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구 배병철기자] 신인 여배우에게 고난이도 연기 중 하나는 '베드신'이다. 연기에 앞서 어렵사리 '빨간 영상'을 보고, 머리속에 그림도 그려보지만 실전에서는 몸이 굳어버리기 일쑤.
배우 한수연(27)도 그랬다. 지난달 21일 개봉한 영화 '참을 수 없는'에서 경린 역을 맡은 그녀는 남편 명원(정찬)의 회사 후배 동주(김흥수)와 베드신을 찍었다. 심한 노출은 없었지만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한 그녀는 급기야 '팩소주'의 힘을 빌어 촬영을 마칠수 있었다고 한다.
베드신에서는 신인티가 팍팍 나는데, 출연작에서는 '내공'이 느껴진다. 장·단편 합해 모두 1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했다.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작품 '달빛 길어 올리기', 김상경 박용우 주연의 '조용한 세상'(2006), 베를린영화제 최우수 데뷔작 후보 '너와 나의 21세기'(2009) 등에서 주·조연으로 활약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제가 상업 영화를 안 찍는줄 아세요.(웃음) 그 만큼 대중들이 쉽게 접하지 못한 작품들을 많이 찍었던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이 그나마 상업성을 갖춘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앞으로는 대중적이고 상업성이 강한 작품도 많이 뛰어들고 싶어요."

예술도시 '헝가리' 생활…"영화광 왕따 소녀, 성적은 항상 1등"
한수연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헝가리에서 생활했다. 아빠와 이혼한 엄마가 성악 공부를 위해 헝가리를 선택했고, 한수연과 그의 언니도 부다페스트에 새 둥지를 틀었다. "헝가리에서 공산주의가 막 붕괴할 때였어요. 한국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했고 늘 혼자 놀았어요. 그때부터 영화관을 찾았고 장르 구분없이 영화를 접했어요. 그 나이에 영화의 맛을 알아버렸어요."
그녀는 점점 '영화광'으로 변했다. 그리고 현실보다 영화 속 세계에 더욱 열광하는 '조숙 초딩'이 되어갔다. 늘 영화에 젖어 있다보니 성격은 갈수록 감성적으로 변했다. "늘 마약에 취해있는 기분이랄까? 항상 몽롱한 상태로 지냈던 것 같아요. 한국 또래들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삶이죠(웃음). 근데 제게는 그때 상황들이 배우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해요."
'영화관 죽순이'었지만 공부는 늘 1등이었다. 뿐만 아니라 미술대회, 글짓기, 마라톤 등 예체능에서도 1등을 도맡았다. 한수연이 악착같이 1등에 매달린 이유는 '절대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각오 때문. "왕따가 성적까지 나빠봐요, 얼마나 무시 당하겠어요? 그래서 공부할 때는 정말 독한 맘 먹고 했어요. 8~9년을 그렇게 이 악 물고 버텼어요."

'母 건강악화' 소녀가장…"가정부, 중국집 알바로 생계 유지"
중3이 끝날 무렵, 한수연에게 또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엄마가 천식을 앓게 되면서 온 가족이 경제적인 난관에 부딪혔다. 결국 한수연은 헝가리에서 공부를 다 끝내지 못한 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도권 교육 하에 다시 공부할 상황은 아니었어요. 공부하면서 돈도 벌어야했으니까. 그래서 중·고 검정고시를 준비했어요. 이후는 뭐, 그야말로 생존 경쟁 그 자체였어요."
돈이 없으면 밥을 굶어야했다. 그런 냉정한 현실에서 '소녀 가장' 한수연은 이 일, 저 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커피숍, 중국집, 건물청소, 가정부 등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한다. "돈 벌고 저축해서 엄마한테 드리는게 저한테는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처음에는 돈 걱정부터 앞서는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지금이 아니면 언제 전단지 돌리고 빗자루질 걸레질을 하겠느냐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어요."
대학생이 되면서 걱정은 더욱 커졌다. 4~500만원이나 되는 학비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한 3번 정도는 코 피 터질 만큼 공부를 해서 성적 장학금으로 떼웠다. 하지만 장학생이 되지 못하면 휴학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밖에 없다. "학교 휴학을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이 많아요. 장학금을 못 받으면 알바로 번 돈을 써야하는데…그 마저 쉽지 않을 때가 있거든요. 학비 때문에 생활비가 빈다든지, 급하게 넣어야할 돈을 못 쓴다든지. 저의 캠퍼스 낭만은 17, 18살 때 고민과 별 다를게 없었어요."

혼자 놀기의 달인?…"정재영 같은 남친 생기면 올인해요"
한수연은 지금도 헝가리 시절의 습관이 몸에 배여있다. 단체로 움직이는 생활보다는 혼자 조용히 일하는걸 좋아한다. 커피숍을 가거나, 거리를 활보해도 혼자가 편하다고 한다. 심지어 고기를 구워먹을 때도 혼자 2인분을 뚝딱 해치우기도 한다. "남들은 혼자하면 뭐든 불쌍해보인대요. 근데 전 마냥 편해요. 배우 일을 시작할 때도 혼자 여기저기 오디션 보러 다니곤 했어요. 그게 너무 편하고 재미 있었어요."
'혼자 놀기의 달인'에게도 애인이 생길 틈이 있을까. 이에 한수연은 "몇 차례 연애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결말이 썩 좋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한수연의 성격에서 기인한다. "연애를 하면 올인하는 성격이에요. 내 남자와의 미래를 꿈꾸고, 그의 와이프가 되고, 아이의 엄마가 되고. 그런 상상을 다 해요. 그러다가 사랑을 깨졌을 때 그 허탈감이 너무 큰 편이에요. 한동안 정상적으로 일을 못해요. 그런 스타일을 아니까 엄마도 제가 연애한다고 하면 걱정부터 하세요."
이상형은 정재영, 박해일. 그녀의 꿈이 있다면 30대 중 후반에 정재영 혹은 박해일 같은 남자와 달콤한 연애를 해보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배우 한수연'으로 열심히 살고 싶다고 한다. 때로는 캐릭터에 미쳐 살고, 때로는 연기와 영화에 취해 사는 줄리엣 비노쉬처럼 말이다. "캐릭터에 미쳐있고 연기에 취해 사는 비노쉬의 삶을 동경해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또 제 모토가 '진실한 삶의 이야기꾼'인데, 모든 작품에 진실한 삶의 이야기를 담아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사진=이승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