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원칙 일반견해 '정부청사 근접은 위험' 명시

[더팩트ㅣ김태연 기자] 정부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세종 이전을 추진하면서 이전 타당성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인권위 독립성과 피해자 접근성을 규정한 국제 기준인 '파리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16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인권위는 전날 오전 제18차 임시 전원위원회(전원위)를 열고 '중앙행정기관 등의 이전계획 변경에 관한 논의' 안건을 상정했다. 정부는 지난 13일 44개 공공기관을 오는 2027년부터 단계적으로 세종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인권위 등 6개 기관은 내년 상반기 이전 추진 기관에 포함됐다. 이에 인권위 자체적으로 이전 관련 본격 논의를 시작한 것이다.
인권위 내에서는 특히 인권위 세종 이전이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파리원칙)'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파리원칙은 지난 1993년 유엔 총회에서 승인된 국제 기준으로, 국가인권기구가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인권침해를 당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계인권기구연합 간리(GANHRI)는 파리원칙 일반견해 1-10에서 "국가인권기구가 정부청사 근접한 곳에 소재한 경우 국가인권기구의 체감적 독립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진정접수를 억제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명시했다. 파리원칙 일반견해 2-9에는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자는 국가인권기구의 시설, 직원, 관행 및 절차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또 다른 인권위 직원은 "인권위 세종 이전이 다른 정부기관과 물리적 독립성이 보장되는지, 인권침해 피해자 접근성이 떨어지게 되진 않는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인권위 상임위원은 "정부기관에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가 다양한 공공기관이 모인 곳에서 진정을 제기하는 것은 심리적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최소한 사회적 취약계층의 심리적, 물리적 접근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무리 온라인 접수 등 대안이 있더라도 국가인권기구는 언제든지 사회적 약자의 접근 가능성이 뛰어난 곳에 위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세종 이전이 곧바로 파리원칙 위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전 이후에도 피해자들이 쉽게 진정을 제기할 수 있도록 수도권 지역사무소를 운영하거나 서울에 일부 업무 기능을 유지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하면 된다는 의견이다.
전날 전원위에서는 성명 발표와 공청회 개최 등 여러 대응 방안이 논의됐으나, 아직 구체적 대응 방향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인권위 관계자는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 이전을 추진하는 것은 인권위 독립성 훼손 여지가 있다"며 "장애인 접근성 등을 고려해 일부 조사과는 서울에 남아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인권위가 정부 계획대로 내년 상반기 세종으로 이전할 경우 청사를 새로 짓기보다는 세종에 있는 기존 건물을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 업무 공간 배치, 지역사무소 운영 방안, 일부 기능의 서울 유지 등은 향후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pad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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