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준의 쿨~한만남]<11> 세계 톱 발레리나 서희, '강수진이 차범근이면 당신은 박지성'
  • 김용일 기자
  • 입력: 2012.07.25 12:16 / 수정: 2012.07.25 12:16

세계적 발레리나 서희(오른쪽)와 곽승준 위원장이 유니버설발레단에서 만나 유쾌한 이야기를나누었다. / 노시훈 기자
세계적 발레리나 서희(오른쪽)와 곽승준 위원장이 유니버설발레단에서 만나 유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노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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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리더와 이슈메이커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현재를 살고 있는가. 또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가. "따분한 보수는 가라"며 '쿨 보수'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곽승준(52)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장관급)이 변화와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는 사람들과 특별한 만남을 갖는다. 20~40대가 주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더팩트>과 '쿨한 융합'이라는 목표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는 곽승준이 펼치는 색깔 있는 대화는 이슈메이커들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장이 될 것이다.<편집자 주>

한국이 낳은 세계적 발레리나 서희(26)는 미국 뉴욕의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에서 한국인 최초로 수석 무용수가 된 월드스타다. 발레계 일각에선 축구에 비교할 때 '강수연이 차범근이라면 서희는 박지성'이라고 부르곤 한다. ABT는 파리 오페라발레단, 영국 로열발레단과 함께 세계 3대 발레단에 꼽힌다. 2005년 입단 후 7년 만에 수석 무용수가 됐으니 자랑할 만하다. ABT 75년 역사에 한국인이 수석 무용수가 된 것은 서희가 처음이다. 세계 발레계의 '백조'로 떠오른 서희의 인생스토리엔 성공한 자의 공통분모인 '눈송이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죽도록, 피나도록' 연습한 끝에 일찌감치 큰 성공을 거뒀다.

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지젤' 공연차 내한 한 그는 섬세한 동작과 표현, 내면 연기가 어우러져 낭만발레의 대명사인 지젤을 훌륭하게 그렸다. 이번 내한기간 중엔 유니버설발레단의 하계 발레스쿨에서 강의를 한다. '발레 한류'를 이끄는 그는 어떤 생각으로 이 시대를 살고 있을까. 23일 유니버설발레단에서 만난 서희는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며 야심찬 눈빛으로 토슈즈를 매만졌다.

미국 뉴욕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75년 역사상 한국인 최초로 수석 무용수가 된 서희.
미국 뉴욕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75년 역사상 한국인 최초로 수석 무용수가 된 서희.

◆ "배드민턴부 들어가려다 정원이 꽉 차 발레부로…운명인 셈"

- 먼저 수석 무용수로 승진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수석 무용수가 된 뒤 한국에서 첫 공연을 했는데요.

감사합니다. 수석 무용수가 돼 떨린 것 보다 한국에서 하는 공연이었기에 더 긴장이 된 것 같아요.(웃음)

- 한국에선 몇 차례 공연을 했었죠?

자주는 아니었어도 게스트로 몇 번 참여를 했었어요. 유니버설발레단과 호두까끼 인형, 지젤 투어를 통해 두세 번 했죠.

- 두 달 전 서희 씨와 인터뷰를 하려고 연락했을 땐 솔리스트였어요. 그 사이 수석 무용수로 승진하셨더군요. 수석 무용수가 되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대우나 주변의 시선 등에서요.

글쎄요, 우선 발레단 내 개인 방이 생겼죠.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을 담당해주시는 분, 짐을 들어주거나 물을 주시는 분, 심지어 땀까지 닦아 주시는 분까지…. 저와 5~6명이 함께 움직이죠. 아직은 부담되고 불편한 것은 사실이에요.(웃음) 가끔 혼자 집중할 시간도 필요하잖아요. 감사하지만 아직 적응이 안 되네요. 대외적으로는 아무래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죠.

- 발레에만 집중하라는 것이군요.

그렇죠.(웃음)

초등학교 6학년 때 발레를 시작했다는 서희. 남보다 늦은 만큼 죽도록, 피나는 훈련을거듭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발레를 시작했다는 서희. 남보다 늦은 만큼 '죽도록, 피나는' 훈련을
거듭했다.

