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확대경] 여당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 폐지 추진…양날의 칼?
입력: 2020.07.03 05:00 / 수정: 2020.07.03 05:00
17개 상임위를 모두 가져간 민주당이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 권한을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일하는 국회법을 추진하면서 갈등이 예상된다. 지난 15일 법제사법위원장 및 6개 상임위원장을 선출한 본회의에서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항의 발언하는 모습. /남윤호 기자
17개 상임위를 모두 가져간 민주당이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 권한을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일하는 국회법'을 추진하면서 갈등이 예상된다. 지난 15일 법제사법위원장 및 6개 상임위원장을 선출한 본회의에서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항의 발언하는 모습. /남윤호 기자

'신속 개혁' vs '졸속 입법' 논쟁…기울어진 국회(?)

[더팩트|국회=문혜현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를 담은 '일하는 국회법'을 당론으로 결정하면서 찬반 논란이 뜨겁다. 민주당은 야당의 '발목잡기 관행'을 없애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미래통합당 등은 "야당의 견제 기능을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1일 민주당은 정책 의원총회를 열고 일하는 국회법을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선정, 7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일하는 국회법은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를 비롯해 △1∼7월 매월 임시회 개최 △본회의 매월 2회 개최(둘째·넷째 목요일 오후 2시) △상임위 및 법안소위 월 4회 개최 △9월 정기국회 전 국감 완료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날 김태년 원내대표는 "일하는 국회를 강제해야 할 만큼 과거 국회는 당리당략과 정쟁에만 몰두하고 국민의 요구와 바람에 부응하지 못했다"며 "민주당은 일하는 국회법을 통과시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국회로 만들겠다고 선거때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그약속을 지키려고 한다"고 했다.

또, 그간 본회의 개의를 두고 벌어진 여야 갈등을 두고 "회의를 잡기 위해 여야가 줄다리기를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숙의시간은 확보하지 못하는 비정상적 관행을 시대에 맞게 끊어내고 개선해야 한다"며 "상임위에서 치열하게 토론해서 어렵게 합의한 법안을 법사위가 발목잡는 관행도 혁파해야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을 폐지하고 국회의장 산하인 국회 사무처나 입법조사처 등에 별도의 체계·자구 검토기구를 만드는 방안을 내놨다. 법제 기능이 사라진 사법위원회를 비상설특위인 윤리위원회와 합쳐 '윤리사법위원회'로 만드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민주당은 법사위 체계자구심사 권한을 폐지해 개혁 입법 추진에 속도를 내려는 모양새다. 지난 1일 열린 민주당 정책의총에서 발언하는 김태년 원내대표. /남윤호 기자
민주당은 법사위 체계자구심사 권한을 폐지해 개혁 입법 추진에 속도를 내려는 모양새다. 지난 1일 열린 민주당 정책의총에서 발언하는 김태년 원내대표. /남윤호 기자

그동안 법사위는 체계·자구 심사를 핵심 권한으로 여당에겐 국정 운영의 추진력을, 야당에겐 효율적인 견제 도구가 돼 왔다.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한 법안은 본회의로 회부되지 않아 야당에겐 여당의 법안을 막을 '마지막 저지선'인 셈이다. 관행적으로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여야 정쟁이 양극화되면서 야당이 여당의 '발목 잡기'를 위해 체계·자구 심사권을 활용한다는 비판이 이어져왔다. 사실상 법사위가 '옥상옥'의 역할을 하며 다른 상임위들과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었다.

민주당은 이런 이유로 일하는 국회법을 7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해 본격적인 입법 개혁 드라이브에 나설 방침이다.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이 사라지면 각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법안은 본회의에 신속하게 회부될 수 있다.

이에 사실상 수적 열세를 극복할 마지막 견제 장치가 사라지면서 통합당은 고심에 빠지게 됐다.

