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지' '꼴페미' 교실 점령한 혐오…교사들은 속수무책
  • 김태연 기자
  • 입력: 2026.09.24 00:00 / 수정: 2026.09.24 00:00
교실 내 아이들 은밀한 혐오 표현 난무
매뉴얼 부재, 정치 중립 압박에 제재 불가
"단발성 징계 넘어 사회적 연대감 키워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조롱하는 운지, 부엉이 같은 은어부터 꼴페미, 멸공 등 정치적 표현까지 교실 내 혐오 표현이 만연해있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이를 걸러낼 제도적 장치가 부족해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의 한 학교 교실. /박범철 교사 제공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조롱하는 '운지', '부엉이' 같은 은어부터 '꼴페미', '멸공' 등 정치적 표현까지 교실 내 혐오 표현이 만연해있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이를 걸러낼 제도적 장치가 부족해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의 한 학교 교실. /박범철 교사 제공

[더팩트ㅣ김태연 기자] "선생님이 우리 의견을 듣기 위해 만든 온라인 익명 게시판에 수업 내용과 무관한 부엉이 이모티콘과 '운지'라는 단어가 올라왔어요. 선생님이 제지했지만 애들은 그냥 웃고 넘어갔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조롱하는 '운지', '부엉이' 같은 은어부터 '꼴페미', '멸공' 등 정치적 표현까지 교실 내 혐오 표현이 만연해있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이를 걸러낼 제도적 장치가 부족해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은밀하게 '코드화'된 혐오…특정 정치인·집단 조롱·비하

24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초·중·고 교실 내 혐오 표현은 날로 은밀해지고 있다. 과거 명시적 비속어·욕설 형태였던 혐오 표현은 최근에는 특정 날짜나 동물, 과학 용어 등과 결합한 이른바 '밈(Meme)'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홍승희 서울 미동초등학교 교사는 "학생들이 일상 대화나 수업 시간은 물론, 과제물에도 부엉이, 코알라, 운지 같은 용어를 밈 형태로 소비하고 있다"며 "여성이나 성소수자를 조롱하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쓰기도 한다"고 전했다.

운지는 일베저장소 등 극우 성향 커뮤니티에서 노 전 대통령 서거를 비하하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로 '아래로 떨어진다'거나 '상황이 나빠졌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부엉이와 코알라는 노 전 대통령을 악의적으로 조롱하고 비하하기 위해 사용하는 상징물이다. 공산주의자를 멸하자는 뜻의 '멸공' 등 정치적 표현도 학생들 사이에서 흔히 쓰여진다.

특정 성별이나 성소수자 등을 조롱하는 '꼴페미', '김치녀', '똥꼬충' 등도 있다. 꼴페미는 사람의 모양새나 행동을 낮잡아 이르는 접두사 '꼴'과 '페미니스트'를 합친 용어다. 김치녀는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의존하는 여성을 비하하며, 똥꼬충은 남성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멸칭이다.

홍 교사는 "학생들이 소비하는 문화에 교사가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과제물 안에 혐오 표현을 심어두는 경우도 있다"며 "개념 자체가 코드화돼 있어 교사가 혐오 표현임을 인지하고 제지하는 것부터 난관"이라고 지적했다.

박범철 서울 경문고등학교 교사는 "교실에서 멸공, 북괴 처단, 꼴페미 등 특정 정치인이나 집단을 향한 조롱과 비하 용어가 남발되는 것이 문제"라며 "동료 여교사가 교육청 가이드라인대로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진행하면 학생들은 '선생님 꼴페미에요?'라고 조롱하는 일까지 벌어진다"고 했다.

운지는 일베저장소 등 극우 성향 커뮤니티에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비하하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로 아래로 떨어진다거나 상황이 나빠졌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코알라와 부엉이는 노 전 대통령을 악의적으로 조롱하고 비하하기 위해 사용하는 상징물이다. /박범철 교사 제공
'운지'는 일베저장소 등 극우 성향 커뮤니티에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비하하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로 '아래로 떨어진다'거나 '상황이 나빠졌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코알라와 부엉이는 노 전 대통령을 악의적으로 조롱하고 비하하기 위해 사용하는 상징물이다. /박범철 교사 제공

◆ '정치적 중립' 압박…자기검열에 빠지는 교사들

하지만 마땅한 대응책은 없다. 교원지위법은 교육활동 침해행위를 '교원의 교육활동을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제한하는 행위'라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혐오 표현 사용에 관한 내용은 없다. 교육부가 발표한 '교육활동 보호 매뉴얼'에도 마찬가지다.

박대훈 인천 초은고등학교 교사는 "교실에서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학생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를 담은 매뉴얼은 없다"며 "그나마 학생의 잘못된 행동을 징계할 수 있는 수단인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 등이 있지만 학생이 혐오 표현 사용에 대해 '그냥 장난'이라고 했을 때 실제 징계 조치까지 이뤄지는 경우는 전무하다"고 말했다.

현경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대변인은 "차별 용어나 혐오 표현을 교사가 제재할 수 있는 조례나 제도는 전혀 없다"며 "학교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이긴 하지만 학생을 어떻게 지도하고 교육할 것이냐는 전부 교사 개인에 맡겨져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개인이 책임지고 지도해야 하는 교사들은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압박에 시달린다. 전교조가 지난 7월 전국 초·중·고교 교사 11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혐오·역사왜곡 표현을 지도하기 어려운 이유로 응답자의 69.9%는 '정치적 중립 위반으로 문제 삼을까 우려된다'고 답했다.

홍 교사는 "사회적 합의가 돼있다고 해도 정치적 의혹으로 어떻게 비난받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이런 부담이 정치에 관한 말을 일절 하지 않아야 한다는 자기검열 형태로 나타난다"며 "학교 현장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도록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압박이 줄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징계나 단발성 예방교육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학생 문화 자체를 바꿀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지난 8월 국회에서 교육현장에서의 혐오표현 방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김태연 기자
전문가들은 징계나 단발성 예방교육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학생 문화 자체를 바꿀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지난 8월 국회에서 '교육현장에서의 혐오표현 방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김태연 기자

◆어른이 물려준 문화…"처벌 아닌 사회적 해법 모색해야"

전문가들은 징계나 단발성 예방교육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학생 문화 자체를 바꿀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 교사는 "청소년들이 교실 내부를 벗어나 지역사회의 다양한 주체, 이주민 등과 직접 만나고 교류하는 사회참여 활동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며 "교실에서 쉽게 혐오의 대상이 됐던 이주배경 청소년, 장애·비장애 청소년 등이 서로 연결돼 있고 연대하며 더불어 산다는 감각을 느껴야 한다"고 제안했다.

범정부 차원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백기 서울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학생인권 옹호관은 "대부분 교사들이 교실 내 혐오 표현의 심각성에 동의하면서도 실제 대응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매우 낮다"며 "교사 개인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명확한 판단 기준의 부재, 정치적 편향 시비 및 민원 부담, 교육당국의 지원 체계 공백이 만들어낸 구조적 간극"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정치권과 미디어에서 유통되는 비하와 조롱, 낙인의 언어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학습되고 있다. 어른이 물려준 문화인 만큼 학생들만 희생양 삼는 접근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며 "범부처 TF를 구성해 종합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학교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단계별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공항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신지혜 양은 "선생님들이 소신껏 올바른 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며 "가해자를 무조건 처벌하기보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스스로 깨닫게 하는 교육과 피해자가 안심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학교 내 공간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pad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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