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어 1·2차, 金 2개 등 7개 메달 수확...20일 서울 월드투어 출전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스포츠의 세계에서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묵직한 아쉬움을 동반한다. 하지만 그 마지막이 세계 정상급 기량을 유지한 채 찾아온다면, 아쉬움은 이내 깊은 존경과 찬사로 바뀌게 된다.
올 시즌을 끝으로 정들었던 태극마크를 내려놓는 한국 쇼트트랙의 거목 최민정의 마지막 여정이 시작됐다. 지난달 말 시작된 마지막 시즌 월드투어에서도 1000m와 1500m, 계주에서 인상적인 레이스를 펼치며 1·2차 대회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개를 획득해 여전히 세계 정상급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국가대표 은퇴 이후에는 실업선수로서 국내 무대를 중심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지만,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 무대에 나서는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2014년 태극마크를 처음 단 이후 지나온 10여 년의 세월 동안 최민정이 기록으로 남긴 발자취는 그 자체로 쇼트트랙의 역사였다. 올림픽 무대에서 통산 7개(금메달 4개, 은메달 3개)의 메달을 획득하며 동·하계 올림픽을 통틀어 한국 선수 최다 메달 기록을 세웠다.
여기에 세계선수권 종합 우승 4회와 통산 17개의 금메달까지 더하면, 최민정이 얼마나 오랜 시간 세계 정상급 경쟁력을 유지해 왔는지 알 수 있다. 경기 흐름과 순간적인 판단에 따라 승부가 갈리는 쇼트트랙에서 10년 넘게 꾸준히 정상급 기량을 발휘했다는 사실은 그의 위상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가 빙판 위에서 예술적 미학과 압도적 기술로 세계를 감탄시켰고,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상화가 순수한 폭발력과 스피드로 빙면을 지배했다면, 최민정은 뛰어난 체력과 정교한 경기 운영, 순간적인 판단력을 앞세워 쇼트트랙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구축했다. 특히 대표팀 내에서도 손꼽히는 지구력은 체력 소모가 큰 아웃코스 추월을 여러 차례 시도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됐고, 코너를 돌 때마다 정교하게 이어지는 스트로크와 순간적인 가속력은 경쟁자들의 추격을 따돌리는 강력한 무기였다.
여기에 무리한 몸싸움보다 정확한 코스 선택과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앞세운 점도 최민정의 강점이었다.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면서도 기회를 놓치지 않는 영리하고 깔끔한 레이스는 최민정표 명품 쇼트트랙을 완성했다.
특히 이번 시즌 월드투어 1차 대회에 이어 지난 1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2차 대회에서도 여자 1000m 금메달을 목에 걸며 2주 연속 정상에 올랐다. 결승에서 캐나다 선수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기회를 엿보던 최민정은 두 바퀴를 남기고 아웃코스로 빠져나와 두 명을 연달아 제쳤다. 이어 마지막 코너에서 인코스를 파고들며 선두 코트니 사로까지 따돌리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체력과 과감한 판단, 정교한 코스 공략이 어우러진 이 역전극은 최민정이 오랫동안 세계 정상급 선수로 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최민정의 진정한 가치는 화려한 기록과 뛰어난 기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최민정의 쇼트트랙 인생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아웃코스'다. 체력 소모가 크고 추월에 성공하기까지 더 많은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아웃코스는 그가 자신만의 경쟁력으로 발전시킨 경기 방식이자, 숱한 시련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개척해 온 선수 인생을 상징한다.
찰나의 순간에 경기 흐름을 읽고 과감하게 바깥쪽 코스로 돌아 경쟁자들을 추월하던 그의 레이스는 팬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넘어 쇼트트랙만의 짜릿한 감동을 안겨 왔다. 이러한 아웃코스의 의미는 빙판 위의 기술에만 머물지 않았다. 숱한 부상과 슬럼프, 빙상계 안팎의 논란과 잡음 속에서도 최민정은 묵묵히 빙판 위에 서서 훈련과 경기에 집중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왔다. 그의 선수 인생은 아웃코스가 단순한 경기 기술을 넘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온 과정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최근 일부 인기 프로종목에서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언행과 태도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며 태극마크의 의미와 책임감을 되묻게 하는 장면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기에 최민정이 지난 10여 년 동안 태극마크를 달고 보여준 책임감과 헌신은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국가대표라는 이름에 따르는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 온 자세야말로 스포츠맨십의 본보기이자 태극마크가 지녀야 할 가치다.
마지막 시즌에도 월드투어 연속 우승을 기록하며 여전히 세계 정상급 기량을 과시한 그이기에, 다가오는 서울 월드투어 3차 대회(20~22일·목동아이스링크)에서도 최민정다운 레이스를 기대하게 한다. 그리고 내년 3월 서울 세계선수권대회는 그가 태극마크를 달고 빙판에 서는 마지막 무대가 될 것이다. 오랜 시간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자존심을 지켜온 최민정에게 우리는 아쉬움 속에서도 뜨거운 박수와 감사로 응답해야 한다. 빙판 위에 남긴 10년의 아웃코스 궤적은 한국 쇼트트랙이 오래도록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소중한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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