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병원서 쫓겨나 다시 관저로
직원·교민 패닉...극단적 선택 결심도
선원 출신 교민과 탈출, 20명 태국行
외교부는 매년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공개한다. <더팩트>는 1975년 4월 30일 사이공 함락에 따라 월남(남베트남)을 탈출했던 대사관 직원들과 교민들의 철수 과정을 김창근 서기관의 수기를 통해 재구성했다. /임영무 기자 |
외교부는 매년 30년이 지난 기밀문서를 일반에게 공개합니다. 공개된 전문에는 치열하고 긴박한 외교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전문을 한 장씩 넘겨 읽다 보면 당시의 상황이 생생히 펼쳐집니다.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 붙이면 영화가 되듯이 말이죠. <더팩트>는 외교부가 공개한 '그날의 이야기'를 매주 재구성해 봅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외교비사(外交秘史)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감춰져 있었을까요? <편집자 주>
☞<상>편에 이어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1975년 5월 1일. 보네가 아침 거리를 가져왔다. 밥과 김치다. 먹는 둥 마는 둥 물만 마셨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그저 우울하다. 보네가 불란서 대사관 1등 서기관이 온다고 했는데 보이지 않는다. 보네가 돈을 노리고 거짓말을 한 건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병원에 모인 대사관 직원은 9명, 교민은 76명이었다.
일본 대사관 측에서 우릴 만나러 왔다. 도움을 주려는 걸까. 아뿔싸, 일본 참사관의 말이 충격적이다. 우리가 모두 북에 끌려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더니 마지막 선물이라며 자기 볼펜을 건넸다. 모두 말이 없었다. 절망에 허탈에 자포자기였다. 마침 중공대사관 선발대가 근처에 집결했다고 한다. 머지않아 북괴도 올 거란 소리다. 하늘도 우릴 버린 걸까.
탈출해야 했다. 모두 머리를 맞댔다. 고민 끝에 병원 구급차 한 대를 구해보기로 했다. 어제 물과 담배를 건넸던 의사를 찾아갔다. 도와달라 호소했다. 기다려 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희망을 걸어도 되는 걸까. 그때 병원장을 만났던 대사관 직원이 타박타박 걸어왔다. 병원에서는 우리를 보호할 의무가 없다고 했단다. 북베트남군이 이곳으로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모두 죽은 목숨이었다.
놈들에게 끌려가 이북에서 고초를 받느니 죽는 게 나았다. 북괴는 나에게 대남 방송을 시킬 것이다. 그 방송을 듣는 아내의 마음은 얼마나 괴로울까. 아니다. 놈들에게 협조하고 훗날 탈주할 기회를 엿보자. 간첩으로 남파돼 한국에서 자백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내 아들딸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함께 LST에 탈 걸 그랬다. 염치 불구하고 헬리콥터에 오를 걸 그랬다. 왜 이렇게 눈물이 흐를까. 낡은 창고가 보인다. 들어가서 눕자. 면도날로 동맥을 끊고 가만히 누워있자.
그때 병원 구급차를 문의했던 의사가 돌아왔다. 차량 제공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절망스러웠다. 그러면 차라리 먹고 죽을 수 있는 약을 달라고 했다. 의사는 난색을 보이며 고민에 빠졌다. 그러더니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오후 4시 30분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김창근 서기관은 1975년 5월 2일 불란서(프랑스) 병원 Grall hospital에서 밤을 지새우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당시 김 서기관의 수기를 살펴보면 그의 심경이 얼마나 복잡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외교부 제공 |
대사관 직원들에게 향했다. 나를 보내 달라고 했다. 이렇게 모여 있다간 떼죽음 당할 것 아닌가.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말을 하는 나를 보니 괴로웠다. 하지만 그 순간 병원 수위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환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5분 내로 병원을 떠나라는 것이었다. 의사와의 약속까지 30분은 더 남았다. 곧장 의사에게 달려가 사정을 말했다. 의사는 어두운 표정으로 집에 숨겨주는 일은 어렵게 됐다고 했다. 자기 아내가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대신 환자로 위장한다면 병실에 숨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접수처로 가라고 일러줬다.
접수처에 도착했다. 인상이 좋지 않은 청년 대여섯이 보였다. 이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분위기가 묘했다. 접수하는 게 맞는 걸까. 갈팡질팡하는 사이, 보네가 보였다.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있었다. 보네에게 다가갔다. 보네는 우리 대사관에 불란서 깃발을 걸고, 불란서 경비원 2명을 세우면 북베트남군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일단 병원도 떠나야 했던 상황이었기에 그렇게 다시 대사관으로 돌아갔다.
