도층 공략에 효과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집토끼' 이탈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가 여론조사 정체 국면 속 응급조치의 일환으로 유연성과 실용주의를 꺼냈지만 정작 당내 지지층의 반발을 살 우려가 있다"며 "중도층 지지율을 얻으려다 진보층 지지세가 흔들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책 기조 변화와 공약 보류가 잇따르면 당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박 평론가는 "자꾸 정책을 바꾸면 이 대표의 리더십 뿐 아니라 민주당도 이재명 사당화에 대한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이는 당 전체의 신뢰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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