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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태촌은 1970~1980년대 악명 높은 조폭 두목으로 유명하지만 실제 취재진들과의 만남에선 유쾌했다. / 이효균 기자 |
[소미연 기자] '범서방파' 보스 김태촌은 미디어에 민감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와중에도 자신과 관련된 기사가 나오면 볼펜으로 밑줄까지 그으며 꼼꼼히 읽었다. 혹여 일반 시민들에게 위화감을 주진 않을까 내심 걱정하는 눈치였다. VIP 병실에서 일반병실로 갑작스레 옮긴 것도 한 방송사의 지적을 받고서다.
김씨는 "김태촌이 하루에 50만원짜리 특실을 사용하고 있다는 보도를 봤다"면서 "가만 생각해보니 서민들의 한 달 월세와 다름없는 돈을 내가 하루에 쓰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걸 본 서민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나. 안되겠다 싶어서 일반실로 내려왔다"고 설명했다. '조폭'이란 주홍글씨를 평생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김씨는 더욱 조심하고 싶었다.
그래서 김씨는 기자가 병실을 다시 찾아 '못 다한 이야기'를 마저 하자고 했을 때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는 김씨를 설득해 지난 17일에 이어 19일 또 한 차례 인터뷰가 성사됐다. 이날 김씨는 검찰에 대해선 말을 아끼면서도 '피바다' 협박 논란을 불러왔던 배우 권상우에 대한 애정은 숨김없이 드러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 2년 전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민까지 생각하고 있다며 복잡한 심경을 고백한 바 있다. 지금도 이민에 대한 생각은 여전한가.
이제는 이민을 생각할 심적 여유가 없다. 그때는 하도 시끄러워서 조용히 살아볼까 하고 이민을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 생각이 바뀐 이유는 무엇인가.
의료시설이 너무 열악했다. 일본이나 캐나다 쪽을 나가봤는데, 진통제 하나 맞는 것도 엄청 까다로웠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 이민을 가면 힘들겠구나 싶었다.
- 회복이 안 되는 건가.
내 통증은 해결이 안 된다.
- 그럼 계속 이렇게 진통제를 달고 있어야 하는 건가.
통증을 갖고 살아가야지. 암환자들이 암을 갖고 살아가는 것처럼 똑같다.
- 일각에선 범서방파가 재정비를 했다, 오른팔의 결혼식에 참석해서 세력을 다시 키웠다는 얘기도 있다.
내가 직접 간 게 아니고, 내 이름으로 화환을 보냈을 뿐이다. 그때 하객들이 많이 오니까 기자들이 조직 재건을 하려는 나한테 눈도장을 찍기 위해 온 게 아니냐 그런 식으로 기사를 냈다.
- 단순히 축하의 의미인데 언론에서 확대해석했다?
그렇다. 재건과 관계없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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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암 수술 후유증을 앓고 있는 김태촌은 건강 악화로 이민을 포기했다. |
- 배우 권상우와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는가.
권상우와는 직접적으로 연락을 안 한다. 대신 권상우 회사 매니저들과 잘 지내고 있다. 내가 직접 만나거나 연락을 하게 되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권상우를 정말 좋게 봤다. 지난번 구속됐을 때, 권상우가 사나이답게 피바다 사건도 그런 말 한 적이 없다, 체벌도 원치 않는다, 확실하게 진술해줬다. 이후로 내가 정말 사랑하고 아끼게 됐다. 권상우도 나한테 삼촌으로 삼겠다고 해서 삼촌으로 부른다. 하지만 나와 가깝게 지내다가 나로 인해 피해를 보지 않을까 해서 마음만 갖고 있다.
아마 권상우도 마찬가지일거다. 내가 자기를 아끼는 마음으로 연락을 안 하는 것처럼 자기도 나를 좋아하니까 연락을 안 할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우연히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할 수는 있겠지. 탤런트 임현식씨가 드라마 '대물'을 촬영할 때 아버지와 아들로 나오지 않았나. 임현식씨와 내가 친하니까 내 얘길 많이 했다고 들었다. (권상우도) 좋은 얘기 많이 했다더라. 그래서 나도 잘 지내라고 (임현식씨에게) 전해 달라 했다. 그때 만나고 싶었는데 안 만났다. 다른 연예인은 편하게 만나지만 권상우를 만나는 것은 내가 피한다.
