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시민단체 "영리 플랫폼이 진료·처방·데이터까지 영향력"
산업계 "기존 의료체계 내 수령 방식 변화…민영화 주장 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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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앞두고 약 배송 확대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약업계와 시민단체는 약 배송 전면화가 의료 민영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 2025년 경기 성남시의 한 약국에서 약사가 약을 설명하고 있다. /더팩트 DB |
[더팩트ㅣ조성은 기자] 오는 12월 24일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골자로 한 개정 의료법 시행을 앞두고, 처방약 배송 확대를 둘러싼 갈등이 치닫고 있다. 약업계와 시민단체는 이번 정책 추진이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훼손하고 '의료 민영화'로 가는 수순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반면, 산업계는 기존 의료 전달 체계 내에서의 단순 수령 방식 확장일 뿐이라며 맞서고 있다.
26일 더팩트 취재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20일 보건복지부·중소벤처기업부·국무조정실과 약사단체, 비대면진료 중개업체 등이 참여하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모든 비대면진료 환자를 대상으로 약 배송을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현재는 오는 12월24일 비대면진료 제도화에 맞춰 섬·벽지 거주자와 장기요양급여 수급자, 장애인, 감염병 환자, 희귀질환자 등 일부 대상에 한해 재택수령을 허용하는 방안이 마련됐다. 전체 환자로 확대하려면 의료법·약사법 등 추가 법 개정이 필요하다.
약사사회와 보건의료단체는 '배송'이라는 행위 자체보다 민간 플랫폼의 역할 확대를 문제삼고 있다. 이들은 영리 목적의 민간 플랫폼이 공적 보건의료 체계 중간에 침투해 시장을 통제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구조를 형성해 '의료 민영화' 신호탄이 될 것이라 보고 있다.
전진한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핵심은 대면·비대면의 기술적 차이가 아니라, 의료법상 금지돼 있던 영리 법인의 의료 및 약제 사업 진출을 허용하는 것"이라며 "약 배송 역시 플랫폼을 매개로 상업적인 법인이 배송 영역에 들어오는 구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플랫폼은 독과점을 형성한 뒤 지대를 추구할 것이며, 플랫폼 입장에서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과잉진료나 비급여 처방, 항생제 오남용 등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진료 생태계를 왜곡시킬 위험이 크다"고 우려했다.
김재헌 무상의료운동본부 사무국장 역시 "공적 의료체계 안에 영리 플랫폼 기업이 들어와 약 배송을 통제하게 되면 민영화와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건강보험공단을 사기업이 직접 인수하는 것만이 민영화가 아니다. 공적 영역에 영리 기업이 끼어들어 이윤을 뽑아내는 구조 자체가 민영화의 본질"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배달앱이나 택시 플랫폼처럼 향후 독과점이 완성되면 중개 수수료와 과잉 마케팅 비용은 결국 국민의 의료비 부담과 건강보험 재정 파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약 배송이 확대될 경우 플랫폼이 단순한 '진료 중개'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도 쟁점이다. 현재 정부는 비대면진료 플랫폼에 환자가 처방받은 의약품을 보유한 약국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약국별 의약품 구매·조제 여부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향후 제공 주기를 단축하고 약국별 구매·조제 수량 정보까지 제공할 계획이다.
약사사회는 이 같은 정보와 플랫폼의 약국 추천 기능이 결합할 경우 약국의 노출과 환자유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비대면진료 플랫폼에서는 약국을 '추천순', '가까운 순', '리뷰 많은 순' 등으로 배열하고 과거 조제 이력 등을 바탕으로 '조제 가능성이 높은 약국'을 안내하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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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약사회 회원들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국민건강·건강보험 수호 전국 약사 총궐기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
약사사회는 지난 20일 서울 광화문에서 약사 및 약대생 1만 여명이 결집한 총궐기대회를 열고 정책 철회를 요구했다. 권영희 대한약사회장은 "의약품은 공산품이나 택배 상자에 담겨 문 앞에 던져질 상품이 아니다"라며 "정부는 제대로 된 평가나 안전장치도 없이 특정 사설 플랫폼 기업의 수익 모델을 연명해주기 위해 아직 시행도 안된 법을 바꾸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약 배송 확대가 초래할 또 다른 민영화 요소로 환자의 민감한 의료 데이터 집적과 민간 보험사 연계가 꼽힌다. 비대면 진료 및 약 배송 과정에서 환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질병분류기호, 처방 의약품 내역 등이 민간 플랫폼에 축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강경연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사무국장은 "비대면진료를 받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의사의 처치 등 치료가 아닌 약"이라며 "약 배송을 포함해 개인 의료정보를 플랫폼이 통제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정부가 여러 규제를 마련하겠지만 규제 사각지대가 생기고 규제를 우회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편리함'을 앞세워 규제를 점차 완화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도 "비대면진료 이후 환자 개인정보와 전자처방전 등을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한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약 배송 확대가 특정 사업자의 이익을 키우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약사회 및 관련 단체 등에 따르면, 플랫폼이 환자와 약국의 구매·조제 데이터, 위치 정보 등을 확보해 수직계열화를 이룰 경우, 이 데이터가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이나 광고 단가 산정에 재활용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민간 실손보험사 등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배제될 수 없다. 실제 KB손해보험 자회사 KB헬스케어가 비대면 진료 플랫폼 '올라케어'를 인수하는 등 보험사의 디지털 헬스케어 진출이 가속화되는 상황이다.
의료 데이터가 민간 기업에 넘어가 실손보험사의 가입자 선별이나 보험료 인상 수단으로 악용될 경우, 건강보험 중심의 공공의료 체계가 약화되고 민간보험 의존도가 높아지는 전형적인 의료 민영화 구조로 귀결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반면 플랫폼 업계는 '의료 민영화' 주장이 과도한 논리 도약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슬 원격의료산업협의회 공동회장은 "의약품 재택 수령은 의사가 정상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보고 약사가 조제한 약을 환자가 집에서 받는 수령 방식의 문제"라며 "진단과 처방, 조제라는 고유 역할은 여전히 공적 건강보험 체계 내의 의사와 약사가 수행하므로 기존 의료 전달 체계와 다를 바 없다"고 반박했다.
이 회장은 민간 플랫폼 진입에 따른 민영화 우려에 대해 "현재 오프라인 병·의원과 약국도 공공기관이 아닌 개별 민간 사업자로서 수익을 추구하고 있으며, 플랫폼 역시 이 공적 틀 안에서 중개 역할을 수행할 뿐"이라며 "대형 약국 쏠림이나 전담 약국 폐해는 GPS 기반 근거리(5㎞ 이내) 약국 지정, 약국당 비대면 조제 건수 제한 등의 제도적 안전장치로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산협은 야간·휴일이나 육아·돌봄, 거동 불편 등으로 처방약을 수령하기 어려운 환자들의 실질적인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약 배송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 내부와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린다. 중소벤처기업부와 국무조정실 등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부처는 배송 전면 확대에 적극적인 반면,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법 개정 필요성과 약사회의 반발, 안전성 문제 등을 종합 고려해 속도 조절을 시도하는 기류다. 국회 역시 최근 중개업자의 의약품 도매업 진출을 제한하는 이른바 '닥터나우 방지법'(약사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등 공공성과 유통 질서 확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민간 플랫폼 중심의 시장이 의료 영리화를 부추길 수 있는 만큼, 기술 혁신의 혜택을 살리면서도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전진한 정책국장은 "영국 NHS 사례와 같이 '공적 플랫폼' 도입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