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돌입 '뱀피르', 흥행하면 '복귀 물꼬', 실패하면 다시 도마 위로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총대를 멘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상되는 논란과 비난, 후폭풍을 충분히 알면서도 누군가를 앞장서 쉴드치고, 자신의 울타리 안에 품는 걸 말하는데요. 리스크가 늘 도사리고 있는 엔예계에선 종종 있는 일입니다. 특히 방송이라면 부담은 더욱 큽니다. 대중의 반응이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TV 드라마나 예능에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것은 시청자 정서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성공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아무도 엄두 내지 못했던 캐스팅을 감행해 결국 성공시킨 PD'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해당 출연자도 논란의 굴레를 벗고 자연스럽게 연예계에 복귀하는 가장 확실한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위험을 감수한 사람과 기회를 잡은 사람이 동시에 웃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실패하면 어떻게 될까요? '왜 굳이 저 사람이어야 했느냐는 책임론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영화계에서 꽤나 위험한 '총대'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천만 영화 '파묘'의 장재현 감독이 배우 유아인을 새 영화 '뱀피르'의 주연으로 선택한 건데요. 문제는 단순한 캐스팅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유아인의 논란이 터지기 전에 만들어진 영화가 아닙니다. 논란을 이미 모두 알고 있는 지금, 새로운 작품의 주연으로 선택한 겁니다. 과연 장재현 감독은 무엇을 믿고 이런 결정을 내린 걸까요?

◆대형 상업영화 복귀, 법원 판결과 대중 신뢰 회복은 전혀 다른 문제
영화 '뱀피르'는 유아인을 비롯해 이성민, 이준혁, 도이, 윤경호, 최현욱 등이 출연합니다. 대본 리딩과 고사까지 마치고 촬영에 들어가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캐스팅 명단에서 단연 눈에 들어오는 이름이 있습니다. 유아인입니다. 유아인은 의료용 마약류 등을 181차례 투약하고, 타인 명의로 수면제를 불법 처방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대법원은 지난해 7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법적으로는 처벌이 확정됐고, 일정한 법적 절차도 마무리됐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중의 판단까지 끝난 건 아닙니다. 법원의 판결과 대중의 신뢰 회복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 그것도 집행유예 기간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대형 상업영화의 주연으로 복귀하는 겁니다.
여기서 장재현 감독의 선택을 다시 보게 됩니다. 강렬한 연기를 보여준 좋은 배우라는 이유만으로 지금 반드시 유아인이어야 했느냐는 겁니다. 장재현 감독은 신인 감독이 아닙니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를 거쳐 '파묘'로 천만 감독이라는 강력한 브랜드까지 만들었습니다. 배우를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섰습니다. 그런 감독이 수많은 배우 가운데 굳이 가장 논란이 큰 배우를 새 작품의 주연으로 선택했습니다.
'영화만 잘 만들면 된다.' '유아인이 연기로 증명하면 대중도 다시 받아들일 것이다.' '좋은 작품 앞에서는 논란도 결국 사라질 것이다.' 단지 이런 믿음이었다면 이건 상당히 위험한 계산입니다. 영화의 완성도와 배우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영화를 만들어도 관객에게 특정 배우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논란 속에도 흥행하면 복귀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로 읽힐 가능성
관객 역시 선택권이 있습니다. '나는 이 배우의 복귀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게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 선택까지 존중하는 것이 영화계가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더구나 이번 경우는 이미 촬영이 끝난 작품을 어쩔 수 없이 개봉하는 상황과 다릅니다. '승부'나 '하이파이브'처럼 유아인의 논란 이전에 제작이 진행된 영화와는 성격 자체가 다릅니다. '뱀피르'는 논란을 알고도 새롭게 선택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더욱 책임이 무겁습니다.
장재현 감독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유아인의 복귀에 사실상 길을 열어준 셈이기 때문입니다. 더 우려되는 건 '천만 감독의 자신감'입니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대중의 판단까지 넘어설 수 있는 힘은 아닙니다. 오히려 영향력이 큰 감독일수록 자신의 선택이 업계와 대중에게 미칠 파장까지 고민해야 합니다. 우려에도 불구하고 만약 '뱀피르'가 흥행한다면 유아인의 복귀는 단숨에 탄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무조건 성공이라고만 평가할 수 있을까요? '논란이 있어도 결국 흥행하면 복귀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로 읽힐 가능성도 있습니다. 반대로 흥행에 실패한다면 더 복잡합니다. 유아인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지, 작품 자체의 문제인지 논란이 뒤따를 수 있습니다. 장재현 감독 역시 ‘파묘’로 쌓은 신뢰에 흠집이 날 가능성을 감수해야 합니다. 결국 '뱀피르'는 유아인만의 시험대가 아닙니다. 장재현 감독 자신의 판단을 검증하는 시험대이기도 합니다.

◆'총대를 멘다'는 건, 그 선택으로 발생하는 비난과 결과까지 감당해야
물론 유아인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나 개인 선택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한 번의 잘못으로 평생 모든 활동을 금지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재기의 기회와 대중의 신뢰 회복은 다른 문제입니다. 배우가 다시 작품을 할 수 있는 것과, 대중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를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 장재현 감독의 선택은 박수를 보내기보다 우려부터 하게 됩니다.
천만 감독의 자신감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영향력을 너무 믿은 무리수일까요? 결과는 '뱀피르'가 개봉하면 드러나겠지만 분명한 건 있습니다. 좋은 영화 한 편이 배우의 과거를 지워주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천만 감독의 이름이 대중의 판단을 대신해줄 수도 없습니다.
'총대를 멘다'는 건 남들이 못 하는 선택을 먼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선택으로 발생하는 비난과 결과까지 자신이 감당하겠다는 뜻이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재현 감독은 이미 총대를 멨습니다. 이제 남은 건 유아인의 복귀를 선택한 그 자신감이 진짜 실력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천만 감독이라는 이름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이었는지, 영화 '뱀피르'가 답해야 합니다. 그 답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번 선택을 '용기'라고 부르기엔 상당히 위험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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