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송은주기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12일 저녁 별세했다. 고인은 세상에 작별을 고하기 직전까지 고령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유행을 쫓기보다는 그만의 독창적인 디자인을 평생 선보였다.
고인은 수십 차례 해외에서 패션쇼를 열면서 한국 패션을 세계에 알리는데 힘썼다. 쇼를 가질 때 마다 주한 대사들을 초청하여 교류를 하는 등 민간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했다. 평생 수백차례 자선 패션쇼 열어 얻어진 수익금을 아낌없이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화려한 대외활동 뒤에는 소탈한 앙드레 김이 있었다. 자신을 찾아온 손님들을 항상 문 밖까지 배웅했다. 사인이나 사진촬영 요청도 흔쾌히 받아주는 친근한 디자이너였다. 독특한 말투가 성대모사의 대상이 됐지만, 그는 "그 덕에 대중들과 친밀해져서 좋다"며 기분 좋게 넘겼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가장 친숙했던 대중문화인 앙드레 김. 그의 화려했던 패션 그리고 소탈했던 성품을 뒤돌아봤다.

★ 대한민국이 숨쉬는 앙드레 김 패션
앙드레 김의 패션은 언제나 화려하고 우아했다. 패션쇼 마다 봉황과 용, 사슴뿔 등을 형상화한 자수 디테일로 웅장하고 품격 높은 의상을 등장시켰다. 한국의 전통미와 서양 복식이 어우러져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작품세계를 영위했다.
보통의 디자이너들이 패션쇼에서 약 50~60벌을 선보이는 것에 반해 그는 약 100벌 이상의 의상을 내놓았다. 한해 20여 차례 패션쇼를 가지는 것을 감안 할 때 거의 매일 쉬지 않고 디자인에 몰두한 것이나 다름없다. 남들은 은퇴하는 나이에 오히려 란제리, 주얼리, 안경 등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며 디자인 영역을 넓혀갔다.
패션쇼는 스토리와 감동이 숨쉬는 종합 예술의 결정체였다. 연인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사랑을 의상과 음악을 통해 표현했다. 섬세한 감정 표현을 위해 당대 최고의 스타를 런웨이에 세웠다. 쇼 구성부터 음악 선정까지 모든 것을 관여해 그의 패션쇼는 늘 화려했다.

★ 대중과 소통하는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은 자신을 원하는 곳이라면 경중을 따지지 않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크고 작은 문화와 자선 행사에 참석해 관계자들을 독려했다. 빠듯한 일정 속에서 지인들의 경조사를 빠짐없이 챙기기로 유명하다. 이러한 따뜻한 그의 배려 때문에 사회 각계각층에 많은 지인들을 뒀다.
자신을 알아보고 사인과 사진촬영을 요청해 올 때 단 한 번도 싫은 기색을 보인 적이 없다. 자신의 패션쇼 스태프들에게도 식사와 간식을 손수 챙겨주는 다정한 디자이너였다. 때문에 온라인에서는 앙드레 김과의 따뜻한 만남을 추억하는 글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는 대한민국 문화홍보대사를 자처했다. 카이로, 시드니 등지에서 패션쇼를 열며 아름다운 한국의 패션을 널리 알렸다. 한국의 문화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어디든지 달려가 패션쇼를 열었다.
해외에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찾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일에는 발 벗고 나섰다. 또한 해마다 전 세계 고통 받는 아이들을 돕는 유니세프 자선 패션쇼를 열었고 친선대사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글=송은주기자, 사진=김용덕 이호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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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 기자들이 풀어 놓는 취재후기 = http://press.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