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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세는 미루고 기본법은 방치…당정 무책임에 가상자산 산업 '휘청'
입력: 2026.11.06 11:42 / 수정: 2026.11.06 11:42

과세 네 번째 유예로 2029년 시행
지난해부터 기본법 논의 지연
해외 이동 가상자산 700조원 추산


정부와 여당이 가상자산 소득과세를 2029년으로 2년 추가 유예한 가운데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마저 지연되면서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산업 육성보다 청년층 표심을 의식한 정치적 판단이 앞서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회=배정한 기자
정부와 여당이 가상자산 소득과세를 2029년으로 2년 추가 유예한 가운데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마저 지연되면서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산업 육성보다 청년층 표심을 의식한 정치적 판단이 앞서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회=배정한 기자

[더팩트ㅣ박지웅 기자] 정부와 여당이 가상자산 소득과세를 또다시 2년 유예하면서 정책 일관성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을 논의해 왔지만 입법이 거듭 지연된 데다 과세 기준마저 명확히 정립하지 못하면서다. 정치권이 산업 육성을 위한 중장기 정책보다 청년층 표심을 의식한 과세 유예에 집중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오면서 국내 가상자산 산업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모습이다.

◆ 과세는 또 유예, 기본법은 하세월…청년 표심에 밀린 산업 정책 논란

6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은 내년 1월 시행 예정이던 가상자산 소득과세를 2029년으로 2년 추가 유예하기로 했다. 해외 거래소 이용자의 소득 파악과 과세 형평성 문제 등 제도 시행에 필요한 기반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문제는 과세 시행 시점만 반복적으로 늦춰질 뿐 근본적인 제도 개선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상자산 과세는 당초 2022년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세 차례 연기된 끝에 2027년으로 미뤄졌다. 이번 네 번째 유예로 최초 시행 예정 시점보다 7년 늦은 2029년에야 과세가 이뤄지게 됐다.

그동안 정부는 과세 인프라 구축과 제도 정비를 추진해 왔지만 스테이킹과 에어드롭, 탈중앙화금융(디파이·DeFi) 등 새로운 가상자산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소득을 어떻게 분류하고 과세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특히 가상자산을 지급받은 시점과 실제 처분해 이익을 실현한 시점 가운데 언제 세금을 부과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과세 기준도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산업 육성 정책은 제자리걸음을 하는 반면 과세 유예를 둘러싼 정치권의 움직임만 반복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과세 시행이 다가올 때마다 유예 여부가 정치권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지만, 정작 시장 활성화와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 정비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가상자산 투자자의 상당수가 청년층이라는 점에서 과세 유예가 산업 정책보다 청년 표심을 의식한 정치적 대응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다만 정부와 여당은 해외 거래 과세정보 확보와 과세 형평성 등 제도적 준비 부족을 유예 필요성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정부·여당이 손발조차 맞추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면서 시장의 불확실성만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정부가 예정대로 과세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지 한 달 만에 민주당이 다시 유예를 주장했다며 청년층의 반발을 의식해 정책 방향을 변경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정부의 대응은 솔직히 늦어도 너무 늦다"며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가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상황도 비판했다.

◆ 지난해부터 미뤄진 기본법…반복되는 일정 변경에 제도화 '제자리'

과세 유예 논란과 별개로 국내 가상자산 산업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도 지연되고 있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유통,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규율 등 기존 법체계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한 영역을 제도권에 편입하기 위한 법안이다.

정부와 국회는 지난해부터 관련 입법 논의를 이어왔지만 핵심 쟁점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는 관련 법안 10여건이 발의됐고 수차례 토론회도 열렸지만 법안 처리는 지연되고 있다.

특히 입법 논의가 다른 정치·정책 현안에 밀리면서 당초 기대했던 일정에 맞춰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정감사 등 주요 국회 일정을 전후로 논의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구체적인 법안 처리 일정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처럼 기본법 제정이 장기간 지연되면서 법인 투자자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 확대와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허용 등 시장 활성화를 위한 주요 과제도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역시 발행 주체와 감독 체계 등을 둘러싼 관계기관 간 이견이 이어지면서 구체적인 제도 설계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

장 대표는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움직임을 언급하며 국내 대응이 뒤처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다.

