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의 월미도에서] 재외동포청 세종시 이전…인천 시민사회, '탁상 행정' 반발

  • 김형수 기자
  • 입력: 2026.10.15 11:19 / 수정: 2026.10.15 11:19
박찬대 인천시장 '원팀' 리더십 시험대 올라
여·야 인천시당, 이전 비판…정치 쟁점 부상
국민의힘 인천시당은 14일 오후 인천시청 현관 앞 계단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재외동포청 세종 이전 철회를 촉구했다. /김재경 기자
국민의힘 인천시당은 14일 오후 인천시청 현관 앞 계단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재외동포청 세종 이전 철회를 촉구했다. /김재경 기자

1904년 제물포항을 떠나 하와이에 도착한 20세 초반의 이민 1세대 김춘석(金春石)은 정착 9년 만에 한센병 진단을 받고 하와이 몰로카이섬 칼라우파파 열도로 추방됐다. 김춘석은 45세의 나이로 버려진 섬에서 외롭게 생을 마감했다. 진춘옥 등 57명의 한국인 환자 중 일부는 정신병, 자살 등으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이민 후손들의 영광과 성공 뒤에는 고국을 그리워했던 애절한 삶이 녹아 있다.

이민 역사를 다룬 이진영 감독의 음악영화 '하와이연가'는 칼라우파파 해변에서 '저 구름 흘러 가는 곳', '알로하 오에'를 연주했다. 한인 이민의 비극적인 죽음을 위로한 진혼곡이다. 그래미 수상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 하와이심포니오케스트라 악장 이그나스 장, 슬랙 키 기타리스트 케올라 비머가 위로와 감동의 선율을 선사했다.

이민 123년의 역사 속에서 인천국제공항을 비롯해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품은 인천시는 700만 재외동포의 고향이다.

평소 박찬대 인천시장은 스스로 인천의 정체성과 DNA를 간직한 '인천사람'이라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13일 SNS를 통해 "(재외동포청 세종시 이전으로) 인천이 불이익을 받거나 소외된다고 보지 않는다"며 "김경협 재외동포청장과 재외동포교육문화센터 인천 유치에 대한 협의를 진행해 왔다"고 밝혔다.

지난달 박 시장은 "재외동포청 독립건물 추진을 중앙정부와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며칠 사이 재외동포청 이전을 공론화 하고 나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중앙정부와의 남다른 소통 역량을 자랑해 온 박시장의 이면이 고스란히 들어나게 됐다. 인천시민과 지역 여론을 무시한 독불 행정의 전형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불과 한 달 전 김 청장도 취임 1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인천의 독립청사 후보지를 조만간 확정하고, 올해 안에 청사 이전 절차를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공무원의 거짓말이 됐다.

결국 내년 상반기 중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청이 세종시로 이전한다. 2023년 6월 우리나라 이민의 종가로 상징되는 인천시에 둥지를 튼 지 3년만이다. 700만 재외동포와 300만 인천시민의 재외동포청 인천 유치의 성과가 물거품이 됐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3일 '2차 중앙행정기관 이전 계획'을 발표했다. 수도권에 남은 중앙행정기관과 소속기관 총 44곳을 세종시로 단계별 이전하는 방안이다. 인천 시민단체는 '이민 역사를 부정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졸속 탁상 행정이 낳은 역차별'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 1월 9일 김경협 재외동포청장이 A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해, 인천 지역 131개 기관·단체로 구성된 인천사랑범시민네트워크가 1월 27일 인천시청 브리핑룸에서 김 청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재경 기자
지난 1월 9일 김경협 재외동포청장이 A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해, 인천 지역 131개 기관·단체로 구성된 인천사랑범시민네트워크가 1월 27일 인천시청 브리핑룸에서 김 청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재경 기자

14일 오전 재외동포청이 있는 연수구의 이재호 구청장은 기자회견에서 "재외동포청 세종시 이전이 철회될 때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끝까지 투쟁하겠다"면서 정부와 '원팀'을 강조해 온 박찬대 인천시장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였다.

이날 오후 국민의힘 인천시당도 인천시청 현관 앞 계단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재외동포청 세종시 이전 추진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민주당 인천시당도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재외동포청의 세종 이전 계획은 재검토 돼야 한다고 밝혔다.

취임 100일을 넘긴 박찬대 인천시장의 시정 역량과 시민사회의 대응이 주목된다.

최근 외교·안보 분야에서 이재명 정부의 부정 평가와 대응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는 가운데 재외동포청 이전 이슈가 내후년 총선에도 영향을 끼칠 지역 최대 쟁점이 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1902년 12월 22일 제물포항에서 유민원이 발행한 집조(여권)를 들고 겐카이마루호에 오른 121명의 이민 선조들은 일본 나가사키항에서 갤릭호로 갈아타고 하와이로 향했다. 이듬해 1월 13일 호놀룰루항 7번 선창에 102명이 도착했다. 최종 입국 허가를 받은 86명 중 84%는 인천내리교회 교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인천 출신이었다. 우리나라 첫 공식 이민의 서막이고, 700만 재외동포의 뿌리다. 이후 1905년까지 7226명이 하와이 사탕수수밭으로 노동 이주했다.

1910년 일제의 주권침탈 이후 일제 강점기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 노동과 민족교육, 독립운동 등에 따라 중국, 러시아, 미국, 멕시코, 쿠바, 만주, 사할린, 일본 등지로 한인 이주가 확산됐다. 재외동포의 본향이 인천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 인천과 하와이의 첫 음으로 교명을 짓고, 하와이 동포들의 후원을 기초로 세운 인하공과대학(인하대학교의 전신)과 인천내리교회, 한국이민사박물관은 이민 역사의 생생한 방증이다.

재외동포청의 세종시 이전은 철회돼야 한다. 앞으로 700만 재외동포의 혼란과 실망이 두렵다. 이민의 종가로서 300만 인천시민의 자존감을 세우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고히 할 때다. 14일 배준영(국민의힘·인천 중구강화군옹진군), 김교흥(더불어민주당·인천 서구갑), 정일영(더불어민주당·인천 연수구을) 의원은 기자회견과 SNS를 통해 재외동포청의 인천시 잔류를 촉구했다.

인천시를 비롯한 시의회, 지역 기관·단체와 지역 의원, 인천시민 등 인천 구성원의 역할과 행동이 주구가 아닌 충신으로 역사에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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