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않겠다" 정치 재기 시사
약한 세(勢)와 기반 등 난관도 많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16일 취임 5개월 만에 직을 내려놨다. 한 전 대표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의 변을 말하는 모습. /박헌우 기자 |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두 번째 퇴진이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직을 내려놨다.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이틀 만이다. 거세게 사퇴를 요구해 온 친윤계를 중심으로 한 사실상 '축출' '탄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년 전 집권당 구원투수로 화려하게 정계에 발을 들였던 그는 총선 패배라는 파도에 휩쓸린 이후 또다시 시련을 겪게 됐다. 재차 '자연인'이 된 그는 향후 진로를 밝히지 않고 휴지기에 들어갔다. '정치인 한동훈'으로 돌아올까.
◆의미심장한 "포기 않는다"…정치 행보 의지
한 전 대표는 1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고위원들의 사퇴로 최고위원회가 붕괴돼 더 이상 대표로서 정상적인 임무 수행 불가능해졌다"라며 "당 대표직을 내려놓는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이후 빗발치는 사퇴 요구에도 "직무를 수행할 것"이라며 일축했지만, 친한계로 분류되는 장동혁·진종오 최고위원을 포함한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전원이 사퇴하면서 버틸 동력을 완전히 잃었다.
한 전 대표는 보수층을 향해 사과의 뜻을 표하면서도 "우리 당이 배출한 대통령이 한, 불법 계엄을 막아냈다.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켰다"라며 탄핵의 대의명분을 강조했다. 또한 윤 대통령이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을 거부함에 따라 탄핵이 불가피했다는 점도 부각했다. 한 전 대표는 "탄핵이 아닌 이 나라에 더 나은 길을 찾아보려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탄핵 찬성에 대해 "여전히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국회를 나서며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박헌우 기자 |
12·3 비상계엄 사태를 두고 불법이라는 그의 인식은 분명했다. 계엄 선포 직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는 비판의 연장선이다. 대통령의 잘못을 두고만 보는 것은 보수의 정체성과 규범성의 결여로 이어진다는 우려의 시각이 짙어 보인다. 보수와 극우의 선을 가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한 전 대표는 부정선거 음모론자, 극단적 유튜버를 거론했는데 이들이 보수의 가치와 동떨어진 세력이라는 견해를 명확하게 드러낸 것이다.
한 전 대표는 돌연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겨냥했다. 그는 "계엄이 잘못이라고 해서 민주당과 이 대표의 폭주와 범죄 혐의가 정당화되는 것은 절대 아니"라며 "이 대표 재판의 타이머는 멈추지 않고 가고 있다. 얼마 안 남았다"라고 했다. 잘못된 계엄을 일으킨 윤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만 물었을 뿐 야권에 동조한 게 아니라는 것으로 읽힌다. 즉, 보수의 '배신자'가 아니라는 의중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과 차별화와 탄핵의 당위성, 보수의 정신을 강조한 한 전 대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지지자들과 만나 "여러분을 지키겠다" "포기하지 않겠다"라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회견문과 지지자들을 향한 메시지 곳곳에서 정치 복귀를 시사하는 뉘앙스가 풍긴다. 헌법재판소(헌재)의 판단이 최대 변수다. 정치권에서는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소추를 인용하면 치러질 조기 대선 국면에서 한 전 대표가 정계에 복귀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치 기반·친윤 견제·검사 출신 등 난관 수두룩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과 당내 주류인 친윤계의 대척점에 선 인물로 굳혀졌다.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켰던 '한동훈 사살설·체포설'이 나올 정도로 '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사건 및 의혹, 의대 정원 증원 문제 등을 두고 대통령실과 각을 세웠던 한 전 대표다. 이에 더해 8년 전 아픔을 되풀이한 탄핵으로 보수층에 소위 '찍힌' 상태다. 사퇴의 변에서 보수층을 달랜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한 대표는 정치 기반이 약했다. 관료로 지내오다 정치권에 발을 들인 지 고작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원외 인사라는 한계도 뚜렷했다. 이번 탄핵을 계기로 친한계의 당내 입지는 좁아졌다. 한 전 대표의 이탈로 구심점마저 잃었다. 심지어 탄핵 가결 전후로 일부 친한계 의원들이 이탈하는 듯한 모습마저 보였다. 한 전 대표가 재야에 머물면서 가뜩이나 약한 정치 기반과 세를 불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중론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국회를 나서며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박헌우 기자 |
검사 출신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의구심과 불만도 크다.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임기 반환점을 돌았던 지난달에 20%대에 머무는 수준에 그쳤다. 계엄 사태 이후엔 더 떨어졌다. 물론 의회권력을 장악한 거대 야당이 정부·여당을 집중 견제한 측면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정치 경험이 부족한 인물에게 중대사를 맡기는 것에 대해 주저할 가능성이 있다. 한 전 대표도 역시 공직 생활 대부분을 검찰에서 보냈다.
친윤계의 견제도 불가피하다. 한 여권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친윤계가 사사건건 부딪쳤던 한 전 대표의 정치 재기를 도울 가능성은 희박하다"라며 "대통령 탄핵의 책임을 물어 쫓아내듯 내보낸 한 전 대표에게 최소 몇 달 만에 손을 내민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두터운 열성팬을 갖고 있다. 결정적으로 윤 대통령 탄핵 가부의 향방을 갈랐다. 많은 민심을 얻었다. 중도층까지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명분과 토대로 여겨진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 전 대표가 계엄 사태 이후 오락가락한 태도 변화를 두고 지도력과 정치력의 한계를 보인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한 전 대표는 계엄 사태 해제 이후 윤 대통령 탄핵안 부결에 동의했다. 그런데 하루 만인 지난 6일 "조속한 집무정지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담화 이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질서 있는 퇴진을 추진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퇴진을 거부하자 한 전 대표는 다시 '탄핵 찬성' 의견을 냈다.
현재로서는 한 전 대표의 정치 복귀 여부는 불투명하다. 다만 한 전 대표는 총선 패배 이후 정치권에서 물러났을 때 외부에서 찍힌 사진 하나로 화제가 될 정도로 스타성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결국 그를 원하는 민심의 세기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권 원외 인사는 "집토끼만 바라본 친윤에 대한 민심은 한정적"이라며 "내란 수사나 헌재 판결에 따라 최근 일련의 일이 재평가된다는 전제 하에 한 전 대표에 대한 당심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