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 배구가 오랜만에 남북 경기를 가졌다. 지난 21일 대만국립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제16회 아시아선수권대회 8강전에서 한국은 경기 전 예상대로 북한을 3-1로 가볍게 물리쳤다. 여자 배구 남북 경기는 1992년 일본 가고시마에서 열린 NHK배 대회 이후 19년 만이다. 한국은 이번 승리로 북한에 6승2패로 앞서게 됐다.
한국은 1963년 도쿄 올림픽 예선전과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북한에 0-3으로 졌으나 1974년 테헤란 아시아경기대회에서 3-0으로 이긴 이후 이번 대회까지 6연승하고 있다.
북한은 뮌헨 올림픽 3위 결정전에서 한국을 물리치고 동메달을 획득했다. 한국과 북한을 포함해 한반도 선수들이 기록한 첫 번째 올림픽 구기 종목 메달이다. 남북이 치열한 체제 경쟁을 하던 때이니 배구계에 비상이 걸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북한 여자 배구는 1970년대 초반까지 세계적인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이때까지 미국과 서유럽, 남미 나라들은 여자 배구를 레크리에이션으로 즐기는 수준이었다. 북한은 1956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17개 나라 가운데 8위를 차지했다. 이 대회는 제2회 대회이기도 하거니와 비극적인 한국전쟁이 끝난 뒤 불과 3년여 만에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는 사실이 특기할 만하다. 한국에서는 9인제 배구를 하고 있을 때다. 1962년 모스크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14개 출전국 가운데 10위를 했다.
한국은 1967년 도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했으나 이 대회에는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나라들이 불참하고 일본과 미국, 한국, 페루 등 달랑 4개국만 출전했다. 북한은 1970년 불가리아 바르나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소련과 일본에 이어 3위를 차지했고 1972년 뮌헨 대회에서 일본(1964년 도쿄 대회 금메달, 1968년 멕시코시티 대회 은메달)에 이어 아시아 나라로는 두 번째로 올림픽 여자 배구에서 메달을 차지했다.
그런데 대만 대회에 북한 대표팀을 이끌고 온 감독 이름이 어딘선가 본 듯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남북 동포가 이렇게 만나서 경기를 한다는 것은 경기 결과를 떠나서 좋은 일"이라고 말한 강옥순 감독은 1972년 뮌헨 올림픽 동메달 멤버다. 강옥순은 비롯해 황희숙, 장옥림, 정옥진, 김정복, 김명숙, 김연자, 백명숙 리춘옥 등 북한 선수들은 김영자, 이순복, 조혜정, 유정혜, 윤영내 유경화 등 또래 한국 선수들과 치른 3위 결정전에서 3-0(15-7 15-9 15-9)으로 완승했다. 한국 선수들 가운데 조혜정과 유정혜, 유경화 등은 4년 뒤인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으로 활약했으니 당시 북한 여자 배구의 실력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에 완패한 여자 배구는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스파르타식 혹독한 강훈련을 거쳐 올 올림픽 동메달을 땄고 1974년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벌어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3개 출전국 가운데 3위에 오르며 북한을 따라잡고 전성기를 누렸다. 북한을 의식한 경쟁심이 종목의 수준을 끌어올린 대표적인 사례다.
여자 배구뿐만 아니라 북한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스포츠 분야에서 한국에 앞섰다. 올림픽 금메달도 북한 먼저 땄다. 북한이 처음으로 출전한 1972년 뮌헨 올림픽 사격 소구경복사에서 이호준이 금메달을 차지했다. 실내 빙상장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 지리적으로 이점이 있었던 북한은 1964년 인스부르크 동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000m에서 한필화가 은메달을 목에 거는 등 겨울철 종목에서도 한국보다 앞선 경기력을 보였다.
그러나 1980년대를 기점으로 한국과 북한의 스포츠 실력은 역전됐고 이후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북한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1988년 서울 두 차례 올림픽에 정치적인 이유로 출전하지 않으면서 세계적인 흐름에서 뒤졌다. 또 하나의 이유는 경제력의 차이다.
1988년 서울 대회에 프로 테니스 선수가 처음으로 출전한 이후 아마추어리즘을 고수하던 올림픽은 프로에 문호를 개방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한 미국 남자 프로 농구(NBA) 드림팀이 대표적인 사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프로 선수로 구성된 한국 야구팀은 9전 전승으로 우승했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프로 스포츠는 활성화될 수 없다. 1990년대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한 북한은 경제력에서 한국에 완전히 밀렸다. 그러다 보니 스포츠에서도 한국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 됐다.
1972년 뮌헨 올림픽 여자 배구 동메달 멤버인 강옥순의 이름을 보고 북한 스포츠에 대해 잠시 살펴봤다.
더팩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