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각본 없는 드라마다.'
17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 직후 나온 평가다. 역대 대통령과 달리 사전 시나리오 없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기자들의 '무작위'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분야별 견해를 조목조목 답했다. 청와대는 형식적인 기자회견이 아니라 소통의 장을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 이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
회견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이뤄졌다. 내·외신 출입기자와 참모 등 2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65분간 진행됐고, 생중계됐다. 문 대통령의 첫 공식 회견이었던 만큼 기자들의 질문 열기는 뜨거웠다. 그리고 아쉬움 또한 없지 않았다. 회견 전후 과정과 이색적인 장면을 되짚어 봤다.
# '맞이 담당' 박수현, '靑 B컷 사진사' 눈길

오전 9시 50분,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춘추관 경내에 삼삼오오 모였다. 회견장인 영빈관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다. 200여명의 내·외신 기자를 수용하기 위해 더 넓은 장소가 필요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청와대는 영빈관 이동 차량 준비와 관련 경호 문제에도 신경을 썼다.
이동 버스에 나눠 타고 청와대 정문을 통해 영빈관에 도착하자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기자들을 맞았다. 회견 장소 내 좌석 역시 지정석이 아닌 자유석이었다. 문 대통령이 연설을 할 중앙 연단을 중심으로 청와대 수석들과 기자들이 부채꼴 모양으로 둘러싸며 마주보도록 했다.
회견 사전 준비와 경호 문제 등으로 예정 시각보다 일찍 도착한 출입기자들은 질의응답을 예상하며 대기했다. '청와대 B컷 사진사'로 유명한 박 대변인은 휴대전화로 틈틈이 회견 현장을 기록했다.
# '분위기 메이커' 윤영찬, "긴장하실까봐~"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이에게 노래 하세요. 후회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후회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문 대통령을 기다리던 오전 10시 30분쯤, 귀에 익숙한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한 곡, 두 곡…. 음악을 듣다 보니, 어느새 머릿속이 '멍'했다. 옆에 있던 동료 기자에게 "이 노래 뭐였더라?" 묻는 순간, 짜기라도 한 듯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비서관이 말문을 열었다.
회견 사회를 맡은 윤 수석은 "기자님들이 혹시 긴장하실까봐 감성적인 노래를 들려드리고 있다"고 농담을 건넸다. 청와대가 준비한 '가요 4곡'은 이적이 부른 '걱정말아요 그대'를 비롯해 박효신의 '야생화', 윤종신·곽진언·김필이 함께 부른 '지친하루', 정인의 '오르막길' 등이다.
# '인기만점' 조국, 기자들과 '기념촬영'

갑자기 기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람은 조국 민정수석이었다. 일부 기자들은 조 수석 옆 좌석에 앉아서 기념 촬영을 할 정도로 '인기만점'이었다. 오전 11시, 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임종석 비서실장이 등장했다.
회견이 곧 시작된다는 의미였다. 기자들은 저마다 손에 수첩과 볼펜을 쥔 채 중앙 무대를 바라봤다. 좌우 벽면 스크린엔 문 대통령의 취임 후 100일 행보를 담은 영상을 띄웠다. 그리고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 문구가 대미를 장식했다.
# '영상부터 배경음악까지' 탁현민, 행사 총괄
이 영상과 앞서 장내 음악 등 행사를 총괄한 사람은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었다. 회견 시작 전 리허설에서도 시간과 동선을 지속해서 확인하는 등 행사 준비를 꼼꼼하게 챙겼다.
지난 8·15 광복절 행사와, 세월호 유가족 면담 등도 탁 행정관이 기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탁 행정관은 지난 5월 '여성 비하 저서' 논란으로 야권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사퇴 압박을 받아 왔다.
# 짧은 시간, 어쩔 수 없는 '아쉬움'

2분 뒤, 문 대통령이 회견장으로 들어섰다. 중앙에 선 문 대통령은 "국민의 마음을 끝까지 지켜나가겠다"며 약 5분 간의 모두 발언을 마쳤다. 이후 연단 대신 테이블이 놓였다. 기자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허심탄회하게 소통하기 위한 조치로 보였다.
문 대통령이 자리에 착석하자, 윤 수석은 "대통령님 긴장되시죠?"라며 편안한 분위기를 유도했다. 문 대통령은 '허허허' 웃음으로 답했다. 이어 기자들의 각 분야별 질문들이 쏟아졌다. 이날 질문 개수는 외교안보 4개, 정치 4개, 경제 2개, 기타 현안 5개 등 총 15개였다.
회견은 예정 시각을 조금 넘어섰다. 자유롭게 질문을 하다보니, 시간이 부족했다. 기자들의 아쉬움 또한 컸다. 막바지에 기자들의 질의 요청이 쇄도했다. 윤 수석은 "손 드셔도 소용없다"며 회견을 마무리하려다 15번째 질문을 받았다. 윤 수석은 "기회를 주지 못한 기자들에게 미안하다"며 "다음에 반드시 기회를 주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래도 기자들의 갈증을 채우지 못했다. 영빈관에서 다시 춘추관으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기자들은 "시간이 너무 짧다. 다음엔 좀 더 대통령과 상호 토론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됐으면 좋겠다" 등의 속마음을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