- 다른 연예인들과도 친분이 있는가.
아무래도 접촉을 많이 하니까. 옛날에 연예인들이 밤무대를 많이 뛰지 않았나. 연예계 선후배 사이니까 많이 알고 있지.
- 하일성 야구 해설위원과의 오랜 우정도 유명한데.
하일성씨는 거의 매일 병문안 온다.
- 관할 경찰서에서도 병실을 자주 찾는다는 얘길 들었다.
동향파악이다. 나한테 주홍글씨가 있으니까. 인천 장례식장에서 폭력사건이 났기 때문에 만에 하나 나한테 그런 폭력사건이 날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신변 변호 내지는 사건 방지 차원에서 그런가보다.
('인천 장례식장 폭력사건'은 지난해 10월21일 밤 인천에 위치한 길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일어났다. '크라운파' 조직원 장례식장에 조문을 온 '간석식구파'의 한 조직원이 크라운파로 조직을 옮긴 옛 동료와 말다툼을 벌이다 흉기로 찌르면서 두 조직이 충돌한 것. 당시 난투극을 벌이던 크라운파 조직원은 100여명, 간석식구파 조직원은 30명이었다. 싸움의 규모가 컸던 만큼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도 손을 쓸 수 없었다. 때문에 같은 병원에 조문을 온 시민들은 꼼짝없이 장례식장에 발이 묶인 채 공포에 떨어야 했다. 경찰은 뒤늦게 지원인력 100여명이 도착해서야 폭력배를 해산시켰는데, 이 사건으로 경찰이 뭇매를 맞게 되자 조현오 경찰청장은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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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태촌은 '인천 뉴송도호텔 폭행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당시 사건을 사주한 박모 검사의 녹취록과 혈서를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 김태촌의 인생에서 1986년 인천 뉴송도호텔 폭행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당초 김씨는 자신이 부하에게 뉴송도호텔 사장 황모씨의 다리를 부러뜨리라는 지시를 했다고 인정해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다 18년이 지난 뒤 진술을 달리했다. 사건의 배후에 당시 현직 부장검사였던 박모씨의 존재를 폭로한 것. 김씨는 2004년 9월14일 인천지법에서 열린 보호감호 재심청구에서 "당시 황씨와 채권 채무관계가 있던 박 검사의 부탁을 받았다"면서 "돈을 갚지 않은 황씨에게 앙심을 품은 박 검사가 나에게 '살해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박 검사는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같은 사실이 담긴 녹취록과 박 검사와 함께 쓴 혈서가 김씨에게 있다.)
부장검사와 관련된 사건인 만큼 기사가 나오면 현직 검사들이, 검찰에서 나를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민감한 얘기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영화와 자서전이 안 된다는 것도 이것 때문이다.
- 그럼 혈서는 언제 공개할 생각인가.
시기를 보고 있다. 그런데 내 처가 혈서를 가지고 안 내주고 있어서 고민이다. 사실 혈서뿐 아니라 녹음기도 있다. 녹음기엔 "(황 사장을) 죽여"라고 나온다. 혈서에는 '신의(信義)'를 자기(박 검사)하고 나하고 한 글자씩 썼다. 그런데 이 사람 역시 나를 배신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끝까지 비밀을 지키다가 공소시효가 지난 다음에 공개했다.
- 박 검사는 부인하는 것 같은데.
안 그랬다고 할 수 없다. 묵묵부답이지. 안 그랬으면 진즉에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을 것이다.
- 당시 채무가 얼마나 얽혀있었나.
얼마 되지도 않았다. 자기(박 검사)가 호텔에 투자를 했는데, 그 호텔 사장이 돈을 안 주니까.
- 지금 대구 협박 사건도 닮은꼴 아닌가. 지인의 부탁을 받고 투자금 회수에 나서다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전혀 관계없는 얘기다. 대구 협박 사건은 내가 사업차 사무실에 갔는데, A와 B가 시끄럽게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왜 말다툼하냐, 하지 마라, 중재를 했을 뿐이다.
- 잘못된 보도라는 건가.
그렇다.
<사진=이효균 기자>
[더팩트 정치팀 ptoda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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