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색다른 인문학]샛별과 루시퍼의 운명
  • 박순규 기자
  • 입력: 2016.10.25 05:00 / 수정: 2016.10.25 05:00

같은 별인데도 때에 따라 바뀌는 별의 이름처럼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 씨는 이제 종적을 감추는 신세에 놓여 있다. 사진은 최순실 정유라 모녀 소유의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비덱 타우누스 호텔 전경./프랑크푸르트=이효균 기자
같은 별인데도 때에 따라 바뀌는 별의 이름처럼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 씨는 이제 종적을 감추는 신세에 놓여 있다. 사진은 최순실 정유라 모녀 소유의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비덱 타우누스 호텔 전경./프랑크푸르트=이효균 기자


[더팩트 | 박종권 편집위원] 같은 별인데도 아침이냐 저녁이냐에 따라 이름이 바뀐다. 바로 금성(金星)이다. 새벽 동쪽 하늘에 반짝이면 ‘샛별’이다. 새벽을 밝히는 별이라거나, 새로 나온 별이라는 뜻으로 이렇게 불린다. 반면 해가 진 뒤 서쪽 하늘에 반짝이면 ‘개밥바라기’이다. 개의 밥그릇이란 뜻이다. 개가 밥을 기다리든, 개밥을 줘야 할 때이든, 여하튼 개밥그릇을 챙길 때 뜨는 별이다.


시경(詩經)에는 “동쪽엔 계명(啓明), 서쪽엔 장경(長庚)”이란 표현이 보인다. 여기에서 계명성은 바로 샛별을, 장경성은 개밥바라기를 가리킨다. 혹자는 닭 우는 새벽에 돋는 별이라는 뜻의 계명(鷄鳴)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대구의 유서 깊은 대학교인 계명대와 한자가 똑같다. 즉, 계명대학교는 ‘샛별대학교’인 것이다.

장경(長庚)의 경(庚)은 개와 관련이 깊다. 한여름 몸을 보신하는 삼복(三伏)의 기준이 60갑자의 경일(庚日)이다. 초복은 하지(夏至)에서 첫 번째, 중복은 네 번째, 말복은 입추(立秋) 전 첫 번째 경일이다. 개밥바라기의 ‘개’는 아마도 이 장경성(長庚星)에서 연유됐을 것이다.

금성이 이처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사람들의 고단한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 때문인 것으로 유추하기도 한다. 옛날 선조들은 샛별을 보면서 들판으로 나갔다가 개밥바라기를 보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샛별은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이요, 개밥바라기는 “나의 하루를 가만히 닫아주는 별”인 것이다. ‘새벽 별 보기 운동’ 역시 이런 고달픈 일상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겠나.

영어권도 비슷하다. 황금빛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금성은 ‘비너스(Venus)’이다. 샛별은 아침 별이니 ‘모닝 스타(morning star)’, 개밥바라기는 저녁 별이니 ‘이브닝 스타(evening star)’이다. 그런데 샛별을 ‘루시퍼(Lucifer)’로 부르기도 한다. 원래는 ‘횃불 운반자’라는 뜻이다. 어둠 속으로부터 태양을 이끌고 오니까 계명(啓明)과도 뜻이 통한다. 헌데 기독교인들에게는 사탄 중의 사탄, 악마의 이름으로 불렸다.


성서적으로 보면 사탄은 원래 천사였다가 신(神)의 눈에 벗어나 천국에서 추방됐다. 너무 높은 권좌까지 오르려 했기 때문이다. 태양이 솟아오르기 전 여명(黎明)을 밝히는 샛별을 떠올리면 신화적 관념이 이해가 된다. 여하튼 구약성서의 이사야서(14:12)에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으며~구덩이 맨 아래 떨어짐을 당하리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바빌론의 왕을 지칭한 것이다.

