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대' 비하 의도 없다지만 사회적 죄질 커

'소방'이 '재정 빨대'라서 혐오 대상이라는 관점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정치 지도자의 오만으로 읽힐 뿐이다. 소방관은 특수한 위기 상황을 견뎌내고 헌신하는 존엄의 대상으로서 '존경받는 직업'으로 인식돼 왔다. 국가 재정의 격차를 완화함으로써 집단 간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회구조적 모순을 해결해 나가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하겠다.
이미 우리 사회는 세월호, 이태원 참사, 5·18 광주민주화운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시위 등을 통해 피해 집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경험했다. 그동안 사회적 약자를 겨눈 혐오와 차별은 인종, 민족, 종교, 성 소수자, 여성, 청년, 노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숱한 양극화로 나타났다. 모두 사회 구성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평등이 설 자리를 잃은 불신 사회의 징표들이다. 특히 정치인들의 혐오 표현은 인위적이거나 인권 감수성의 결여에서 나온 정치적 의도라는 점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좀체 요지부동이다. 더욱이 특위 구성조차 못하고 있는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는 '셀프 심사'의 전형으로 무용지물이 됐다. 스스로 품위를 상실한 윤리불감증 국회를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정치인의 막말은 혐오 폭력의 가해자임을 자인하는 결과로 드러나고 있다. 우리 사회에 사회적 울림을 주는 따뜻한 정치 언어는 왜 없는가. 한 때 개그 프로그램에서 '연변에선 50년 된 도마뱀은 지렁이 대신 낚싯밥으로 쓴다', '1000년 묵은 쥐' 등 과장 표현으로 인기 코너가 된 이른바 '연변개그'가 유행했지만 조선족과 연변 문화를 왜곡하는 황당 개그라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언어의 유희가 가져온 언어가치의 하락과 타락을 우려하는 사회적 현상이다. 비속어 등 부정적인 말의 가치가 오를수록 의미는 약화되기 마련이다.
'결사반대'의 구호 속에서 실제 목숨을 잃은 경우는 드물고, '만병통치'의 허위 광고처럼 언어의 강조, 역설, 과장은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위험 요소가 된다. '가격 현실화'는 물가 상승을 예견하는 단어이며, '성공적인 영수회담'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간극을 만든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그만큼 정치에서의 대화는 불신의 표상이 된 적이 많다.
최근 정치인들의 언어에서 파생된 냉소주의가 도를 넘고 있다. 그럼에도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소방이 '재정을 쭉쭉 빨아먹는다'고 '재정 빨대'를 재인용하고 나서 다시 한번 소방공무원의 가슴에 피멍의 상처를 입혔다. 막말 정치 '패륜아'로 지목되는 이들 정치인들이 양산될수록 각 정당의 정치 리스크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벌써 차기 총선에 대한 하마평이 오르내리는 시점이다. 사회적 약자 간의 경쟁을 교묘하게 부추겨 갈등을 양산하고, 헤게모니를 수단으로 차별과 배제를 무책임하게 구사하는 등 기득권 권력을 남용하는 정치인들의 오만을 심판해야 한다. '빨대' 발언이 비하의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사회적 긴 파장이 죄질의 무게를 무겁게 판명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구할 수 있는 힘이 정치에 있다고 공감하지만 악마화 된 현실 정치를 추스르기엔 한계에 봉착했다는 시각이다.
지난 2023년 4월 10일 선거제 개편안 논의를 위한 국회 전원위원회에서 당시 이탄희 의원은 "세상에 이렇게 쉬운 정치가 없다"면서 "남의 말에 조롱하고 반문하고 모욕 주면 끝"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2020년 민주당이 180석을 차지했지만 "독주 프레임에 걸려서 시간만 낭비하고, 혐오는 방향을 가리지 않는다"며 "전 정권에 대한 가장 큰 혐오의 대상이 돼 있다"고 한국 정치 현실을 평가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국회의원 등 성공한 정치인을 기대하지만 여전히 막중한 권력을 지닌 대부분의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의 삶을 화제성 막말로 치부하듯 혐오 정치를 버리지 못했다.
일선 소방서에는 구급·화재 긴급출동을 알리는 경보가 하루에도 수십 번 울린다. 휴식이 긴장이 됐다. 방화복, 방화 헬멧, 공기호흡기 등 화재진압 장비의 무게는 구조장비를 제외하고도 30kg에 육박한다. 소방관들은 화재 현장에서 생명을 담보로 불에 탄 시체를 목격하는 등 남모르는 강도 높은 스트레스성 장애증후군에 노출돼 있다. 2020년 국가직으로 전환된 소방관 인건비의 국비 지원 확대와 노후화된 소방 장비의 교체, 신속동료구조팀(RIT) 활동 강화, 스트레스 장애 치료 지원 등 무거운 과제가 산적됐다.
지난 16일 부천시 오정구 도장 공장 화재 초기 진압 과정에서 김진석 소방위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지만 안타깝게도 17일 오전 0시 55분쯤 순직했다. 어린 딸은 영전에 '어른이 돼 아빠를 만나겠다'며 '사랑해요. 보고 싶은 아빠'를 편지로 남겼다. 곰곰이 생각하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애절한 말이다.
책임과 희생을 상징하는 '가장 먼저 화재 현장에 들어가고, 가장 나중에 나온다'는 'First in, Last out'의 정신으로 화마와 싸우다 순직한 소방관들의 영면을 기원한다.

infact@tf.co.kr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 이메일: jebo@tf.co.kr
-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