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처음으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뇌물수수 등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피의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21일 오전 9시 26분께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에 서면서 여러 가지 기록을 남겼다. 검찰 소환조사를 받은 역대 네 번째 전직 대통령 기록과 헌정 사상 처음 파면된 상태에서 검찰에 소환된 첫 전직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혐의만 13개이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10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당한 이후 단 한 차례도 본인 입으로 통합을 당부하는 대국민 메시지를 밝히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포토라인 앞에서 박 전 대통령이 어떤 메시지를 밝힐지 전 국민의 눈과 귀가 집중했다. 더욱이 박 전 대통령 측은 전날 검찰 포토라인에서 직접 준비된 메시지를 전할 것이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지 11일,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온 지 9일 만에 국민에게 전한 메시지는 이게 전부였다. 솔직히 말하면 박 전 대통령의 입에서 국민에게 사과한다거나 하는 메시지가 나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이유는 그동안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61·구속)사태에서 보여온 태도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박 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한 것은 현직에 있을 당시 대국민 담화를 할 때뿐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세 차례의 대국민 담화에서 "이 모든 사태는 모두 저의 잘못이고 저의 불찰로 일어난 일이다. 저의 큰 책임을 가슴 깊이 통감하고 있다"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추구하지 않았다.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점은 큰 잘못이다"고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본인의 입으로 약속한 검찰과 특검 조사도 모두 거부했다. 그러면서 돌연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통해 이번 검찰 조사의 최대 쟁점인 제3자 뇌물죄와 관련해 "완전히 나를 엮은 것"이라며 "국가의 올바른 정책 판단이었다. 누구를 봐 줄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고 강하게 부인한 바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또, 파면된 이후 삼성동으로 돌아온 지난 12일에도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제게 주어졌던 대통령으로서의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저를 믿고 성원해준 국민께 감사드린다.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의 억울함만을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이 검찰로 이동하며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배정한 기자 |
최 씨 국정농단 사건으로 촉발된 이번 사태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박 전 대통령은 보여주기식 대국민 담화를 제외하고 단 한 번도 국민에 대해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치권이나 국민은 검찰 소환조사에서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역시나'였다.
태극기와 촛불로 갈라선 국민 갈등을 봉합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지경에 이르게 한 박 전 대통령의 몫이다. 자택 앞에서 여전히 시위를 이어가는 지지자들로 인해 피해 보는 인근 주민과 학생들을 생각한다면 최소한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 전직 대통령이 아니라 상식을 지닌 인간이라면 해야 할 도리이기도 하다.
박 전 대통령의 이런 모습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성인이라면 지금 상황을 이렇게 무시할 수는 없지 않나. 하물며 국가의 대통령까지 한 사람인데 어떻게 자기만 생각하는지 도무지 이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갈라진 국민의 통합을 위해서는 박 전 대통령이 지지자들을 향한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또, 이런 지지자들을 이용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정치인들을 향해서도 일갈하고, 정치권도 그런 행위를 멈춰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퇴거일, 검찰 소환 당시 등 두 번의 기회를 자기를 위해 사용했다.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고 통합을 당부할 수 기회를 스스로 버렸다. 이제 남은 건 검찰 조사 후 마지막 한 번일 것으로 보인다. 구속이든 불구속이든 박 전 대통령은 이 한 번의 기회를 국민이 기대하는 방향으로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