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분석] 한미정상회담? 노무현-부시를 보면 문재인-트럼프가 보인다
입력: 2017.06.22 05:01 / 수정: 2017.06.22 05:01

최근 사드 배치 지연 논란 등 악재를 겪는 문재인(왼쪽) 대통령은 오는 29일 미국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갖는다./배정한 기자, 게티이미지 제공
최근 사드 배치 지연 논란 등 악재를 겪는 문재인(왼쪽) 대통령은 오는 29일 미국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갖는다./배정한 기자, 게티이미지 제공

[더팩트 | 오경희 기자] 이달 말 한미 첫 정상회담을 앞둔 문재인 정부는 14년 전 노무현 정부의 한미 관계를 재연할까. 노무현 정부 시절의 한미 관계가 주목을 받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 인사들이 과거 노무현 정부에 몸담았던 이들이 많이 포진해있어 비슷한 국정철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조지 W.부시' 조합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진보 성향 대통령(문재인)과 미국 공화당 정권 대통령(도널드 트럼프)의 조합이 이뤄지면서 한미 간의 원만한 대북 관계 조율 여부가 한반도 정세에 중대 변수로 떠올랐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정부는 최근 한미 관계에 있어 '3중고'를 겪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지연 논란에 이어 통일·외교·안보 대통령 특별보좌관인 문정인(66) 연세대 명예교수의 '한미훈련 축소 발언'이 불거졌고, 북한에 억류됐다가 혼수상태로 석방돼 귀국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숨진 사건까지 터졌다.

앞서 문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 필요성을 의욕적으로 제기했지만, 미국 정부는 향후 더욱 강경한 대북 압박 카드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한미 정상회담이 한미 간 입장차이와 갈등을 노정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1기 외교·안보라인, 대북 대화파 '노무현 2기'?

문 대통령의 오랜 외교·안보 멘토인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대통령 특별보좌관은 지난 16일 한국 동아시아재단과 미국 우드로윌슨센터가 워싱턴DC에서 공동주최한 세미나 기조연설 및 문답을 통해 한미 훈련 축소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다./더팩트DB
문 대통령의 오랜 외교·안보 멘토인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대통령 특별보좌관은 지난 16일 한국 동아시아재단과 미국 우드로윌슨센터가 워싱턴DC에서 공동주최한 세미나 기조연설 및 문답을 통해 '한미 훈련 축소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다./더팩트DB

문재인 정부 1기 외교·안보 라인 주요 인사들은 노무현 정부에 몸담았던 대북 대화파 위주로 꾸려졌고, 미국 등 4강 외교를 주도적으로 다뤄본 인물이 없으며 군 출신 등 국방 전문가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 대통령의 오랜 외교·안보 멘토인 문정인 특보는 노무현 정부에서 동북아시대위원장, 외교부 국제안보 대사를 지내면서 인연을 맺어왔다. 문 특보는 지난 16일(현지 시각) 한국 동아시아재단과 미국 우드로윌슨센터가 워싱턴DC에서 공동주최한 세미나 기조연설 및 문답을 통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해결되지 않아 깨진다면 그게 무슨 동맹이냐"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과 논의를 통해 미국의 한반도 전략자산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 등의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외시 5회 출신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던 때 조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대선 기간부터 사드 배치를 미루고 대미·대중 외교의 공간을 확보한다는 전략을 내비쳤는데 외교관 출신인 정 실장의 생각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철 국가안보실 1차장도 노무현 정부 때인 2000년·2007년 남북정상회담에 모두 특별수행원으로 참여했고, 남관표 국가안보실 제2차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파견돼 근무했다. 연세대 정외과 76학번인 조현 외교부 2차관은 2003년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에 파견돼 대통령정책실에서 일했다.

서훈 국정원장은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 성사의 주역이었으며 숙청된 북한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라인들과 오랜 관계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를 찾아 야당 지도부를 예방하고 있다./이새롬 기자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를 찾아 야당 지도부를 예방하고 있다./이새롬 기자

송영무 국방부·조명균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모두 노무현 정부에서 주요 직책을 맡았다. 송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시절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으로 '국방개혁 2020'을 수립하고 전작권 전환 업무를 추진한 바 있다. 조 후보자는 2007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비서관으로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10·4 남북 정상선언'을 성사시킨 주역 중 한 명이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 1기 외교·안보 라인은 '노무현 2기'로 볼 수 있을만큼 노무현 정부 당시 외교·안보 주축들이 상당수 포진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한미 관계 방향성을 노무현 정부에 투영해 보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1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외교·안보도 사람이 결정하는 일이니 전체적으로 노무현 정부 때와 국정기조가 비슷하지 않겠나"며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자주성을 강조하긴 했지만 실제로 정상회담 과정에선 혼선은 있었으나 한미동맹의 기본 기조를 확인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에서도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겠나"라고 전망했다.

◆ 2003년 '이라크 파병'-2017년 '사드' 데자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79일 만인 2003년 5월 15일 미국을 찾아 조지 W부시 전 미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를 맞아 전속 사진사였던 장철영씨의 미공개 사진./더팩트DB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79일 만인 2003년 5월 15일 미국을 찾아 조지 W부시 전 미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를 맞아 전속 사진사였던 장철영씨의 미공개 사진./더팩트DB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79일만인 2003년 5월 15일, 미국을 찾아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을 처음 만났고, 임기 동안 총 8차례에 걸쳐 정상회담을 가졌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대통령이 처한 국제정세는 14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 때와 유사하다. 2003년 3월 이라크를 공격한 미국은 취임 한 달도 안된 노 전 대통령에게 지지를 요청하며 파병을 요구했고, 2017년 문 대통령은 사드 배치 지연으로 인한 전방위적 압박을 받고 있다.