◆ 국내 시장 제약 속 해외로 700조원 이동…산업 경쟁력 '빨간불'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제도적 제약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해외로 이동하는 거래 규모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타이거리서치가 체이널리시스와 공동으로 국내외 약 500만건의 거래소 연관 주소와 약 12만개의 한국 사용자 추정 지갑을 분석한 결과, 2021년부터 올해까지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해외로 이동한 가상자산 규모는 약 700조원으로 추산됐다.

지난해 한 해에만 약 168조원 규모의 가상자산이 해외로 이동했으며, 국내 투자자가 해외 거래소에 지급한 거래 수수료도 약 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다만 해당 수치는 블록체인 거래 흐름을 토대로 추산한 것으로, 해외 이동 자금 전체를 국내 규제에 따른 자본 유출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제공되지 않는 거래 서비스와 투자 상품을 이용하기 위해 해외 거래소를 찾는 수요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제도적 제약이 국내 산업의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규진 타이거리서치 대표는 최근 관련 토론회에서 "국내 법인의 가상자산 활용처가 늘어나면 해외로 유출되는 약 5조원의 수수료 수익을 국내로 환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는 국내 가상자산 생태계의 이익과도 직결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가상자산 파생상품 규제에 대해서도 국내에서 관련 상품을 제한하더라도 해외 거래소나 온체인 시장을 통한 거래까지 막기 어렵다는 점에서 투자자 보호와 산업 경쟁력을 함께 고려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굿모닝 수요 정책 아카데미에서 정부·여당의 가상자산 과세 정책 혼선을 비판하며 청년층 반발을 의식한 과세 유예가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배정한 기자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굿모닝 수요 정책 아카데미'에서 정부·여당의 가상자산 과세 정책 혼선을 비판하며 청년층 반발을 의식한 과세 유예가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배정한 기자

◆ 반복되는 과세 유예에 정책 신뢰도 '흔들'…전문가들 "기본법 제정부터"

업계에서는 과세 유예 자체보다 재유예를 막기 위한 구체적인 입법·시행 로드맵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디지털자산사업자연합회(KDA)는 지난 4일 입장문을 통해 가상자산 과세를 2029년까지 유예하되 ▲2027년 상반기까지 디지털자산기본법 등 2단계 입법 완료 ▲2027년 말까지 주식 수준의 과세 기준 정비 ▲2028년 11월까지 과세 인프라 구축 ▲국내 거래소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등 4대 조건을 제시했다.

KDA는 특히 주식 투자와 비교해 가상자산 과세의 기본공제액과 세율에 형평성 문제가 있다며 다양한 자산·거래 유형에 맞는 과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소득세법은 가상자산 양도·대여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하고 연간 이익 중 기본공제액 250만원을 초과하는 금액에 지방소득세를 포함해 22%의 세율을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 거래소와 탈중앙화거래소, 개인 간 거래 등에서는 거래 내역과 취득가액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

안성희 가톨릭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가상자산 자동정보교환체계(CARF)에 참여하지 않는 국가에서의 거래와 탈중앙화거래소, 개인 간 거래 등에는 과세 사각지대가 남아 있다"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홈택스와 같은 신고·납부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과세 유예가 단순히 시행 시점을 늦추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과세에 필요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채 시행 시점만 반복적으로 변경하면 법적 명확성과 정책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디지털자산기본법을 통해 가상자산 관련 서비스의 법적 정의와 규율 체계를 먼저 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과세 대상과 시점, 소득 산정 기준 등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 가상자산 전문가는 "과세를 계속 유예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기본법도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서비스가 계속 등장하고 있는데, 그때마다 과세 기준을 달리 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법이라는 것은 명확성과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과세 시행 시점이 반복적으로 바뀌면 정책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먼저 제정해 관련 개념을 정립하고, 그에 맞는 과세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순서"라고 강조했다.

chris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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