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증권 실물이전 5.2조로 최대…DC·IRP 중심 자금 이탈
5대 은행, 상품·수익률·투자 편의성 높여 고객 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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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직연금 시장의 무게중심이 은행에서 증권으로 옮겨가는 가운데, 은행들이 거래 편의성과 맞춤형 자산관리 강화 등을 통해 대응에 나섰다. /더팩트 DB |
[더팩트 | 김태환 기자] 퇴직연금 시장에서 은행을 떠나 증권사로 향하는 '머니무브'가 뚜렷해지고 있다. 실물이전 제도 시행 이후 은행에서 증권사로 이동하는 퇴직연금이 늘어나는 가운데 금융당국도 이전 절차를 추가로 개선하기로 했고, 시장의 무게중심도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퇴직연금(IRP)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은행들은 상장지수펀드(ETF) 거래 편의성과 상품 라인업, 맞춤형 자산관리를 강화하며 고객 붙잡기에 나서고 있다.
2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가 시행된 2024년 10월 31일부터 올해 6월 말까지 누적 이전 금액은 15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전 건수는 25만여건으로 하루 평균 261억원, 409건의 퇴직연금이 금융회사 사이를 오간 셈이다. 올해 상반기 이전액만 6조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3조2000억원의 2배를 넘어섰다.
자금 이동은 증권사 쪽으로 기울었다. 금감원 집계에 따르면 은행에서 증권사로 옮겨간 금액이 5조2000억원으로 전체의 33%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은행에서 다른 은행으로 이동한 금액도 4조5000억원으로 28%를 차지했다. 전체 실물이전을 순유출입 기준으로 보면 증권권역에는 4조1513억원이 순유입된 반면 은행권에서는 3조9714억원이 빠져나갔다.
특히 가입자가 직접 자산을 운용하는 DC와 IRP에서 증권사로의 이동이 두드러졌다. 확정급여형(DB)은 증권사에서 은행·보험사로 자금이 이동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DC와 IRP는 은행·보험사에서 증권사로 향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제도별 이전액도 IRP가 6조800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DC 4조8000억원, DB 4조3000억원 순이었다.
금감원 퇴직연금 공시를 보면 시장 전체에서도 은행의 점유율은 낮아지는 추세다. 올해 2분기 말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은 553조8779억원으로 이 가운데 은행권은 281조5105억원, 증권업권은 165조468억원을 차지했다. 은행권 점유율은 지난해 말 52.4%에서 50.8%로 낮아진 반면 증권업권은 26.5%에서 29.8%로 상승했다. 특히 올해 상반기 DC와 IRP 적립금 증가 규모에서 증권업권이 은행권을 앞서면서 가입자가 직접 운용하는 시장을 중심으로 경쟁 구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제도 개선은 사업자 간 경쟁을 한층 더 촉진할 전망이다. 금감원은 지난 24일 퇴직연금 실물이전 개선 태스크포스(TF) 킥오프 회의를 열고 현재 동일 제도끼리만 가능한 실물이전을 DC에서 다른 사업자의 IRP로도 할 수 있도록 관련 전산 개발을 추진하기로 했다. 환매중단펀드를 실물이전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과 녹취 이외의 비대면 이전 의사 확인 방식 등도 논의한다. 이전 절차가 간편해질수록 가입자가 수익률과 상품, 서비스 등을 비교해 사업자를 바꾸기도 쉬워지는 셈이다.
이에 은행권도 증권사가 상대적으로 강점을 보였던 투자 편의성을 끌어올리고 있다. 공통적으로 기존 원리금보장상품과 기업영업 위주의 퇴직연금 경쟁에서 투자형 연금 자산관리로 무게중심을 옮긴다는 전략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20일부터 퇴직연금 계좌에서 ETF를 매도한 당일 다른 ETF를 매수할 수 있는 서비스를 은행권에서 선제적으로 도입했다. 기존에는 ETF를 매도한 뒤 해당 자금으로 다른 ETF를 사기까지 다음 영업일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미수금을 활용해 당일 상품 교체가 가능하도록 전산을 개선했다. 증권사 대비 불편했던 ETF 거래 절차를 줄여 적극적으로 자산을 운용하는 DC·IRP 고객을 붙잡겠다는 전략이다.
하나은행은 ETF 투자 편의성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5월 하나원큐 내 퇴직연금 ETF 서비스를 개편해 코스콤의 'ETF CHECK'를 연계하고 실시간 호가와 시장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고객이 설정한 목표수익률에 보유 ETF가 도달하면 알림을 주는 기능도 추가했다. 오는 9월 중 ETF를 매도한 당일 다른 ETF를 매수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 도입을 목표로 관련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퇴직연금 고객의 생애주기 전반을 아우르는 자산관리에 무게를 두고 있다. DB 가입 기업의 DC 전환부터 근로자의 IRP 운용까지 이어지는 연금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ETF와 타깃데이트펀드(TDF) 등 실적배당형 상품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금감원 퇴직연금 공시 기준 올해 2분기 말 신한은행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58조8888억원으로 전체 사업자 가운데 가장 많았다. 신한은행은 1분기 기준 242개의 퇴직연금 ETF 상품을 제공하는 등 투자상품 선택권도 넓히고 있다.
우리은행은 상품 선택권과 포트폴리오 관리에 초점을 맞췄다. 6월 말 기준 퇴직연금 투자상품 라인업은 펀드 424개와 ETF 240개 등 총 664개로 주요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많은 수준이다. AI·반도체·우주항공·방산 등 시장 흐름을 반영한 상품을 확대하는 한편 9월까지 퇴직연금 시스템을 재구축하고 ETF 전용 거래 서비스도 신설할 예정이다.
직접 상품을 선택하기 어려운 가입자를 겨냥한 자산관리 서비스도 강화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고객의 투자성향과 연금 적립·인출 단계에 맞춰 모델 포트폴리오를 제시하는 '전문가 Pick 포트폴리오'를 운영 중이다. AI 기반 일임형 로보어드바이저와 비대면 IRP 수수료 면제 등도 고객 유지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금감원 통합연금포털 공시에 따르면 NH농협은행의 올해 2분기 원리금비보장형 1년 운용수익률은 DB 25.04%, DC 57.33%, 개인형 IRP 59.69%로 세 제도 모두 5대 은행 중 가장 높았다. 개인형 IRP의 5년 수익률도 12.51%로 5대 은행 중 가장 높았다. 농협은행은 AI 기반 로보어드바이저와 자산배분 포트폴리오 고도화, 전국 영업망을 활용한 맞춤형 자산관리를 결합해 고객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DC에서 다른 사업자의 IRP로 실물이전이 가능해지면 기존 고객을 확보하더라도 퇴직 시점에 더 나은 투자상품이나 서비스를 찾아 다른 금융사의 IRP로 이동하는 문턱이 낮아지기 때문에 고객 유지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가능성이 크다"면서 "은행권이 여전히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향후 시장의 성장을 이끄는 DC·IRP 자금을 얼마나 붙잡을 수 있느냐가 점유율 수성의 관건이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kimthin@tf.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