월남의 패망을 기점으로 대사관 탈출, 미국의 최루탄 공격, 병원 도피, 대사관 복귀까지. 사람들은 모두 지쳤고 패닉에 빠졌다. 질서도 엉망이었다. 아무 곳에나 가래를 뱉거나 주방 음식을 아무렇게나 먹어대기 시작했다. 우리를 바라보는 교민들의 눈에서는 신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대로 무기력할 수는 없었다. 저녁을 마치고 전체 회의를 열었다. 사람들을 조 단위로 묶고 조장을 임명하기로 했다. 또 매일 2명씩 2시간마다 대사관 주변 경비를 서도록 했다. 주방은 담당자 외 절대 출입 금지였다. 1인당 배당 음식은 하루 두 끼로 정했다.
5월 2일. 어느 교민이 BBC 월남 방송을 틀자 박정희 각하의 성명 발표가 이어졌다.
"월남에 어떤 형태의 정부가 수립되던 승인할 용의가 있다."
다행이었다. 한국으로서는 북베트남을 인정한 만큼 우리가 받을 위협도 크지 않았다. 북베트남 포고령에도 '미국인을 제외한 외국인 재산과 생명은 보호한다'고 적시돼 있었다. 그때 불란서 경비원 2명이 뛰쳐올라왔다. 관저 일대 주민은 철수해야 한다는 가두방송을 들었다는 것. 보네에게 연락해 봤다. 보네도 그렇게 들었다며 우선 대사관 직원들을 교민회관으로 피신시키자고 했다.
교민회관에 도착했다. 교민 16명 정도가 있었다. 저녁을 마치자 교민 1명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는 내일 아침 중국인 트럭을 타고 락자(Rach Gia)를 경유, 배편으로 태국에 가겠다고 했다. 배편이 없다면 걸어서 캄보디아로 탈출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동행하겠느냐고 물었다. 직원들을 모아 탈출 의향을 물었다. 모두 위험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 서기관이 탔던 차량 뒤로는 북베트남군(베트콩)을 태운 트럭이 계속해서 쫓아왔다. 하지만 이후 별다른 언급이 없는 점을 감안하면 큰 일은 아닌 듯하다. 교외에는 전쟁 중 사용하던 장갑차 등이 늘어서 있었고 시체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외교부 제공 |
5월 3일. 락자로 간다는 교민은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깊어졌다. 그때 인상이 험악한 교민 3명이 지도를 펼친 채 수군대고 있었다. 슬그머니 다가가 계획이나 한번 들어보기로 했다. 이들은 자동차를 타고 롱하이(Long Hai)에 도착, 태국으로 빠진다고 했다. 검문을 통과해야 하지만 오는 5일까지 '피난민은 귀향하라'는 발표가 있어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또 배만 탈 수 있다면 그 뒤는 자신들에게 맡기라고 했다. 이들은 모두 선원 출신이었다.
탈출 집결 시간은 정각 11시였다. 이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기로 했다. 약속 시간이 되자 모두 20명이 모였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곧바로 차에 올라 교민회관을 빠져나왔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익숙한 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대사관과 사이공 시장도 보였다. 고개를 돌리자 우리 가족이 지냈던 집이 보였다. 아내, 아들딸과 단란하게 지냈던 바로 그 집이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반드시 탈출에 성공해야 했다. 그리고 반드시 살아 남아야 했다.
사이공강을 가로지르는 큰 다리를 건너 교외에 진입했다. 도시에 있을 땐 보지 못했던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길 양쪽에는 트럭과 장갑차가 어지럽게 늘어서 있었고, 그 사이로 시체들이 있었다. 차마 눈을 뜨고 보기 어려웠다.
12시 30분, 첫 번째 검문소에 도착했다. 다행히 큰 문제 없이 통과했다. 12시 50분, 두 번째 검문소에 다다랐다. 소총으로 무장한 여자 3명이 운전수에게 다가왔다.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운전수는 "형무소에서 이제 막 나왔는데 무슨 신분증이냐"라며 자동차 운행증을 보여줬다. 운전수의 기지가 통한 걸까. 여자들은 소총을 내리고 통과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오후 1시쯤 한 마을에 들어섰다. 그때 소총을 든 남자들이 튀어나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들은 차를 멈춰 세우더니 짐칸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사람들의 개인 소지품까지 확인했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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