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 강조
실효성에 의문...尹정부도 재정준칙 못 지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재정준칙 도입'을 공식화했으나 실현될 가능성은 작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운데)가 14일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G20 정상회의 순방에 나서는 윤석열 대통령을 환송하기 위해 정신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대화하며 환송 장소로 향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재정준칙 법제화'를 꺼내며 '민생 챙기기'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1심 선고로 충격에 빠진 가운데, 정국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그러나 현 정부도 재정준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현실성에 의문을 낳는다. 다수당인 민주당이 확장재정 필요성을 주장하는 점에서도, 재정준칙 법제화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재정준칙은 국가채무 등 재정지표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정 비율을 넘지 않도록 강제하는 원칙으로, 재정건전성과 맞닿아있다. 박근혜 정부부터 역대 기획재정부는 재정건전성 유지를 위해 재정준칙 도입을 추진해 온 것이 사실이다. 윤석열 정부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GDP 대비 3% 이내로, 국가채무는 GDP 대비 60% 이내로 관리하는 내용의 재정준칙 법제화를 추진하려 한다. 국회에서는 지난 6월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인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재정건전화법 제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민주당 정책위 핵심 관계자는 18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저희는 일관되게 반대해 왔다"면서 재정준칙 도입 가능성을 일축했다. 민주당은 재정건전성을 앞세운 현 정부의 긴축재정에 반대 입장을 내왔다. 민주당은 오히려 저성장 고착화를 우려하며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문해 왔다. 특히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홍남기 당시 경제부총리가 관련 법안을 냈지만, 여당이던 민주당은 '코로나19 상황에 확장재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반대한 바 있다. 처음 도입이 추진된 2016년 박근혜정부에서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당 내부에서도 재정준칙에 회의적인 기류가 감지된다. 기재위 소속 한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전 세계적으로 재정준칙을 도입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지키는 나라는 거의 없다. 유명무실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우리 경제는 재정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상황이다. 재정을 효율적으로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게 더 중요하다"며 "재정준칙으로 오히려 재정의 역할을 억제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현 정부도 이를 지키지 못하면서 법제화하자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덧붙였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운데)는 12월부터 본격적으로 민생 의제를 제안할 계획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 1심 재판이 오는 25일 예정된 가운데, '이재명 체제 사수'에 나선 민주당과 차별화 전략에 들어간 것으로 풀이된다. /남윤호 기자 |
실제로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2022년 5.4%에서 지난해 3.9%, 올해 3.6%로 재정준칙을 지키지 못했다. 특히 관리재정수지는 올해 6월 말 103조4000억 원에 달해, 올해 예상치인 91조6000억 원을 이미 초과한 상태이며 연말에는 적자 폭이 커질 수 있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내년에도 재정준칙 이행 목표는 지켜지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2.9%라는 예측을 내놨지만 국회예산정책처는 총수입 감소와 적자규모 확대로 3.03%에 이를 것으로 봤다.
한 대표는 이날 재정준칙 법제화를 공식화한 가운데 이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 1심 판결 이후인 다음 달부터 본격적으로 민생의제를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이재명 체제 사수'에 돌입한 민주당과 차별화 전략으로 풀이된다. 한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제는 정말 재정준칙 법제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국민의힘)는 모두를 위한 복지를 하려는 정당"이라며 "성장은 복지를 위한 도구이며, 나랏돈을 인색하게 안 쓰겠다는 게 아니라 제대로 잘 쓰자는 게 재정준칙 법제화의 진짜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는 민주당 정부에서도 추진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전날에도 페이스북에 "재정 운용에 일관성과 책임성을 부여하기 위해 재정준칙의 도입이 필요하다"며 "내년 예산 심의가 본격화되고 있는데 벌써 재정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저해하는 선심성 예산이나 쪽지 예산 관행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효율적인 재정 사용 관행이 쌓이면 결국 적자 편향적 재정운용으로 굳어지고, 장기적으로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며 "재정준칙 도입은 민주당 정부 시절에도 추진된 바 있는 여야를 초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