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수첩] 감동도 결말도 없는 국회라는 무대
입력: 2025.01.14 05:00 / 수정: 2025.01.14 05:00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해 현안질의를 진행 중인 가운데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박헌우 기자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해 현안질의를 진행 중인 가운데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박헌우 기자

[더팩트ㅣ국회=이하린 기자] "누가 죄인인가."

뮤지컬 '영웅'의 메인 넘버에선 이 노래 가사가 공연장에 울려 퍼진다. 이 노래는 진정한 책임 소재를 묻는 메시지를 던진다는 점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웅장하고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 정치부 인턴 기자로 현장을 직접 경험한 뒤 국회의원들을 향해 이 물음을 던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회 본회의장은 반원형으로 배열된 300석 의석이 중앙 발언대를 중심으로 배치돼 있다. 극장 발코니석 같은 2층 방청석에서 1층 의원석을 내려다보면, 화려한 뮤지컬 무대를 방불케 한다. 뮤지컬로 치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무료 공연'인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 목격한 국회 현실은 끊임없는 갈등과 대립, 책임 회피로 얼룩져 있었다. 진정으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죄인일까.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는 혼란스러운 뮤지컬의 한 장면 같았다. 이날은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혐의 및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관련 긴급현안질문'이 진행됐다. 국회의원이 정부와 관계 기관을 상대로 국민을 대신해 따져 묻는 중요한 일정이었다. 국민적 관심사인 두 현안에 대해 의원은 날카로운 질문을, 정부는 성실하게 답변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책임감이나 엄숙함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극 중 서로의 대사를 방해하는 조연들처럼 여야는 끊임없는 고성과 야유로 대부분의 시간을 낭비했다.

이날 본회의장은 뮤지컬 무대처럼 각기 다른 배역이 존재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과 탄핵소추안을 중심으로 공격과 방어를 이어갔고, 야당은 윤 대통령의 신속한 체포와 수사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 무대에서 주인공은 없었다.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며 소란만이 반복됐다. 특히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질의할 때는 소음이 최고조에 달했다. 마치 음향 시설이 고장 난 공연장처럼 질문과 답변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고성과 야유로 장내는 아수라장이 됐다. 원색적인 욕설도 들렸다.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안 표결에 대해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박헌우 기자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안 표결에 대해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박헌우 기자

사실 이런 혼란스러운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 때도 유사한 '난장판'을 목격했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고등학생 20여 명이 방청석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좋은 뮤지컬이 관객에게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듯, 이들도 국회라는 무대에서 품격 있는 토론과 책임감 있는 결정을 기대했을 것이다. 교과서에서 배운 '국회의원의 품격 있는 모습'을 말이다. 무대 위 배우들은 관객들의 기대를 아는지 모르는지, 책임감 있는 연기를 보여주기는커녕 또다시 고성과 야유를 이어 나갔다. 점점 실망감으로 일그러지는 학생들의 표정을 보며 부끄러움을 감출 길이 없었다.

뮤지컬에서 대부분의 갈등이 클라이맥스로 이어지고, 극적인 해소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국회라는 무대에서는 갈등 해소의 감동도, 이렇다 할 결말도 없다. 무의미한 대립만이 반복된다. 지루하고 따분하기 짝이 없다. 배우들은 무책임한 태도로 '정치'라는 공연의 신뢰가 무너뜨리고 있다. 관객들이 아직 공연장을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무르는 이유는 단지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뮤지컬의 성공 여부는 배우들의 열연에 달려 있다. 정치라는 무대도 마찬가지다. 더 나은 공연을 위해선 배우인 정치인들의 품격 있는 연기, 즉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턴 기자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겠다. 이 무대를 감시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진정한 무대를 위해서.

underwater@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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