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성 해트트릭이 증명한 ‘유럽파의 힘’...이민성호 우려를 지웠다 [이영규의 비욘더매치]
  • 이영규 기자
  • 입력: 2026.09.16 00:00 / 수정: 2026.09.16 00:00
해트트릭 엄지성, 황의조·정우영 잇는 득점왕 계보 큰걸음
양현준·배준호·김명준·김지수 등 유럽파 경쟁력이 만든 성공적 출발
이민성호의 와일드 카드 엄지성(가운데)이 15일 카타르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D조 1차전에서 전반전에만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한국 축구의 아시안게임 4연패의 문을 활짝 열어제치며 기뻐하고 있다./나고야=KFA
이민성호의 '와일드 카드' 엄지성(가운데)이 15일 카타르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D조 1차전에서 전반전에만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한국 축구의 아시안게임 4연패의 문을 활짝 열어제치며 기뻐하고 있다./나고야=KFA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상대 전력이 한 수 아래로 평가된다 해도 단기 레이스의 첫 경기는 언제나 중압감이 크다. 손발을 맞출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준비 과정, 그리고 경기력을 둘러싸고 안팎에서 제기되던 불신의 시선까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대회 4연패를 노리는 이민성호의 출사표에는 남다른 부담감이 얹혀 있었다. 그러나 15일 일본 나고야 미나토 축구장에서 열린 카타르와의 D조 조별리그 1차전은 그 무거운 우려를 털어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중심에는 유럽 무대에서 단련된 해외파 공격 2선의 ‘클래스’가 있었다.

◆ 차원이 다른 2선 라인업, 카타르 수비를 얼려버리다

엄지성(스완지시티), 배준호(스토크시티), 양현준(셀틱)으로 이어진 공격 2선 스타팅 라인업은 시작부터 카타르 수비진을 압도했다. 두 살 어린 카타르 수비수들은 차원이 다른 발기술과 시야, 강렬한 스피드 앞에 그저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전방의 김명준(용 헹크)이 과감한 움직임으로 수비를 끌고 다니며 넓은 공간을 창출하자, 2선의 탈압박 능력은 더욱 빛을 발했다. 상대 수비진 두세 명이 겹겹이 싸며 압박을 시도했지만, 가벼운 턴과 공간 노림수 하나로 찬스가 손쉽게 열렸다.

엄지성이 15일 열린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축구 카타르와의 D조 조별리그 첫경기에서 골을 터뜨리고 있다./나고야(일본)=KFA
엄지성이 15일 열린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축구 카타르와의 D조 조별리그 첫경기에서 골을 터뜨리고 있다./나고야(일본)=KFA

◆ 엄지성의 선제골과 해트트릭, 득점왕 계보를 잇다

첫 골 역시 유럽파의 클래스가 만든 작품이었다. 후방에서 센터백 박지수(브렌트퍼드)가 전방으로 길게 질러준 공간 패스를, 엄지성이 특유의 스피드로 라인을 허물며 낚아채 일대일 기회를 맞이했다. 이어 지체 없는 왼발 마무리까지, 스피드와 힘, 기술 면에서 카타르를 압도한 장면이었다. 활발한 전방 침투를 이어간 엄지성은 전반에만 해트트릭을 작성하며, 8년 전 황의조와 4년 전 정우영이 걸었던 아시안게임 득점왕 계보를 이어갈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 개인 기량의 압도와 정교해진 공수 전술 밸런스

이날 경기를 주도한 가장 큰 원동력은 유럽 무대에서 높은 수준의 경쟁을 경험한 선수들의 개인 기량이었다. 상대의 거친 압박 속에서도 침착하게 빈 공간을 찾아내고, 탈압박 이후 곧바로 키 패스로 연결하는 능력에서 확실한 능력 차이를 보여줬다.

