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일의 코리언 레전드]<8> '여자양궁의 전설' 김수녕, 중3 때 국가대표 꺾고…ⓛ편
  • 김용일 기자
  • 입력: 2011.07.08 14:11 / 수정: 2011.07.14 16:50
▲ 신궁(神弓)이 전설이 돼 돌아왔다
▲ '신궁(神弓)'이 전설이 돼 돌아왔다

한국 양궁에서 '신궁'이라는 칭호는 오직 김수녕(40)에게만 따라다녔다. 여자 양궁을 세계적인 경쟁력으로 끌어올린 김진호는 '양궁의 여왕',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서향순은 '신데렐라',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과녁 정 가운데 설치된 방송카메라 렌즈를 연달아 깨드린 김경욱에겐 '명궁'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 이후에도 한국 양궁을 대표하는 여러 재능들이 출현했지만 '신궁' 대접을 받기에는 부족했다.

김수녕이 걸어온 이채로운 발자취를 들여다보면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한국인 최초의 2관왕(개인전, 단체전)을 달성하더니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로 3관왕을 거머쥐었다. 1989년, 1991년 세계선수권을 통해서는 대회 첫 2관왕 2연패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1993년 21살의 젊은 나이에 돌연 은퇴한 이후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갔다. 1999년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6년 만에 다시 활을 잡겠다고 선언했다. 세계무대보다 더 치열하기로 유명한 국내 국가대표 선발전을 가볍게 통과했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인전 동메달, 단체전 금메달을 일궈내며 한국 유일의 하계올림픽 4관왕 자리에 올랐다.

세계가 깜짝 놀란 김수녕의 이 같은 행보는 지금까지도 경이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제양궁연맹(FITA)은 5일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 개최지인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김수녕을 '20세기 최고의 궁사'로 선정했다. FITA는 창립 8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지난 세기를 대표하는 궁사로 김수녕을 주저 없이 선택한 것이다.

▲ 김수녕(40) 대한양궁협회 이사 겸 방송해설가
▲ 김수녕(40) 대한양궁협회 이사 겸 방송해설가

세계양궁선수권이 시작되기 사흘 전인 1일 오후 서울 사당역 인근의 한 카페. 김수녕 대한양궁협회 이사를 만날 수 있었다. "코리언 레전드로 뽑아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전이경(쇼트트랙) 위원 등 이전에 다뤄졌던 분들의 글을 접했어요. 양궁을 대표해서 제가 선정돼 더욱 영광이에요"

◆ '인생 2막' 정조준 "최고라고 생각해 본적 없어요"
김수녕은 착실히 인생 2막을 정조준하고 있다. 대한양궁협회 이사로 활약할 뿐 아니라 오는 10월 전국체육대회를 앞두고 (재)한민족한마음 전국체전 범도민 추진위원회 이사장도 맡고 있다. "경기도 측에서 전국체전을 앞두고 외국인 동포가 방한하는 것을 대비해서 이 직책을 제안하셨어요. 제가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올림픽 같은 큰 무대 경험도 있고 체육 행사이다 보니 믿음을 주셨죠"

김수녕은 스위스 로잔에 있는 FITA에서 인턴으로도 근무할 예정이다. 올해 말까지 6개월 동안 현지에 머물며 국제스포츠 행정의 기초를 배운 뒤 상황에 따라 2년 동안 근무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양궁하면 김수녕을 먼저 떠올려주셔요. 개인적으로 정말 감사드리죠. 사실 저 말고도 2관왕이나, 금메달을 딴 후배들이 많잖아요? 제가 최고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경험이 많은 것뿐이죠. 사실 인터뷰나 방송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하는데 제가 솔직히 노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코리언 레전드에는 나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 고1 시절 최연소 국가대표에 발탁된 김수녕
▲ 고1 시절 최연소 국가대표에 발탁된 김수녕


▲ 최근 국제양궁연맹(FITA) 선정 20세기 최고의 궁사로 선정됐다
▲ 최근 국제양궁연맹(FITA) 선정 20세기 최고의 궁사로 선정됐다

현역 생활을 마감한 뒤 방송 해설가, 강사로 활약했다. 국제 스포츠 행정가로 변신하기 위한 예열도 성실히 수행했다. 올 2월에 석사(경희대 체육대학원) 학위를 받은 뒤 한양대 스포츠산업 마케팅 센터에서 양궁을 비롯한 비인기종목 특성화와 관련된 공동 프로젝트를 맡기도 했다. "흥미와 교육적인 요소가 중요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상이 너무 바쁘고 할 일이 많죠. 여유 있게 '활이나 쏠까'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어요"

"(시내에 사격장 말고 양궁장이 있다면) 좋은 생각이죠.(웃음) 양궁 같은 경우에도 학교 외에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협회에서 여자 메달리스트들끼리 '명궁회'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양궁 교육을 원하는 학교를 찾아가기도 했어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대중들이 '직접 하면 재미있겠구나'라는 생각을 못하시는 부분도 있죠."