지난 7일 ABT 홈페이지는 솔리스트로 활동하던 서희가 수석 무용수로 승급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2006년 군무를 추는 코르 드 발레(corps de ballet)로 활동하다 2010년 8월 솔리스트로 승급했다. 발레단마다 차이점은 있지만 일반적으로 무용수는 주인공 역을 맡는 수석 무용수와 캐릭터 댄스를 추는 솔리스트, 코르 드 발레로 단계가 나뉜다.

- 초등학교 6학년 때 발레를 시작했더군요. 생각보다 늦게 시작한 것인데요. 원래 배드민턴을 치려다가 발레단에 가입했다고요?

네.(웃음) 초등학교 6학년 때 방과 후 수업으로 배드민턴부에 들어가려고 했어요. 친구들과 놀고 싶었죠. 그런데 정원이 꽉 차서 밀리고 밀려 발레부에 들어갔어요. (밀린 게 다행이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다행이죠.(웃음)

- 늦은 만큼 피나는 연습을 거쳤어요. 마침 선화예중 입학 6개월 만에 첫 실기시험에서 1등도 했고요. 부모님은 반대하지 않으셨나요?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셨어요.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그만 두라고 하셨죠. 지금도 제 인생의 갈림길에서 무언가를 결정할 때 부모님은 관여하시지 않는 편이세요.

- 이후 워싱턴 키로프발레학교와 독일 슈투트가르트 존크랑코발레학교를 거쳐 ABT에 입단했어요. 발레란 예술도 워낙 힘이 들텐데 그만 두고 싶을 때 있었죠?

물론이죠.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지금도 가끔 힘들 때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만 둬도 전 다시 발레를 할 것 같아요.

- 한국에서 발레의 시장성을 봤을 때 학창 시절 때 진로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전 사춘기도 늦게 온 것 같아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발레단에 입단했을 때야 사춘기가 왔죠. 그래도 승부욕이 있었어요. 발레단에 처음 와서 공연을 했을 때였는데 무용수가 약 100명 있어요. 당연히 제가 막내라서 등급이 낮잖아요? 그런데 등급별 이름표가 붙어있는데 제가 가장 아래 있는 게 참 싫더라고요.(웃음) 모두 다 거치는 과정인데요. 그래서 더 열심히 했고, 복이 많았던지라 좋은 길이 많이 열렸던 것 같아요.

- 노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었을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나도 미국에서 오래 공부를 했지만, 서희 씨도 오랜 국외 생활이 외롭지 않나요?

이제서야 한국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옛날엔 발레를 하고 친구들과 생활하는 게 즐겁다는 생각이 더 컸어요. 물론 지금도 즐겁지만, 나이를 한 살 씩 먹으면서 외롭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랜 기간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외로웠지만, 골목대장 놀이를 하며 풀었다고 말한 곽위원장 말에 웃음이 터진 서희. 두 사람은 오랜 국외 생활을 경험한 공통점을 두고 시종일관즐겁게 얘기를 나눴다.
"오랜 기간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외로웠지만, 골목대장 놀이를 하며 풀었다"고 말한 곽
위원장 말에 웃음이 터진 서희. 두 사람은 오랜 국외 생활을 경험한 공통점을 두고 시종일관
즐겁게 얘기를 나눴다.

◆ "여성 무용수가 가장 아름다울 땐 '여성적일 때'"

- 세계적인 발레단 ABT에서 롤 모델은 누군가요.

주인공 역을 맡는 무용수를 보면 각자의 장단점과 개성이 분명해요. ABT는 제가 소속돼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유능한 무용수가 워낙 많고 이들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단장님도 계시죠. 전 주인공 무용수 뿐 아니라 코르 드 발레 친구들도 매우 좋아해요. 그런데 제가 어떤 무용수가 되고 싶은지 정해야 하잖아요? 전 여자 무용수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여성적일 때'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줄리 켄트(43)는 제 우상이죠. 나이도 마흔이 넘으셨고, 아이가 둘인데 삶의 밸런스가 완벽한 것 같아요. 커리어 면에서 발레리나가 부러워하는 삶이죠.

