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상 국가대표’와 ‘중정 비밀요원’...故 백인천의 2가지 비화 [유병철의 스포츠렉시오] 
  • 유병철 기자
  • 입력: 2026.08.17 00:00 / 수정: 2026.08.17 00:00
고교시절, 빙상 국가대표 선발
1971년 중앙정보부 소속으로 주일대사관 근무
'한 종목 몰빵, 군대는 필수'의 요즘과 대비
지난 8월 15일 오전 6시 14분께 불멸의 4할타자 백인천 전 감독이 향년 8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사진은 천안 단국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 모습. / 뉴시스
지난 8월 15일 오전 6시 14분께 '불멸의 4할타자' 백인천 전 감독이 향년 8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사진은 천안 단국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 모습. / 뉴시스

[더팩트 l 유병철 전문기자] # 마침 광복절이었네요. 불멸의 4할타자가 하늘로 갔습니다(백인천 향년 83세). 경동고 시절 만화 같은 스타탄생, 국내 스포츠선수의 첫 해외진출(1962년), 타격왕(1975년) 등 일본프로야구 대활약, 여기에 1982년 프로야구 원년 불멸의 4할타자(0.412), 1990년 LG 트윈스 우승 감독 등 역사에 남을 성취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가 빙상 즉,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되고, 한때 국정원 소속의 비밀요원으로 일했다는 점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 2015년에 출간된 <백인천의 노력자애(2015)>에 그가 고등학교 시절까지 또래를 뛰어넘는 빙상유망주였다는 사실이 나옵니다. ‘아버지를 졸라 장만한 스케이트를 신고 눈만 뜨면 수유리의 논에서 온종일 스케이트를 탔다.’ 소년 백인천은 야구도 잘했지만 빙상 스프린터로도 실력이 뛰어났습니다. 1960년 스쿼밸리 동계올림픽 국가대표(500m, 1500m)로 선발됐고, 1961년 월 동계체전 스피드스케이팅 1500m에서 1위를 차지한 바 있습니다. 일본 진출이 여의치 않았을 때 빙상선수로 일본에 갈까 고민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고교 시절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활약하던 백인천의 모습. 백인천은 500m와 1500m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 스타리치북스 <백인천의 노력자애> 중
고교 시절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활약하던 백인천의 모습. 백인천은 500m와 1500m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 스타리치북스 <백인천의 노력자애> 중

# 백인천의 빙상활약은 경쟁입시에 찌든 우리네 청소년과, 어린 시절부터 특정종목 하나에 몰입을 요구하는 우리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실제로 특정 종목에서 스타플레이가 된 선수들을 보고 "다른 종목을 해도 잘 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맞습니다. 타고난 운동신경에 강한 승부근성을 갖춘 이들은 어린 시절 다수의 스포츠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냅니다. 디디에 드로그바(축구)는 15세 전에 럭비를 주로 했고, 하킴 올라주원(농구)도 15세까지 축구 골키퍼로 유명했습니다. 지금은 방송인으로 유명한 ‘국보급센터’ 서장훈(농구)도 초등학교 때 야구선수였고, 김주성(농구)은 큰 키로 중학교 때 육상 높이뛰기 선수로 등록했습니다.

# 스포츠의 천국인 미국에서는 어린 시절 2~3개 종목을 즐기는 것이 보편화돼 있습니다. 심지어 전설의 보 잭슨은 같은 시즌에 야구와 미식축구에서 프로선수로 좋은 활약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탈인간계 운동능력으로 유명한 미국 프로풋볼(NFL)에는 지금도 전문 육상선수급의 달리기 능력을 보유한 선수들이 즐비합니다. 스포츠 선진국에서는 운동능력이 뛰어난 유소년이 어린 시절 다양한 종목을 경험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렇다면 빙상선수를 겸업한 백인천이 정상이고, 당장의 성적에 눈이 먼 지금의 우리네 유소년 전문체육이 비정상일 수 있습니다. "(빙상으로 단련한)탄탄한 하체와 뛰어난 순발력은 야구에 큰 도움이 됐다." 영원한 4할 타자가 전하는 학창시절 운동에 대한 조언입니다.

# 나무위키를 보면 백인천의 병역 항목은 ‘중앙정보부 대체 복부(첩보원)’으로 표기돼 있습니다. 고교 졸업 후 실업팀에 잠시 적을 두다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1962년)한 백인천에게는 병역의무가 숙제로 남았습니다. 그러다 1971년 초 귀국해 첩보교육 등 18주의 군사훈련을 받고 일본 프로야구로 복귀했죠(이 여파로 잠시 슬럼프도 겪었답니다). 원래는 1942년생이고, 호적에는 1943년으로 돼 있는 백인천이 병역이행을 미루고 미루다가 30세를 앞두고 병역문제 해결에 나선 것입니다.

지지통신이 보도한 백인천 전 감독의 부고 기사. 제목 중 1975년 수위타자라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 지지닷컴
지지통신이 보도한 백인천 전 감독의 부고 기사. 제목 중 1975년 수위타자라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 지지닷컴

# 이것이 빌미가 됐는지 1972년 일본 국회에서 한 중의원의 폭로로 ‘백인천 스파이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유명 프로야구선수라는 영향력과 신뢰성을 활용해 일본 유력인사와 접촉하고 그들로부터 얻은 고급정보를 중앙정보부에 보고했다는 것이죠. 이에 주일 한국대사관이 "백인천은 병역특혜에 민감한 한국정서를 고려해 대사관 무관 근무로 꾸몄을 뿐 실제 근무한 적이 없다"고 해명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습니다.

#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백인천의 스파이 활동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설령 스파이였다고 한들 그가 실체적으로 정보활동에 얼마나 공헌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타국에서 활약하는 스포츠스타에 대한 병역 배려입니다. 어찌됐든 백인천이 군복부와 일본프로야구 선수를 동시에 수행한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어떨까요? 아마 난리가 날 것입니다. 세계적인 팝스타 BTS도 병역의무를 완수하는 나라에서 스포츠스타가 이런 꼼수로 군복무를 했다면 국민여론이 내버려둘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만일 백인천이 당시 정상적으로 한국에서 현역병으로 근무했다면, 아마도 0.412의 신화도 없었을 가능성이 크고, 야구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백인천과 유사한 사례는 1995년 병역법까지 개정하며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한 바둑기사 이창호 정도일 겁니다(그나마 국내근무). 현재 한국에서 운동선수가 병역 혜택을 받는 것은 올림픽 메달(1~3위)과 아시안게임 우승뿐입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최근에는 정치권에서 축소 혹은 폐지의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입니다. 스포츠스타는 물론, 문화 예술 영역까지 특정 분야 유망주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대체복무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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