대선 후보 시절 "자주성 발언"으로 미국으로부터 미국관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던 노 전 대통령은 당시도 도발을 계속한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을 원했지만, 미국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뜩이나 김대중 정부 때 햇볕정책 추진으로 한미 관계는 악화된 상황이었다. 결국 조지 부시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이 이뤄진 2003년 5월, 노 전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으로 동맹관계를 회복했다.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은 당시 "그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의혹을 품었지만 이라크 파병 결정 이후 한미간의 의혹이 해소되고 상호간에 신뢰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며 "지금은 상당히 정상화됐으며 특히 대통령의 미국 방문 뒤 경제와 국민들의 심리가 안정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파병을 결정하면서 지지층의 강한 반발을 샀다. 미국은 2003년 9월 또다시 추가 전투병 파병을 요청했고,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노 전 대통령은 '국민 재신임 투표'를 내걸고, 2003년 10월 두 번째 한미 정상회담 직전 '추가 파병을 하겠다'는 전제 하에 '국내적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설득했다.

2005년 제 60차 유엔총회 고위급 본회의 참석을 위해 뉴욕을 방문한 노 전 대통령(오른쪽)이 뉴욕 숙소호텔에서 열린 코리아 소사이티 주최 연례만찬에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에게 밴 플리트 상을 수여한 뒤 밝게 웃고 있다./더팩트DB
2005년 제 60차 유엔총회 고위급 본회의 참석을 위해 뉴욕을 방문한 노 전 대통령(오른쪽)이 뉴욕 숙소호텔에서 열린 코리아 소사이티 주최 연례만찬에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에게 '밴 플리트' 상을 수여한 뒤 밝게 웃고 있다./더팩트DB

2차 회담 결과, 한미 양국은 공동언론발표문을 통해 북한을 2차 6자 회담에 끌어들여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확인했고, 주한미군 재배치 및 철수론, 이라크 추가 파병과 관련해 균열조짐을 보였던 한미관계를 재강화했다.

토마스 허바드 전 주한 미 대사(2001~2004년)는 2013년 10월 20일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주최한 '한·미 대사와의 대화'에 참석해 "(진보 성향의) 노 전 대통령이 우리와 함께 동의를 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FTA) 개시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한미 관계의 토대가 됐고, 한미 관계가 굳건해지는 바탕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 미 대사(2005~2008년)는 이 자리에서 2005년 11월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양국 간 최악의 정상회담으로 꼽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과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당시 회담에서 미국의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 북한 계좌 동결'을 놓고 한 시간 넘게 논쟁을 벌였다.

◆ 文 대통령, '한국주도-한미공조' 구상 통할까

문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국회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문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국회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문 대통령 역시 대북강경 노선을 천명한 트럼프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부터 사드 배치에 대한 압박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백악관에서 안보 관련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사드 배치 지연에 대해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이라크 추가 파병 당시 '국내적 절차'라는 선결조건 카드를 내걸었던 것처럼 유사 전략을 펼 것이란 관측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주한미군의 한반도 사드 4기가 비공개로 반입된 데 대해 철저한 진상조사를 주문한 데 이어 지난 5일 환경영향평가를 지시하고, '국회 공론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21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노무현 정부 시기만 하더라도 외교라인이 여당(민주당) 내에서도 소수파였기 때문에 지지기반이 넓지 않았으나, 문재인 정부는 문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할 사람들이 많고, 외교 엘리트들이 광범위하게 포진돼 있다. 때문에 문 대통령은 미국과 신중하게 대화를 진행해 한미 간 이견에 대한 노정은 없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정 연구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의제로 사드와 한미FTA 재협상, 대북 문제 등을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큰 관심사는 한미FTA 등 한미 교역에서 미국의 적자를 해소하는 방안에 대한 의견 표명을 할 것이고, 사드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시간을 갖고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절차를 밟겠다고 했기 때문에 '사드 철수 대신 우리가 구입해서 운영하는 방안' 등을 고려하는 등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대북 문제는 기본적으로 '선제재 후대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북한의 태도 변화가 있을 경우 대화에 나선다'는 스탠스를 취하면서 한미간 정책공조와 함께 역할 분담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충환 사드배치 철회 성주투쟁위원장(왼쪽)과 하주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군문제연구위원장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인 신분으로 들어가고 있다./남용희 기자
김충환 사드배치 철회 성주투쟁위원장(왼쪽)과 하주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군문제연구위원장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인 신분으로 들어가고 있다./남용희 기자

문 대통령은 20일과 21일 잇달아 공개된 미CBS와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 유력언론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북핵 문제 해결 등 한미 관계에 있어 한국의 주도적 역할론을 내세우면서도 미국과의 공조 방침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북핵 해결방안은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미국과 긴밀한 공조 속에서 추진돼야 한다"면서 6·15 기념식 당시 발언이 '조건없는 대북대화'로 해석돼 미국내 일각에서 우려가 제기되는 것에 대해 "저는 아무런 전제 조건 없는 대화를 말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는 핵·미사일을 통한 북한의 추가도발 중단 등 동결 조치가 대화의 전제조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란 해석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연기 논란'에 대해선 "환경영향평가를 받는다는 것이 우리가 배치를 연기하거나 결정을 뒤집는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김 교수는 "지금 문 대통령의 시그널을 보면 국정기조에 한미동맹을 기본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6·15 기념식 발언과 사드 환경영향평가 등은 미국과의 협상력을 재고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과정에서 외교 전술적 측면이 한미 긴장관계로 비춰지지만 실제 회담 테이블에선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일하면서 미국을 상대해 봤기 때문에) 한미동맹 균열과 같은 우려의 상황이 발생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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