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서초구=오경희 기자] "똑똑똑, 아무도 안 계세요?"
지난 9일 오후 4시, '김만복 행정사합동사무소'를 찾아 나섰습니다. 최근 '새누리당 팩스 입당' 논란의 중심에 선 김만복(69) 전 국가정보원장은 요즘 '무슨 일'을 하고 지내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이 아닌 '해명의 글'로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습니다.
지난 8월 27일 팩스로 입당 원서를 제출한 김 전 원장은 현 직업으로 '행정사'라고 적었고, 실제 지난 8월 서울 서초구와 자신의 출신지인 부산에 사무소를 개업해 대표로 취임했습니다. 취재진이 확인해 보니 공교롭게도 사무소를 차린 시점과 입당 원서를 제출한 시기가 비슷합니다. 더구나 '팩스 입당' 소동(?) 이후 출신지인 부산 해운대·기장군을 지역 출마를 선언한 것도 묘한 추측을 낳고 있습니다.

이날 취재진이 찾은 서초구 사무소는 약 10층 규모의 빌딩 2층에 있었습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2xx호'라고 적힌 낡은 철문 하나가 나타납니다. 굳게 닫힌줄 알았지만 손잡이를 돌리자 문이 쉽게 열렸습니다. 이윽고 눈에 들어온 광경은…. 한마디로 '헉'이었습니다. 부랴부랴 짐을 뺀 듯 안은 텅 비어있었고, 사무실 집기는 한쪽 구석으로 치워져 있었습니다.
야반도주라도 한 것일까요. 이웃 사무실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두 달 전 쯤 이사왔는데, 4일 전에 갑자기 나가던데요?"라고 귀띔했습니다. 나흘 전이면 지난 5일로, 김 전 원장의 '팩스 입당'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날입니다.
다시 김만복 사무소 내부를 천천히 살펴봤습니다. 곳곳에서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2015년 펴낸 남북정상회담 회고록인 '노무현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구상' 책 표지 인쇄물은 나뒹굴었고, 층층이 쌓인 박스 속엔 사무소 홍보 팸플릿이 가득했습니다. 갈기갈기 찢긴 국정원을 상대로 한 소송 준비 문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국정원은 회고록과 관련해 판매가처분신청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6일 재판에서 김 전 원장은 판매 중단 의사를 밝혔습니다.

홍보 팸플릿을 열어 보니, 눈길을 끄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행정기관에 제출하는 서류의 작성 및 제출 대행, 권리·의무나 사실 증명에 관한 서류의 작성 및 제출 대행, 행정기관의 업무와 관련된 서류의 번역 및 제출 대행 등을 하는 '합동사무소' 직원들의 '이력'입니다.
약 6명의 소속 행정사들의 경력 사항을 보니 '국정원''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 등의 출신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협력사도 인천·수원·춘천·세종시·대구·광주·제주 등 모두 7곳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김 전 원장은 팸플릿 인사말에서 '34년간 국정원에서 국가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첨병 역활을 해온 희생 정신과 봉사 정신으로 여생을 국민들에게 더 봉사하기 위해 2013년 12월 제1회 행정사 자격을 획득해 2년 가까이 준비한 끝에 2015년 8월 '김만복 행정사합동사무소를 개업했고, 대표로 취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2006년 11월 노무현 정부의 정보 수장이 된 그는 남북 대화록 유출 사건으로 2008년 사퇴했습니다.

김 전 원장은 같은 날 <더팩트>와 전화 인터뷰에서 "사무실 직원 한 명이 일을 관둬서 인근으로 이사를 했을 뿐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무소를 나서는 길, 우편함엔 미처 챙기지 못한 '김만복 대표' 앞의 카드 명세서 등 우편물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