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 대대행 체제 속에서 신년 맞아
트럼프 출범 '무방비'...APEC 준비도 차질
"계엄 정국 극복, 초당파적 정책 수립해야"
한국 외교가 초유의 '최상목 대대행' 체제에서 신년을 맞는다. 올해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이 예고돼 있다. 정국 수습 전까지 한국 외교 표류는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왼쪽부터)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임영무 기자 |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한국 외교가 '대행의 대행' 체제에서 신년을 맞는다. 올해는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라는 불확실성의 파고가 휘몰아치는 시기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굵직한 현안도 산적하다. 대대행 체제로는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기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상 외교 역시 상대국에 요청하기도, 제안받기도 애매한 처지다. 권한대행이 갖는 무게감은 아무래도 대통령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1인 3역의 권한대행이 외교 현안에 적극 대응하기에도 물리적 어려움이 있다. 이에 정국 수습 전까지 한국 외교의 표류는 당분간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 외교의 키는 지난달 27일부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쥐게 됐다. 최 권한대행은 권한을 이양받은 직후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뒤 곧바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했다. 28일에는 외교·안보 분야 업무보고 외에 공식 일정을 갖지 않았다.
정부는 초유의 '대대행' 체제 속에서 우방국을 중심으로 외교 정상화에 힘쓰는 모양새다. 최 권한대행은 이르면 1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계엄 이후 국내 정세를 설명하고 한미 동맹을 재확인할 전망이다. 또 비슷한 시기 한국을 찾는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은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대면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비상계엄 여파로 미뤄졌던 제4차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제1차 NCG 도상연습(TTX)을 미국과 재가동하기로 했다. 앞서 미국은 계엄 당시 주한 미국대사의 연락을 한국 외교부가 받지 않은 점, 핵심 병력을 주한미군사령관과의 소통 없이 이동시킨 점을 들어 NCG 회의 등을 잠정 연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우방국과의 정상화 국면은 다행스러운 대목이지만 '대대행' 체제의 성격상 적극적인 외교를 펼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후 '한덕수 체제'의 안정성을 각국에 전달했던 정부는 약 2주 만에 '최상목 체제'를 다시 설득하는 처지에 놓였다. 한국이 상대국에 먼저 다가가기도, 상대국이 한국에 먼저 다가오기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이러한 우려의 현실화는 수순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일례로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내년 1월 20일 출범을 앞두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측과 우리 정부의 소통은 제로(0)에 가깝다. 지난달 한미 외교차관 회담을 위해 미국을 찾았던 김홍균 외교부 제1차관도 '트럼프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 채 돌아왔다. 정부는 트럼프 취임식에 공식 초대조차 받지 못한 상황이다.
한국이 탄핵 정국에 고립된 사이, 북미 정상회담 재개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코리아 패싱'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 2019년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하는 모습. /뉴시스 |
더 큰 문제는 트럼프 당선인 측이 한국에 대해 '무관심'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트럼프 당선인 측은 한국의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등에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트럼프 당선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여러 차례 입에 올릴 뿐이었다. 정부가 블링컨 국무부 장관 방한, NCG 회의 재개 등을 앞두고는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바이든 행정부'에 국한한 문제다.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은 글로벌 통상전쟁의 신호탄일 뿐 아니라, 한미 방위비분담금 재검토와 주한미군 철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또 한국이 탄핵 정국에 고립된 사이, 북미 정상회담 재개 움직임이 감지된다면 '코리아 패싱'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18일 외신 간담회에서 "북미 협상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며 북미 회담을 이례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같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정부가 감당해야 할 외교적 현안도 첩첩산중이다. 당장 올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 예고돼 있다. 현재로서는 한일 양국이 국교 정상화 관련 사업을 준비 중이지만, 향후 정치적 상황이 변수다. 윤 대통령의 탄핵과 정권 교체 여부에 따라 대일 외교 기조가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경주에서 열릴 APEC 정상회의는 안갯속이다. APEC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위원장은 APEC특별법에 따라 국무총리로 규정돼 있다. 이에 따라 한덕수 총리가 준비위원장을 맡았지만 탄핵으로 인해 그 권한을 누가 이어받는지 논란이 일었다. 정부는 최 권한대행이 준비위원장을 맡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최 권한대행이 대통령직과 국무총리직, 기획재정부 장관직까지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APEC 정상회의까지 챙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APEC 정상회의는 올해 11월 예정돼 있지만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와 조기 대선 등은 5~6월 중에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조기 대선이 개최되더라도 APEC 의장국 지위는 변함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탄핵 정국을 극복하기 전까지 APEC 정상회의를 정상적으로 준비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진행될 국가 간 양자 회담과 관련 의제 설정도 현재로선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전망된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은 "국제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외교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계엄 정국을 빠르게 넘어야 하고, 새 정부를 구성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새로 출범하는 정부는 국제 정세를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하고, 진영에 치우치지 않는 초당파적인 외교·안보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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