학계의 의견도 분분하다. 반대 측 주장은 다수결 원리가 적용되는 국회에선 많은 법안이 다수당 의지대로 통과될 수 있는 구조가 된다는 거다. 여대야소의 상황에서 체계·자구 심사 권한 자체를 각 상임위나 국회의장 산하 기구에 맡길 경우 사실상 상임위 통과를 전제로 법안을 본회의에 회부하고, 그대로 통과시킬 수 있다.

찬성 측은 상임위원회 중심으로 운영되는 국회 의사결정 방식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모든 상임위에 체계·자구 심사권을 부여한다면 입법과정의 병목현상을 방지하고 효율적인 입법 토론이 이뤄진다고 보고 있다.

김재식 법무법인 에이펙스 변호사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체계·자구 심사권을 국회의장 직속 기구에 놓게 되면 사실상 권한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는 "심사 자체가 글자의 수정 뿐 아니라 법안 통과 저지 기능이 있다. 그런 기능은 여야 합의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지, 국회의장 직속기구에서 이뤄지기 힘들다"며 "공정하게 여러 법안의 체계를 심사해서 이 법안이 맞다, 틀리다 의견을 낸다고 한들 법안 통과 여부에 영향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이 폐지되면 대중적인 법률이 양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확실한 견제 기구가 없을 경우 여론에 치우쳐 형량이 지나치게 높거나 처벌 수위가 강화된 법안이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쟁점 법안에서 다수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법안의 방향이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제기됐다.

김 변호사는 "만약 체계·자구 심사권이 국회의장 산하 기관에 들어간다고 하면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은 자동으로 본회의에 상정될 수 있다. 법안 통과를 견제하는 국회 기능이 대폭 축소되는 것"이라며 "어떤 사건이 터진 후 그것을 계기로 만드는 법들을 보면 대부분 체계가 맞지 않다. 일반 법에선 구속요건이 특별히 달라지지 않는 법이 특별법이 되면 형량이 갑자기 뻥튀기돼 있다거나, 처벌하는 데 있어 명확성 원칙이 떨어지는 것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민사 문제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을 형사 문제로 해서 국민을 전과자로 만들 수 있는 법들이 많다"며 "그건 정권이 바뀌어도 같을 거다. 법률이 많아져서 국민에게 좋을 게 없다"며 우려했다.

체계자구 심사 권한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야당의 존재감이 어떻게 드러날지도 주목된다. 지난달 29일 열린 통합당 의총에서 모두발언하는 주호영 원내대표. /배정한 기자
체계자구 심사 권한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야당의 존재감이 어떻게 드러날지도 주목된다. 지난달 29일 열린 통합당 의총에서 모두발언하는 주호영 원내대표. /배정한 기자

반면 박상철 경기대 교수는 "그동안 있었던 입법과정의 병목현상을 해소할 수 있다"며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를 옹호했다. 박 교수는 통화에서 "어느 순간 우리 정치가 여야 간 극한 대립이 이어져 왔다. 그 뒤로부터 법사위가 야당몫으로 가면서 여당 전체의 입법계획에 제동을 거는 형태가 됐다"고 했다.

그는 "그래서 자구 수정이 의미가 없게 됐다. 미국이 하는 대로 상임위원회에서 객관적으로 토론해 본회의에 법안을 상정하는 방향이 좋다"고 제안했다.

박 교수는 "모든 것을 상임위 위주로 하는 거다. 체계·자구 심사 기능을 아예 없애는 게 아니라 모든 상임위에 체계·자구 심사권을 갖도록 해야한다"며 "사실 법사위에서만 체계·자구 심사를 한다는 건 입법과정의 병목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입법이 지체돼 필요할 때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입법과정에서 신중한 고민을 한 게 아니라 막은 거였다. 여당이 법사위원장을 가져서 체계·자구 심사권을 없애는 게 낫다고 본다"며 "대신 야당은 질적인 입법투쟁과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예를 들어 부동산 대책에 관한 법이나 임대차 보호법이 결국 시장 수요에 맞지 않다는 지적 등 실력을 키워야 한다. 법사위원회의 체계·자구 심사권을 잡아 발목을 잡겠다는 건 구시대적 자세"라고 비판했다.


moon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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