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1990년 민주화 이후 극심 식량난
'시장경제 전환' 과정서 체제 붕괴 우려
韓, 인도·정무적 차원 '쌀 1000톤' 결정
외교부는 매년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공개한다. <더팩트>는 1991년 몽골이 한국에 긴급 식량 원조를 요청했던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했다. 몽골은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로는 최초로 한국과 수교한 국가였다. 몽골 상공부 장관은 주몽골 대사에게 한글로 된 자필 편지를 보내며 도움을 촉구했다. /임영무 기자 |
외교부는 매년 30년이 지난 기밀문서를 일반에게 공개합니다. 공개된 전문에는 치열하고 긴박한 외교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전문을 한 장씩 넘겨 읽다 보면 당시의 상황이 생생히 펼쳐집니다.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 붙이면 영화가 되듯이 말이죠. <더팩트>는 외교부가 공개한 '그날의 이야기'를 매주 재구성해 봅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외교비사(外交秘史)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감춰져 있었을까요? <편집자 주>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몽골은 1991년 1월 한국에 '식량 원조'를 긴급히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양국 외교 관계가 수립된 지 약 10개월 만의 일이었다. 당시 몽골은 민주화 혁명을 통해 시장경제 체제 진입을 앞두고 있었는데, 식량난 해결 여부에 체제 전환의 성패가 달린 상황이었다. 이에 한국은 인도적 차원과 정무적 판단에 따라 쌀 1000톤을 몽골에 지원하기로 했다.
주몽골대사관은 1991년 1월 23일 몽골 외무성으로부터 '2월 15일 음력 설 전까지 긴급 식량 원조를 부탁한다'는 요청을 받았다. 애초 몽골은 소련과 북한의 식량 지원으로 식량난과는 거리가 먼 국가였다. 하지만 소련의 붕괴 조짐과 북한의 식량 위기에 따라 몽골 역시 쌀, 식용유, 설탕 등 식자재 품귀 현상을 겪게 됐다.
주몽골대사관은 "한국 쌀을 몽골인 최대 명절인 음력 설 전까지 단 몇천 톤이라도 지원해 준다면 한·몽 간 각종 협력 사업 추진에 유익할 것"이라며 정부의 적극적인 검토를 요청했다. 때마침 몽골의 상공부 장관은 한글로 된 자필 편지를 주몽골대사관에 보내며 식량 지원을 거듭 촉구한 상황이었다.
존경하는 대사 각하.
우리 신정부가 나라의 경제를 중앙계획체제로부터 시장체제로 이행시키며 개방 경제 정책 실현을 위한 철저한 구체적 시책들을 실시했다는 것을 당신께서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몽골은 다년간 소련과 동구 나라들과 경제 무역 관계를 갖고 국민 경제 및 중요 상품에 대한 주민의 수요를 이 나라들로부터 충족시켜 왔습니다. 오늘 우리의 주요 대상국들의 사회와 경제가 심한 위기에 처해 나아가서 이는 우리나라 경제 위기를 더 심화시키고 일용 삼품 시장 균형을 현저히 상실케 했습니다.
이로 인해 주민의 수요 즉 식량 부족이 생기고 이것이 앞으로 심화되면 경제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는 정치 정세를 파괴로 이끌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습니다.
몽골 상공부 장관이 1991년 1월 18일 주몽골 대사에게 보낸 자필 한글 편지. 당시 몽골의 식량난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체제 전환 실패에 따른 위기감이 얼마나 고조됐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외교부 제공 |
존경하는 대사 각하는 우리나라가 자연, 경제, 지리적으로 보아 매우 불리한 환경에 처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것으로 시장 경제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우리 국민의 지향과 마음을 불안케 하고 있는 위의 형편을 고려해 존경하는 대사 각하를 통해 음력 설 전으로 가능할 식량 원조를 제공해 줄 것을 우리 정부와 국민의 명의로 바라는 바입니다.
우리의 이 제의에 최대의 인도주의적 마음으로 접해 접수하리라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존경하는 대사 각하와 귀국 국민의 좋은 일에 대해 우리 국민은 기쁜 마음으로 대하고 깊이 간직하리라는 것을 확신성 있게 표시하는 바입니다.
한국은 몽골의 식량 원조를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원조는 불가능해 보였다. 정부 원조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산하 잉여농산물 처리위원회(CSD) 규정에 의해 처리되는데, 이해 당사국들의 사전 협의를 거쳐 CSD의 승인을 받는 식이었다.
하지만 미국 등 농산물 수출국들은 잉여농산물의 무상 또는 현물차관 형태의 원조가 국제 교역 질서를 교란한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같은 이유에 따라 한국 정부의 1990년 5월 필리핀 쌀 차관 계획, 1990년 8월 불가리아 쌀 무상원조 계획 등이 줄줄이 취소된 바 있었다.
다만 민간 차원의 지원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이에 정부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산하 '사랑의 쌀나누기 운동본부'와 협의해 최대 300여톤의 쌀을 몽골에 제공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 내에서는 '우리와 수교한 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라는 점을 감안, 최소 1000톤의 쌀을 무상원조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한국 정부의 몽골 지원 결정은 악수라기보다 호수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몽골 지원 약 5개월 뒤 몽골을 방문한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부 장관은 몽골에 △900만달러 상당의 식량 지원 △640만달러 상당의 기술 지원 △1000만달러 현금 무상 지원 등을 약속했다. /외교부 제공 |
정부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댄 끝에 정부 지원이 가능한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FAO 규정에는 '정부 차원의 소량 원조는 CSD에 사후 통보로 족함'이라는 단서가 달려 있었다. 여기서 '소량'의 정의를 두고 쌀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합의된 사항이 없었다. 다만 관례상 1000톤 미만일 경우 CSD에 사후 통보하는 식이었다.
이에 정부는 FAO 규정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미국 등의 찬성을 받아내야 한다는 점을 고려, 지원 규모를 '정부 차원 745톤-민간 차원 255톤' 등 총 1000톤으로 결정했다. 다만 수송비는 몽골이 전액 부담하기로 했다.
한국의 몽골 원조 약 5개월 뒤,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부 장관은 몽골을 방문해 "몽골의 민주화와 시장경제 전환 노력을 지지한다"며 "성공을 위해 가능한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베이커 장관은 긴급 식량 원조 차원에서 몽골에 900만달러 상당의 소맥과 밀가루 3만톤을 무상 원조하고 의료장비도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몽골의 '정부 재산 사유화 조치'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2년간 640만달러 상당의 기술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뿐 아니라 베이커 장관은 몽골의 경제 회복과 관련해 1000만달러의 현금을 무상으로 지원하도록 미국 의회에 요청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회 승인만 떨어진다면 '최단 시일 내에' 이를 즉각 몽골에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개발은행(ADB), 세계은행(WB) 등 국제 금융기구를 통한 측면 지원에도 나서겠다고 밝혔다.
특히 베이커 장관은 "몽골 지원을 위해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와 더불어 긴밀히 노력 중"이라며 "향후 2개월 이내에 미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가 몽골의 경제적 지원을 위해 합의체를 구성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결과론적이지만 한국 정부의 몽골 지원 결정은 악수라기보다 호수에 가까웠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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