또 고린도후서(11:14)에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란 구절이 있다. 서양 기독교 세계에서 루시퍼(Lucifer)가 감히 성스러운 권좌를 넘본 오만함 때문에 천사에서 악마(사탄)이 됐다고 믿는 배경이다. 그리하여 단테의 ‘신곡(神曲)’에서 루시퍼가 지옥의 지배자로 나온다. 유황불로 죄인을 태우는 끔찍한 지옥의 수장이다. 최초의 성냥을 루시퍼라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 성냥을 그으면 화약에 섞인 유황이 타면서 지독한 냄새가 났는데, 루시퍼의 지옥을 연상한 것이다.

어쩌면 샛별의 원초적, 한편으로 인간적 슬픔은 뒤따라 오는 태양 때문인지도 모른다. 캄캄한 어둠에서 곧 솟아오를 태양을 예고하지만, 자신은 결국 태양에 사위어질 운명인 것이다. 신화적 슬픔은 태양 다음으로 밝은 별이기 때문이다. 절대자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태양도 질투심이 강한 것이다.


달은 절묘한 숨바꼭질로 태양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태양이 서산으로 지면 동쪽 하늘에 살며시 나타났다가, 동쪽 하늘을 밝히면 서산 너머로 숨는 것이다. 태양의 눈으로 보면 샛별이 자신의 위상을 위협하는 것이다. 이런 설화는 얼핏 그리스 신화 이카루스(Icarus)와도 닮았다.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붙이고 하늘 높이 날았던 이카루스는 태양열에 밀랍이 녹으면서 바다(에게해)로 추락해 숨진다. 이카루스는 태양에 너무 가깝게 올랐다가 추락사했고, 루시퍼(샛별)는 태양에 앞서 동쪽 하늘을 밝혔다가 사탄으로 쫓겼다.

인간사도 그럴 것이다. 인지상정(人之常情)으로 보면, 태양(지도자)도 한때는 자신에 앞서 새 시대를 밝힐, 꽃 길을 닦을 샛별(추종자)이 기특했을 것이다. 허나 이미 수면 위로 떠올라 어둠을 걷어내면, 꽃 가마에 올라 타면 더는 샛별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권력무상(權力無常)으로 보면, 태양에게 샛별은 오히려 자신의 명성을 깎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일 수 있다. 날랜 토끼가 사라지면 사냥개는 끓는 솥에 삶기고, 높이 나는 새가 사라지면 활은 창고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최순실씨의 현재 심경이 그럴 수도 있다. 자신은 권력의 어둠 속에서 절망하던 박근혜 대통령을 위로하며 끝내 아침을 이끌어낸 샛별쯤으로 여길지 모른다. 비록 찬란한 태양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천하를 밝히는데 미약하나마 기여했고, 지금도 기여하고 있다고 믿을지 모른다.

반면 친박들에게 최씨는 샛별의 또 다른 이름인 루시퍼일지 모른다. 한때 천사였다가 악마가 된 존재 말이다. 여태까지는 입도 뻥끗 못하고 설설 기며 쩔쩔매다가 최근 호가호위(狐假虎威)란 말을 끄집어낸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호기를 부린다는 뜻이다. 최씨가 호랑이(대통령)의 위세를 교묘하게 활용한 여우쯤이라는 것이다.


어찌됐든, 최씨가 자신을 샛별쯤으로 여겼더라도 권력이 저무는 지금은 ‘개 밥그릇’이 될 운명이다. 태양을 앞에서 이끄는 비너스로 여겼더라도, 한때 그를 천사로 떠받들었던 부류들이 악마 루시퍼로 부르기 시작한다. 호가호위(狐假虎威)로 호랑이의 위세를 빌렸든, 기호지세(騎虎之勢)로 호랑이 등에 올라탔든, 결국 호랑이에게 물리기 십상이다. 아무리 능한 조련사라도 궁지에 몰린 호랑이에겐 물릴 수 있는 법이다.

sseou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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