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1번지 국회. 시기와 성향은 다르지만 298명의 의원들이 입성했다. 큰 틀에서 소명은 같다. 민의를 대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삶과 고민은 천차만별이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 어떤 꿈을 가슴에 품었을까. <더팩트>는 이들의 '국회 입성기'를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서영교(51· 서울 중랑구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겐 최근 ‘사이다 아줌마’라는 별칭이 생겼다. 별칭과 함께 서 의원은 실시간 검색어 1위에도 올랐다. 특히 별칭이 붙게 된 계기가 된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 수 100만 건 이상이 나올 정도로 주목받았다.
서 의원의 첫인상은 누가 보아도 서글서글하고 푸근하다. 하지만 서 의원의 정치는 폐부를 찌를 정도로 날카롭고 국민의 마음을 청량음료처럼 시원하게 해준다. 서 의원에게 붙은 ‘사이다 아줌마’라는 별칭도 이 때문에 생겼다.
서 의원에게 ‘사이다 아줌마’라는 별칭이 생긴 건 지난 6월 24일 황교안 국무총리를 상대로 한 대정부 질문 당시의 모습 때문이다.
당시 서 의원은 황 총리를 향해 "5월 20일에 환자가 나왔는데, 그 전에 있었던 일이 나오고 있는데, 6월 24일이 되어서 우리 총리께서 이제 확인해 보겠다고 하면 이게 대한민국입니까?(중략) 노무현 대통령 산하에서 사스 대책으로 한 명도 사망자가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 때 260여 개에 달하는 매뉴얼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때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후루룩 짭짭 없애버린 매뉴얼, 박근혜 대통령은 '아몰랑'. 가슴이 아픕니다"라고 말해 지금의 ‘사이다 아줌마’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청량감 넘치고 폐부를 날카롭게 찌르는 서 의원은 고등학교와 대학교(혜원여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총학생회장을 했다. 이때부터 그는 사회에 눈을 떴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기 시작했다. 대학 총학생회장을 지내며 학생운동도 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면목동 푸른소나무 무료 도서대여실 대표, 면목동 주부대학 교사, 노무현 대통령 당시 청와대 춘추관장 겸 보도지원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그는 정치는 자기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 이 여사의 생각은 달랐다. 어머니 이영자(2013년 별세, 향년 82세) 여사는 영교는 꼭 정치해야 한다고 했고, 그를 여의도 국회의원에 당선시켰다.
“어머니께서 ‘너는 사실을 봐야 한다. 정치해야 한다’고 했지만, 정치란 현실이 두렵고 감히 할 생각을 못 했다. 그러다 2011년 어머니가 파킨슨병을 앓으며 몸이 굳어갔다. 퇴원 후 자신의 몸을 걱정해도 모자란 데도 어머니는 내게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너는 내가 죽고 나면 후회할 거다. 내가 너를 정치시키려고 40년을 기다렸다. 너는 왜, 아직도 망설이느냐.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고, 출마를 결심했다.”
이 여사가 딸에게 정치할 것을 하라고 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여사가 딸 영교를 임신했을 당시 집에 찾아온 한 스님의 말 때문이다.
“어머니가 저를 임신했을 때 노스님이 집에 왔다. 어머니가 시주했는데 스님이 하는 말이 ‘아이를 가졌느냐? 남자로 태어나면 세상을 호령하고, 여자 아이라면 최소 영부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 당신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다가 이후 그 말이 생각났다. 이후부터 제가 정치 하기를 계속 바라셨다.”
이 여사는 대학생 영교의 학생운동을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보약을 지어 날랐다. 서 의원에게 이 여가가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여사는 딸이 학생운동을 할 때도 구치소에 갔을 때도 직업이 없을 때도 지켜볼 뿐이었다고 한다.
“학생운동 하다 치안본부에 끌려가거나 구치소에 있을 때도 어머니는 내게 반성문을 쓰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릴 때 심장 판막을 앓았는데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하다 다시 재발했다. 그때 어머니는 학교에 보약을 챙겨다 줬다. 학생운동도 말리지 않았다. 이후에도 계속 그랬다.”
그에게 정치를 권유한 것은 어머니 이 여사뿐만 아니다. 오빠도 그의 남편 장유식(51) 변호사도 정치를 권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딸의 출마를 우려했다. 총선 상대도 상대였지만, 그보다는 딸이 거친 정치판에서 행여나 상처받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가족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2년 4월 11일 총선은 서 의원에게 무척이나 어려운 싸움이었다. 달걀로 바위 치기나 마찬가지였던 선거에서 시장 토박이 이 여사와 그의 가족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그는 당당히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여의도 국회에 입성한 서 의원은 초선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치로 국민에게 지지를 얻고 있다.
미혼부들의 출생신고를 가능하게 한 ‘사랑이 법’, 공소시효를 폐지한 ‘태완이 법’ 등이 서 의원의 대표 법안이다. 초선 의원이지만 전혀 초선 같지 않은 서 의원. 36세에 정당에 발을 담갔지만, 이제야 자신의 정치를 시작했다. 서 의원의 정치는 ‘먹튀’가 아니다.
“정치인은 4년 계약직이다. 국민이 낸 세금을 뚝딱 해먹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재분배해주는 게 정치다. 국민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게 정치의 역할이다. 요즘 제일 큰 고민은 ‘사회 양극화’ 문제다. 그래서 생각한 게 기업들이 사업을 잘할 수 있도록 해주자. 기업이 외국이나 금고에 쌓아두지 못하는 구조를 만들어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재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하자.
일자리 고민이 아니라, 일은 하고 싶을 때 하고 최대의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자리 경제구조를 만들고 싶다. 정치인이 (국민의 세금을) 해 처먹는 사람이 아니라 세금을 잘 분배해 일정한 사회보장이 이루어지고 부의 생산과 가치를 잘 만들어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어보는 게 내 정치의 근본적인 목표다.”
서 의원은 스카프를 좋아한다. 스카프가 패션을 돋보이게 하는 한편 스스로 당당해지기 때문이다. 서 의원이 여의도 국회와 국민의 편에서 스카프를 휘날리며 무더위를 날리는 청량음료 맛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더팩트 ㅣ 이철영 기자 cuba20@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