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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광주군 오포면 삼성공원 내 산 끝자락에 자리한 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묘. 꽃이 채 시들지 않은 작은 화분 두 개가 묘 앞에 놓여져 있다. / 경기 광주=소미연 기자
[경기 광주=소미연 기자]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한 이유에 대해 "민주화를 위하여"라고 말했다. 당시 군부는 김 부장이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과의 오랜 감정대립으로 인한 우발적인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으나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김 부장은 자신의 무덤 앞 상석에 "나 사랑하는 삼천 칠백만 국민에게 自由(자유)를 찾아 되돌려 주었다. 10·26 민주국가 만세"라고 글씨를 새겨 넣었다.
물론 '박정희 추종자'들은 김 부장을 역적이라 불렀다. 오죽하면 경기 광주군 오포면 삼성공원 내 산 끝자락에 있는 김 부장의 묘를 찾아와 추모비를 훼손시켰을까. '10월 26일'을 앞둔 지난 23일 <더팩트>이 김 부장의 묘를 찾았을 때는 꽃이 채 시들지 않은 작은 화분 두 개가 김 부장의 넋을 위로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김 부장의 묘를 관리하는 관리사무실 한 관계자는 "유족들이 한 번씩 찾아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유족들의 근황을 추적하기란 쉽지 않다. 김 부장의 어머니 권유금씨가 생전 그의 옛집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3가 61번지를 지켜왔으나 <더팩트> 취재 결과 권씨의 사망 후 지난 2006년 7월 멸실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김 부장의 아내 김영희씨는 2002년 2월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서초구 방배동으로 집을 옮긴 뒤 행적을 찾기 어렵다. 다만, 김 부장을 기억하는 주변인들 사이에서 김씨가 '재력가'라는 소문만 남아있을 뿐이다.
실제 지난 2005년 10월 한 언론사에서 김씨가 수백억원의 재산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김씨는 감시 카메라와 경비원들이 24시간 정문을 지키고 서 있는 최고급 빌라에 거주하고 있다. 이 빌라와 함께 청담동 4층 빌딩, 서초동 7층 빌딩 등 총 1백50억원대에 달하는 부동산을 김씨가 소유하고 있다는 게 취재진의 주장이다. 뿐만 아니다. 김씨는 장학재단도 운영했다. 재단의 이사장은 그의 딸 김모(58)씨가 맡았다. 하지만 워낙 자신을 감춰왔던 터라 아무도 두 모녀가 김 부장의 유족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벌서 7년 전 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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