여기에 풀백 자원들의 과감한 오버래핑과 공수 밸런스도 이민성호의 완성도를 높였다. 왼쪽 배현서와 오른쪽 최석현이 가파른 속도감으로 공격 깊숙이 침투하며 양현준과 엄지성의 중원 타격을 측면에서 효과적으로 지원했다. 배현서가 전진할 때 3선 이기혁이 왼쪽 측면 수비 구역을 재빠르게 커버하는 플레이가 빛났고, 센터백 김지수와 신민하의 견고한 후방 제어 역시 카타르의 반격을 무력화하는 단단한 기반이 되었다.

23세 초과 와일드카드 선수로 뽑힌 캡틴 이기혁이 카타르와의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 볼경합을 벌이고 있다./나고야=KFA
23세 초과 와일드카드 선수로 뽑힌 '캡틴' 이기혁이 카타르와의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 볼경합을 벌이고 있다./나고야=KFA

◆ 김명준의 쐐기골과 로테이션, 결승을 향한 벤치 자원의 운용

후반 들어서도 한국의 주도권은 흔들리지 않았다. 원톱으로 나선 김명준은 후반 21분, 양현준이 찔러준 정교한 뒷공간 패스를 받아 골키퍼와 맞선 뒤 침착하게 골망을 흔들었다. 올 시즌 벨기에 2부리그에서 4경기 4골 1도움을 기록하며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는 날카로운 골 감각이 대표팀 무대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 장면이다.

위기 상황 없이 승기를 잡은 덕분에 이민성 감독은 결승까지 이어지는 장기전을 대비해 교체 카드를 적극 활용할 수 있었다. 후반 27분 강상윤(전북), 양민혁(베스테를로), 이현주(아로카)를 투입해 이들의 실전 감각을 끌어올릴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체력 소모가 컸던 김명준, 이승원, 배준호에게 휴식을 부여했다. 첫 경기의 승리를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남은 토너먼트까지 바라보며 주전과 벤치의 균형을 맞춘 셈이다.

◆ 후반 막판 집중력 저하와 수비 불안, 옥에 티로 남은 방심

그러나 경기 막판 보여준 집중력 저하는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후반 40분, 상대의 중원 프리킥이 박스 안으로 전개될 때 박스 내에 충분한 수비 숫자가 구축되어 있었음에도 낙하지점을 놓치며 하산에게 허무하게 추격골을 내줬다. 명백한 방심이 불러온 실점이었다. 이어 후반 43분에도 엄지성 대신 박승수가 투입된 직후 어수선해진 틈을 타 카타르가 박스 정면에서 위협적인 슛을 시도했고, 골키퍼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또 한 번 실점 위기를 맞을 뻔했다.

선수 교체 직후 수비 조직력이 순식간에 흔들리고 집중력이 흐려지는 모습은 결승까지 길고 험난한 여정을 치러야 하는 한국 대표팀에게는 곤란한 장면이다. 특히 이번 D조는 이라크의 불참으로 대한민국,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3개 팀만 경쟁한다. 사우디와의 경기 결과에 따라 득실차를 따져 조 1위를 결정해야 하는 구조인 만큼, 단 1실점이라도 최소화하고 다득점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철저한 경각심이 요구되는 이유다.

15카타르전에 나선 이민성호의 스타팅11./KFA
15카타르전에 나선 이민성호의 스타팅11./KFA

◆ 우려를 기대로 바꾼 첫 단추, '완성도'를 더해야 할 시간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거둔 승리는 단순한 1승 그 이상이다. 유럽파 자원들의 경기력이 기대 이상으로 살아 있음을 확인하면서 이민성호를 둘러싼 우려에도 변화의 계기를 만들었다.

첫 경기는 분명 성공적이었다. 유럽파의 개인 기량은 이민성호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토너먼트는 한 경기의 화려한 승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경기 막판 드러난 수비 집중력과 교체 이후 조직력 저하를 얼마나 빠르게 보완하느냐가 남은 경기의 중요한 과제가 됐다. 첫 단추를 잘 꿴 만큼,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출발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는 팀의 완성도다.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