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혐의 부정 위해 中 끌어들여
중국 발끈..."깊은 놀라움과 불만"
시진핑 11년만 방한? 물거품 우려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한중 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윤 대통령은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개인의 범죄 혐의를 부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중국을 끌어들였다. 계엄 사태에 줄곧 침묵했던 중국은 "깊은 놀라움과 불만을 느낀다"고 발끈했다. 이로써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11년만 방한도 어렵게 됐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대통령실 제공 |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한중 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외국인 간첩을 야당의 비협조로 처벌할 수 없어 계엄을 선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해당 외국인의 국적을 중국이라고 밝혔다. 개인의 범죄 혐의를 부정하기 위해 특정 국가를 끌어들인 셈이다. 외교적 결례를 넘어선 파국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윤 대통령은 녹화된 대국민 담화에서 "지금 거대 야당은 국가 안보와 사회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며 "예를 들어 지난 6월 중국인 3명이 드론을 띄워 부산에 정박 중이던 미국 항공모함을 촬영하다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달에는 40대 중국인이 드론으로 국정원을 촬영하다 붙잡혔다"며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형법의 간첩죄 조항을 수정하려 했지만 거대 야당이 완강히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적을 밝히지 않더라도 주장을 개진하는 데 문제는 없었지만, 윤 대통령은 굳이 '중국'이라는 특정 국가명을 언급했다. 문제는 해당 발언이 윤 대통령 자신의 내란죄 혐의를 부정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것이다.
나아가 윤 대통령은 "망국적 국헌 문란 세력들이 나라를 지배한다면 미래 성장 동력은 고사될 것이고, 중국산 태양광 시설들이 전국 산림을 파괴할 것"이라며 중국을 재차 끌어들였다.
한국의 계엄 사태에 말을 아끼던 중국 외교부는 발끈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한국 측의 언급에 깊은 놀라움(意外·뜻밖)과 불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측이 내정 문제를 중국 관련 요인과 연관 지어 이른바 '중국 간첩'이라는 누명을 꾸며내고, 정상적 경제·무역 협력을 먹칠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이는 중한 관계의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에 이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마오 대변인은 또 윤 대통령의 '중국산 태양광 시설' 언급과 관련해선 "중국의 녹색 산업 발전은 세계 시장의 수요와 기술 혁신, 충분한 경쟁의 결과"라며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글로벌 환경 거버넌스 개선에 대한 중요한 공헌이기도 하다"고 답했다.
2015년 이후 9년 만에 열렸던 한중 외교안보 대화. 이러한 과정의 끝에는 시 주석의 방한이 있을 것으로 전망됐지만, 윤 대통령의 실언으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왼쪽부터) 장바오췬 중국 중앙군사위 국제군사협력판공실 부주임,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 김홍균 외교부 1차관, 이승범 국방부 국제정책관. /외교부 제공 |
약 3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중 관계는 긍정적인 변곡점을 맞는 듯했다. 윤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지난달 페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2년 만에 정상회담을 가졌다.
당시만 하더라도 양국 정상은 서로 방한과 방중을 제안했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이에 따라 시 주석이 내년 11월 경주에서 열리는 APEC에 참석해 11년 만에 방한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처럼 양국 관계가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건 외교 각급 채널의 숱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양국은 한중 외교장관 회담(5월 13일), 한중일 3국 정상회의(5월 27일), 한중 외교안보 대화(6월 18일), 한중 외교차관 전략대화(7월 24일) 등 다양한 고위급 교류를 거쳤다. 특히 6월 있었던 한중 외교안보 대화는 2015년 이후 9년 만의 일이었다.
이러한 과정의 끝에는 시 주석의 방한이 있을 것으로 전망됐지만, 윤 대통령의 실언으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욱이 북한에 대한 중국의 역할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앞서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의 인권 문제, 도발 등과 관련해 중국의 역할을 촉구했다. 지난 6월 한중 외교안보 대화에서는 탈북민 강제 북송에 대한 우려가 전달됐고, 지난 9일 한미일 북핵 고위급 협의에서는 3국이 중국의 건설적 역할에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번 윤 대통령의 발언에 따라 중국과의 외교채널이 정상 가동되기 어렵다는 해석이 나온다.
js8814@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