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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임 사망' 유족에 고개 숙인 정몽원 HL 회장…남은 건 '재발 방지'
입력: 2026.09.23 10:21 / 수정: 2026.09.23 10:21

기자회견 무산 뒤 유가족과 합의…노조 참여 안전대책 마련
평택공장 등 법 위반 138건 적발…"중대재해 수사 계속 해야"


정몽원 HL그룹 회장이 지난 22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 마련된 HL만도 평택공장 청년 비정규직 고 김승모 씨 빈소를 조문한 뒤 유족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뉴시스
정몽원 HL그룹 회장이 지난 22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 마련된 HL만도 평택공장 청년 비정규직 고 김승모 씨 빈소를 조문한 뒤 유족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뉴시스

[더팩트ㅣ황지향 기자] HL만도 평택공장에서 28세 하청 노동자 고(故) 김승모 씨가 숨진 지 두 달여 만에 유가족과 회사 측이 합의하면서 갈등이 일단락됐다. 정몽원 HL그룹 회장이 유가족을 직접 찾아 사과하고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에 뜻을 모았다. 사고 이후 고용노동부 감독에서 100건이 넘는 법 위반 사항이 확인된 만큼 앞으로 재발 방지 대책을 현장에서 얼마나 충실히 이행하느냐가 중요해졌다.

23일 만도 평택공장 청년 비정규직 고 김승모 중대재해 대책위원회(대책위)에 따르면 대책위와 HL만도는 지난 21일 오후부터 22일 새벽까지 이어진 협상 끝에 김 씨 사망사고와 관련한 문제 해결에 합의했다.

합의안에는 △정 회장을 포함한 HL만도 경영진의 사과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불법파견 수사 관련 협조 △유가족 배·보상 등이 담겼다.

정 회장은 전날 오후 조성현 HL만도 부회장 등 경영진과 함께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 마련된 김 씨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정 회장은 유가족에게 "정말 죄송하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라고 사과했다. 사고 이후 정 회장이 유가족을 직접 만나 사과한 것은 처음이다.

정 회장은 A4 용지 2장 분량의 편지도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김 씨의 아버지가 다시는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하자 정 회장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같은 장소에서 김 씨의 노동·시민·사회장이 진행됐다.

합의가 이뤄지기 하루 전까지 양측은 사과 방식을 두고 충돌했다. HL만도는 지난 21일 오후 경기 성남시 HL만도 판교 사옥에서 김 씨 사망사고에 대한 사과 성명과 종합 안전 개선 대책을 발표하려 했으나 유가족과 대책위의 반발로 기자회견이 무산됐다.

당시 유가족과 대책위는 회견장을 찾아 사과 내용과 안전 대책에 대한 사전 협의가 없었다며 기자회견 중단을 요구했다. 김 씨의 아버지는 "사과를 하려면 사전에 유족과 어떻게 사과할 것인지 협의하는 것이 먼저 아니냐"며 "정식으로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가 진짜 사과이지 이런 식의 사과는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조성현 HL만도 부회장이 지난 21일 경기 성남시 HL만도 판교 사옥에서 유가족 및 대책위원회 관계자들과 대치하고 있다. /황지향 기자
조성현 HL만도 부회장이 지난 21일 경기 성남시 HL만도 판교 사옥에서 유가족 및 대책위원회 관계자들과 대치하고 있다. /황지향 기자

기자회견을 위해 현장에 나온 조 부회장도 유가족·대책위 관계자들과 대치했다. 조 부회장은 "빨리 유족들과 합의하기를 원하고 있다"며 "물론 입장 차이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후 기자회견을 진행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양측은 같은 날 오후부터 협상을 이어가 이튿날 새벽 합의를 이끌어냈다. HL만도는 "유가족과의 합의 사항을 성실히 이행하고 이와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안전관리 체계를 지속적으로 점검·개선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HL만도가 마련한 종합 안전 개선 대책에는 △외부 전문기관을 통한 전 사업장 연례 전수진단 △긴급 위험요소에 대한 '선조치·후보고' 체계 △인체감지·이동형 폐쇄회로(CC)TV 도입 △노사 합동 현장점검 및 노동조합의 위험성평가 참여 △안전보건실 신설 및 안전인력 확충 등의 내용이 담겼다.

사고 이후 진행된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 감독에서는 다수의 법 위반 사항이 확인됐다. 노동부가 지난달 18일부터 이달 18일까지 HL만도 평택공장과 하청업체 4곳을 감독한 결과 총 138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을 적발했다. 이 가운데 86건은 사법처리하고 52건에는 총 2억8000여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다.

원청인 HL만도 평택공장에서만 125건의 위반 사항이 확인됐다. 안전보건규칙 위반 78건 가운데 끼임 위험 관련 위반이 26건으로 33%를 차지했다. 방호장치인 인터록을 해제한 상태로 설비를 가동하거나 컨베이어 건널다리를 설치하지 않은 사례 등이 확인됐다. 노동부는 평택공장에 종합적인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을 지시하고 HL만도 원주·익산공장에 대해서도 감독에 착수했다.

김 씨는 지난 7월 22일 낮 12시50분께 HL만도 평택공장에서 고장 난 부품 가공 기계 내부를 점검하던 중 기계와 벽 사이에 상반신이 끼여 숨졌다.

유가족과 회사 간 합의와 별개로 관련 수사와 형사 절차는 이어질 전망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HL만도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으며 불법파견 여부도 조사하고 있다.

대책위는 "당사자 간에 합의가 이뤄졌지만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은 이제 시작"이라며 "불법파견 혐의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에 따른 수사와 형사 절차는 계속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hya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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