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 '용산 참사' 21세기 '난장이'들의 분노
  • 고수정 기자
  • 입력: 2014.01.24 09:55 / 수정: 2014.02.20 18:16

"'그때 그 시절'을 아시나요?"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오늘'은 1년 전과 10년 전 제각각 다른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연도는 달라도 '오늘'이라는 공간에서 누군가는 빛을 보고, 누군가는 영원한 이별을 고하며, 역사적으로 큰 영향을 주는 사건들이 발생하기도 하죠. <더팩트>은 '그때 그 시절'이라는 코너를 마련해 조금 더 친밀한 표현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려고 합니다. 과거 한 주간의 이슈를 같이 되짚어 보는 시간, 잠시 쉬어가실까요? <편집자주>

지난 2009년 1월 19일부터 시작된 서울 용산 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의 농성은 전국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철거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농성 중인 한강대로변 재개발지역의 N빌딩 옥상에서 경찰의 강제진압 과정에서 옥상에 설치한 망루에 불이 나자 한 농성 철거민이 안에 사람이 있다며 울부짖고 있는 장면(위). 2009년 1월 22일 오전 용산참사로 숨진 철거민 사망자 5명의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에 당시 한나라당 진영 의원과 관계자들이 유가족들에게 항의를 당하고 있는 모습(아래). /서울신문 제공
지난 2009년 1월 19일부터 시작된 서울 용산 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의 농성은 전국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철거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농성 중인 한강대로변 재개발지역의 N빌딩 옥상에서 경찰의 강제진압 과정에서 옥상에 설치한 망루에 불이 나자 한 농성 철거민이 "안에 사람이 있다"며 울부짖고 있는 장면(위). 2009년 1월 22일 오전 용산참사로 숨진 철거민 사망자 5명의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에 당시 한나라당 진영 의원과 관계자들이 유가족들에게 항의를 당하고 있는 모습(아래). /서울신문 제공

[고수정 기자] 2014년 1월 넷째 주, 카드사의 고객정보 대량 유출로 떠들썩했습니다. 고객들은 카드를 재발급받기 위해 은행 영업시간 전부터 줄을 길게 서기도 했으며, 정부와 금융당국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지요. 과거의 한 주도 시끌벅적했습니다.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용산 철거민 진압 참사'와 대기업 부도는 물론 교육계의 신선한 결정도 내려진 한 주였네요. 새해를 여는 진통일까요?

◆ 2009년 1월 20일 '용산철거민참사'로 6명이 떠났습니다

1월 20일, 당혹스럽고도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21세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바로 '용산철거민참사'가 벌어진 날이죠. 철거예정인 서울 용산 재개발지역 상가 건물 옥상을 불법 점거해 농성을 벌이던 철거민 40여 명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불이 나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용산 4구역 세입자들은 19, 20일 이틀 동안 터전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농성에 몸을 담았습니다. 그들이 옥상에 설치한 망루는 '최후의 선택'이었습니다.

경찰은 농성 시작 하루 만인 20일 오전 5시 30분쯤 전경 2개 중대 180여 명을 동원해 재개발 지역 철거민들이 농성 중인 N빌딩을 포위한 뒤 '철수하지 않으면 강제 해산하겠다'고 경고했죠. 그 후 경찰은 대형 크레인으로 경찰특공대를 태운 컨테이너를 들어 올려 건물 옥상에 투입했습니다. 철거민들은 발밑 도로에 있는 전경과 컨테이너에서 내린 특공대를 향해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철거민들이 옥상에 쌓아둔 20L들이 시너통 수십 개에 불이 붙어 폭발음과 함께 삽시간에 옥상이 불길에 휩싸였고, 결국 6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농성이 시작된지 불과 이틀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경찰의 이토록 신속하고 강경한 대응은 거의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과잉진압 논란까지 벌어졌을 정도니까요. 세입자들은 살기위해 정부와 경찰에 손을 뻗었지만 그 누구도 잡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과연 누가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을까요.

◆ 1997년 1월 23일은 재계서열 14위 '한보그룹'이 무너진 날입니다

경제·정치계에 큰 파문을 일으킨 '대기업 연쇄부도'의 시발점이 된 날입니다. 바로 한보그룹과 한보철강이 금융부채를 이기지 못하고 부도를 낸 것이죠. 재계서열 14위였던 한보그룹은 한보철강을 통해 엄청난 추가금융지원을 받으며 굴지의 기업으로 우뚝섰습니다. 한보그룹의 불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정태수 총회장이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당진 제철소의 투자금을 초기 자본금의 두배로 불리면서 약 5조원에 이르는 외부차입금이 생겨났습니다.

취약한 재무구조 때문에 제철소 완공 이후에도 적자경영이 불가피할 것으로 금융기관이 뒤늦게 판단, 기존 대출금 회수에 나서면서 이날 한보그룹은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한보그룹의 부도는 여러가지로 주목받았는데요. 대한민국 IMF 관리 체계를 향한 첫발로 기록됐고, 한보그룹 이후에 1997년 한 해에만 삼미그룹 등 대기업 10여 곳이 부채 몸집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습니다.

◆ 1989년 1월 24일에는 방학 과외가 허용됐네요

역사 속 이 날에는 대학생들의 '돈벌이' 길이 열렸네요. 여름방학부터 초·중·고교 재학생의 방학과외가 전면 허용됐는데요. 물론 현직 교원과 학원강사의 과외교습은 현행대로 금지됐습니다. 중앙교육심의회는 이날 전체회의를 갖고 3시간여에 걸친 격론 끝에 2차례의 투표과정을 거쳐 과외금지조치 개선안을 확정했습니다.

문교부도 건의를 받아들여 지난 1980년 7·30 교육개혁조치 이후 과외교습이 9년 만에 부분 허용된 것이라 의미가 있어요. 대학 수석합격자들의 "과외라고는 받아본 적이 없다"가 상인들의 "밑지고 팔아요", 처녀들의 "나 시집 안가요", 노인들의 "빨리 죽어야지"와 함께 4대 거짓말이 될 만큼 이때부터 우리나라에 과외 풍습이 널리 퍼졌습니다.

ko0726@tf.co.kr

정치팀 ptoday@tf.co.kr

폴리피플들의 즐거운 정치뉴스 'P-TODAY'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