▲ 김수녕은 한국인 최초의 올림픽 2회연속 2관왕을 달성했다
▲ 김수녕은 한국인 최초의 올림픽 2회연속 2관왕을 달성했다

◆ "1988년 서울올림픽, 언론과 팬의 응원 덕분이죠"

한국 남녀 양궁 대표팀은 4일 개막한 2011년 FITA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 8강 이상의 성적을 거두며 2012년 런던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었다. 여자 대표팀은 비록 동메달 결정전으로 밀려났지만 기보배(광주광역시청), 정다소미(경희대), 한경희(전북도청) 등 세대교체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내년 올림픽에 대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기보배 선수가 23살인데 대표팀 주장을 맡고 있죠. 선배들이 약간 주춤하고 있지만 어쨌든 양궁은 실력이 있는 선수들이 대표팀에 선발되는 것이고요. 언론에서 자신감을 더 심어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잘했으면 얼마나 잘했겠어요.(웃음) 언론과 팬들께서 잘 할 것이라고 응원해주시고 채찍질을 해주셔서 도움이 됐죠."

▲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 금메달을 따 낸    이은경(왼쪽), 김수녕(가운데), 조윤정(오른쪽)
▲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 금메달을 따 낸
이은경(왼쪽), 김수녕(가운데), 조윤정(오른쪽)

한국 양궁은 올림픽에서 늘 효자 종목이었다. 그러나 메달의 희소가치가 떨어져 대중들은 금메달이 아니면 부진한 것으로 날선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타 종목과 비교 했을 때 상대 선수나 팀은 있지만 직접 몸을 부딪치면서 겨루는 종목이 아니잖아요. 나 자신과 싸움이죠. 상대가 무너지거나 자신보다 실력이 안 되면 이기는 것이에요. 후배들이 연습한 만큼 해준다면 만족할 만한 점수와 실력으로 금메달을 딸 거에요"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의 차이는) 차이가 있죠. 개인전은 확실히 내 자신이 금메달리스트가 될 만한 자격이 있는지 확신을 갖게 해줘요. 자부심을 느끼죠. 개인전은 준비를 잘해도 실전경기에서 심리적으로 위축돼 밀릴 수가 있거든요. 단체전에 비해서 긴장감과 성취감이 다르죠."

▲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까지 한국 유일의 하계 올림픽    4관왕을 달성한 선수이기도 하다
▲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까지 한국 유일의 하계 올림픽
4관왕을 달성한 선수이기도 하다

◆ '양궁과 인연' 중3시절 국가대표 꺾고 화려한 등장

김수녕은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충북 청주 출생으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아버지가 이곳저곳에서 일을 도맡아 자주 이사를 했다. 부산과 양산 등을 거쳐 초등학교 시절 충북 충주시 동량면에 정착했다. "(아버지께서) 힘든 일을 많이 하셨죠. 어렸을 때는 '여기저기 이사 가는구나'라는 정도만 생각했죠. 부끄럽지는 않았어요. 중학교 시절 아버지께서 연탄 장사를 하셨는데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 제가 직접 연탄을 옮기기도 했거든요"

지금도 특강에서 자신의 어려웠던 가정환경 이야기 하며 부끄럽지 않은 삶을 말하곤 한다. 마치 어려운 환경이 자신을 불굴의 의지로 변모시켜 금메달로 이끌었을 것이라는 주변의 시선에도 고개를 내젓는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아버지는 시청에서 청소하는 일을 하셨어요. 형편으로 주눅이 들었다면 운동을 못했을 것 같아요. '그래, 형편이 썩 좋지는 않네'라고 의연하게 생각했고요. 운동에 집중하자고 생각을 했죠"

▲ 유년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는 김수녕
▲ 유년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는 김수녕

동량면에서 김수녕은 양궁과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된다. 대미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무렵, 체육교사의 제의로 양궁을 시작했다. 학교가 충북도교육청으로부터 양궁육성학교로 지정됐고, 양궁부를 맡은 체육교사는 또래들에 비해 키도 크고, 팔도 길고, 성적도 훌륭한 김수녕을 지목했다. "방과 후 특별활동 정도로만 생각했어요.(웃음) 운동을 하다보니 ‘이게 평생 해야 하는 것’이구나 알게 됐죠(웃음)"

김수녕의 부모도 체육 교사와 상의 끝에 양궁부 생활을 허락했다. 김수녕은 금세 두각을 나타냈다. 양궁을 시작 2년 만인 1983년 전주에서 개최된 전국소년체전 여자초등부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88꿈나무'로 선발돼 청주중앙여중에 진학했고 1986년 중3시절에 전국양궁종합선수권 예선에서 싱글라운드 1319점으로 국가대표 선수들을 제치고 여자개인종합 1위를 기록했다. 한국 양궁은 '신궁'의 등장에 깜짝 놀랐다. <①편 끝>…다음 주 ②편(7월 15일) 에서는 김수녕의 올림픽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글 = 김용일 기자, 사진 = 배정한 기자>
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기자 kyi0486@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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