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숨은 김재규 유족, 서자 두 형제만 생활고에 '허덕'
입력: 2012.10.25 12:35 / 수정: 2012.10.25 12:35

경기 광주군 오포면 삼성공원 내 산 끝자락에 자리한 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묘. 꽃이 채 시들지 않은 작은 화분 두 개가 묘 앞에 놓여져 있다. / 경기 광주=소미연 기자
경기 광주군 오포면 삼성공원 내 산 끝자락에 자리한 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묘. 꽃이 채 시들지 않은 작은 화분 두 개가 묘 앞에 놓여져 있다. / 경기 광주=소미연 기자

[경기 광주=소미연 기자]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한 이유에 대해 "민주화를 위하여"라고 말했다. 당시 군부는 김 부장이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과의 오랜 감정대립으로 인한 우발적인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으나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김 부장은 자신의 무덤 앞 상석에 "나 사랑하는 삼천 칠백만 국민에게 自由(자유)를 찾아 되돌려 주었다. 10·26 민주국가 만세"라고 글씨를 새겨 넣었다.

물론 '박정희 추종자'들은 김 부장을 역적이라 불렀다. 오죽하면 경기 광주군 오포면 삼성공원 내 산 끝자락에 있는 김 부장의 묘를 찾아와 추모비를 훼손시켰을까. '10월 26일'을 앞둔 지난 23일 <더팩트>이 김 부장의 묘를 찾았을 때는 꽃이 채 시들지 않은 작은 화분 두 개가 김 부장의 넋을 위로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김 부장의 묘를 관리하는 관리사무실 한 관계자는 "유족들이 한 번씩 찾아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유족들의 근황을 추적하기란 쉽지 않다. 김 부장의 어머니 권유금씨가 생전 그의 옛집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3가 61번지를 지켜왔으나 <더팩트> 취재 결과 권씨의 사망 후 지난 2006년 7월 멸실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김 부장의 아내 김영희씨는 2002년 2월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서초구 방배동으로 집을 옮긴 뒤 행적을 찾기 어렵다. 다만, 김 부장을 기억하는 주변인들 사이에서 김씨가 '재력가'라는 소문만 남아있을 뿐이다.

실제 지난 2005년 10월 한 언론사에서 김씨가 수백억원의 재산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김씨는 감시 카메라와 경비원들이 24시간 정문을 지키고 서 있는 최고급 빌라에 거주하고 있다. 이 빌라와 함께 청담동 4층 빌딩, 서초동 7층 빌딩 등 총 1백50억원대에 달하는 부동산을 김씨가 소유하고 있다는 게 취재진의 주장이다. 뿐만 아니다. 김씨는 장학재단도 운영했다. 재단의 이사장은 그의 딸 김모(58)씨가 맡았다. 하지만 워낙 자신을 감춰왔던 터라 아무도 두 모녀가 김 부장의 유족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벌서 7년 전 보도다.

김 부장의 내연녀 장정이씨가 낳은 두 형제는 다음달 아버지가 남긴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집을 떠나 동작구의 한 임대아파트로 입주한다.
김 부장의 내연녀 장정이씨가 낳은 두 형제는 다음달 아버지가 남긴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집을 떠나 동작구의 한 임대아파트로 입주한다.

김 부장의 내연녀였던 장정이씨는 지난 2008년 3월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본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서자 두 형제만 어머니 장씨가 떠난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집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이 집에서 지낼 수 있는 날도 멀지 않았다. 지난 2010년 서울시의 건물철거소송에서 패소했기 때문이다.

생전 김 부장은 자신이 설립을 주도한 학교법인 중경학원 용지 일부를 장씨가 낳은 장남 김모(43)씨의 이름으로 사들였고, 이 땅 위에 휘하의 공병부대원들을 동원해 집을 지었다. 현재 김씨가 살고 있는 집이 바로 김 부장의 선물인 셈이다. 그러나 김씨는 10·26사태 이후 '선물'을 뺏겼다. 부정축재 재산환수 조치에 따라 집이 신군부에 넘겨졌고, 이후 서울시교육청 소유가 됐다. 장씨가 이에 맞서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을 냈지만 기각 당했다.

하지만 김씨는 집을 포기하지 못했다. 법원이 집행관을 파견해 퇴거요청서를 전달했으나 꿈쩍하지 않았다. 태어나서 40년 넘게 살아온 집이기도 하거니와 공과금 내기도 어려운 형편에 다른 집을 구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현재 김씨는 파견직 운전사 일을 하며 지능이 떨어지는 동생(37)을 돌보고 있다.

김씨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중부교육청에서 팔을 걷어붙였다. 한 관계자는 24일 <더팩트>과 만나 "지난 2월 처음으로 김씨의 집을 들어가 봤는데, 1980년대에 시간이 멈춰진 느낌이었다. 강제집행을 차마 할 수 없었다"면서 "김씨 형제가 먹고 살 수 있는 방안을 먼저 찾아주기로 방향을 틀고 임대아파트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김씨는 빠르면 다음달 초 서울 동작구의 한 임대아파트로 입주한다. 김씨 형제가 짐을 옮기고 나면 김 부장의 생전 흔적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 교육청은 김씨 형제가 지켜온 서빙고동 집을 허물고 차후 생태학습장으로 꾸밀 계획이다.

<사진=소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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