- 그럼 본인의 차별화 된 장점은 무엇인가요.

저도 그걸 궁금해 하고 있어요.(웃음) 단장께선 저를 손녀 딸 보듯 하셔서요. 찾아가야죠.

- 국외 발레단에 있으면서 동양인으로서 불리한 점은 있나요.

장단점이 있겠죠. 가끔 외국인 친구들에 둘러싸여 살다보니까 거울보고 놀랄 때가 많아요. 나도 저 친구들처럼 생긴 줄 알았는데 다르게 생겼거든요.(웃음) 어쩔 수 없이 발레단 자체가 외국 사람에게 더 맞춰져 있죠. 그러나 동양인이 갖고 있는 특유의 섬세함이나 내면의 아름다움이 부각될 때가 있어요.

- 발레리나가 작고 예뻐서 많이 안 먹을 것 같지만, 삽겹살 5인분도 거뜬히 먹는 분들이 많다고 하던데요. 사실인가요?

맞아요. 상당히 잘 먹는 편이에요. (체중 조절은 하나요) 무용을 오래 하다보면 체중을 딱 45kg처럼 정해놓지 않아요. 자신한테 맞는 몸무게가 있거든요. 무조건 마른 게 좋지 않아요. 3시간 발레를 해야 하니까 안 먹고 할 순 없거든요. 즉 자기 몸무게를 찾아가요. 거기서 더 많이 안 나가려고 노력은 하죠. 일정 기간 몸무게를 유지하면 많이 먹든 안 먹든 크게 변하지 않아요.

한국발레계는 이른 나이에 성공을 경험한 그를 롤 모델 삼아 제2, 제3의 서희가 탄생하길 바라고 있다.
한국발레계는 이른 나이에 성공을 경험한 그를 롤 모델 삼아 제2, 제3의 서희가 탄생하길 바라고 있다.

- 한국에서 많은 후배들이 서희 씨를 보고 세계적인 발레리나를 꿈꿀 겁니다.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요.

어떤 분야든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쉽지 않죠. 제가 힘들었을 때 ABT 부단장께서 이런 말을 해주셨어요.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하기 싫은 날에 하는 것이 프로가 되는 길"이라고요. 내가 기분 좋을 때만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하기 싫고 어려워도 인내심을 갖고 자기 일을 사랑해야 한다고요. 전 그 말을 후배들에게도 해주고 싶어요.

- 발레를 생활 체육처럼 대중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나요.

하고 싶죠. 많은 분들이 발레를 어렵게 생각하시잖아요? 제 친구들도 발레 보러오라고 하면 선뜻 오지 못해요.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시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최근 한국에선 해설을 곁들인 발레 공연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발레도 갈라 공연을 하는데, 홍보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스포츠에 더 열광하시니까.

- 스포츠는 규칙을 정해놓고 승부를 내잖아요. 발레는 문화 예술의 범주에서 감동을 느끼는 것이고요. 인간이 갖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사람이 재연을 하는 것이라서 다르게 느끼는 것 같아요. 서희 씨는 발레를 몇 살까지 하고 싶으세요?

어렵네요.(웃음) 오래 하고 싶어요. 늦게 시작한 만큼 할 수 있을 때까지요. 남들은 저보다 한 10년을 더 했을 텐데 전 10년을 못 받았잖아요. 시간이 없으니까 더 많이 열심히 하고 싶네요.

- 서희 씨를 발레계의 박지성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어려운 곳에서 어렵게 경쟁해서 살아남은 것을 인정하더군요. 미국은 최고의 '발레리나'라고 하고, 러시아는 '프리마 발레리나 아솔루타'라고 해요. 줄리 켄트나 프랑스의 실비 길렘(47)처럼 최고 발레리나 칭호를 받는 서희 씨의 모습 기대할게요.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웃음)

발레를 많이 사랑해달라고 말한 서희. 그의 제2의 꿈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발레를 많이 사랑해달라"고 말한 서희. 그의 제2의 꿈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정리 = 김용일 기자

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kyi0486@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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