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고수정 기자] "저들은 아버지를 죽이는 것 만이 공(公)이라 했고, 아버지에 대한 나의 연민은 사(私)로 몰아세웠다. 그러나 나라와 공인을 위한 것이라는 그들의 행위 속에 개인이나 당파를 위한 사심으로 가득 차 있음을 나는 뼈저린 아픔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 17일 개봉한 영화 '의궤, 8일간의 축제 3D'에서 조선 22대 왕 정조가 읊조린 말이다.
정조는 '사사로운 마음속에 공의 마음이 있고, 공의 마음속에 사사로움이 있다'라는 뜻의 '사중지공 공중지사'(私中之公 共中之私)에 대해 늘 고뇌했다. 어릴 적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숨을 거둔 이후로 개인적인 사사로운 인연과 마음에서 비롯됐지만 결국은 공익(公益)과 발전을 이루는 '사중지공'과 공익을 위한 일로 포장됐지만 실상 사익(私益)을 위한 것이라는 '공중지사' 어느 한 곳에도 마음을 둘 수 없었다.
정조는 1795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아버지 사도세자의 회갑을 맞아 '행행'(行幸·행복한 행차)이라는 8일간의 축제를 열었다. 그는 축제의 목적지인 화성에서 자신의 목숨을 끊임없이 노렸고, 아버지를 뒤주에 갇혀 죽게 했던 신하들에게 칼 대신 술을 건넸다. 신하들은 권력을 얻기 위해 사도세자를 '역적'으로 몰았고, 정조 암살 시도를 수차례 하는 등 '공중지사'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정조는 피비린내 나는 복수 대신 용서와 화합을 추구하는 '사중지공'을 실천했다.
200여 년이 지난 지금 정조의 '사중지공'이 아닌 신하들의 '공중지사'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정치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6·4 지방선거 예비후보들이 26일로 11일째에 접어드는 '세월호 참사' 애도를 위해 선거 운동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후보들은 애도를 표방한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현수막을 거는 등 교묘히 자신을 홍보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 한 학생이 부모에게 보낸 '엄마, 내가 말 못할까 봐 보내. 사랑해'란 문자메시지를 소개한 뒤 자신의 이름을 덧붙이며 애도 문자메시지를 보낸 한 교육감은 한동안 비난 여론을 피할 수 없었다. 또 애도 내용 뒤에 경선 일정·후보 기호를 덧붙이며 지지를 호소하는 후보도 있었다.
선거 운동 중단이 '공중지사'의 공익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애도 분위기가 형성돼 있고, 정치권도 이를 위해 '선거 시계'를 멈춘 만큼 교묘하게 애도를 표방한 행동은 사익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몰염치'한 후보들은 자신의 행동이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것일까? 정조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33년을 기다렸고, 그 '열망의 8일' 동안 '공중지사' 마음을 버리고 더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원했던 간절한 염원을 '사중지공'으로 승화시켰다.
정치권이 40여 일 남은 지방선거 일정을 조금씩 가동하고 있지만,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차디찬 바다에서 아직 나오지 못한 만큼 '공중지사'는 지양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정치팀 ptoda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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