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지하철 타기가 두렵네…'숨 턱턱' '땀 샤워' 뜨거운 승강장
  • 안디모데 기자
  • 입력: 2026.08.06 16:11 / 수정: 2026.08.06 16:11
지하철 역사 281곳 중 51곳 '비냉방'
역무원들 땀 줄줄…승객들도 불편 호소
6일 서울교통공사(서교공)에 따르면 지하철 역사 281곳 중 51곳(지하 26곳·지상 25곳)에 냉방장치가 설치돼 있지 않다. /안디모데 기자
6일 서울교통공사(서교공)에 따르면 지하철 역사 281곳 중 51곳(지하 26곳·지상 25곳)에 냉방장치가 설치돼 있지 않다. /안디모데 기자

[더팩트ㅣ안디모데 기자] 폭염중대경보가 발령된 지난 4일 오후 1시20분께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승강장에 들어서자 이내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승강장 천장에 설치된 환기구에서는 실외에서 데워진 뜨거운 바람이 쏟아져 나왔다. 종로3가 방면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승객들은 연신 부채질을 하고 손 선풍기를 갖다 댔지만 땀이 멈추지 않았다. 일부는 승강장 앞에 설치된 이동형 냉방기기 앞에 서서 바람을 쐬고 있었다. 승강장에는 이동형 냉방기기 4대가 설치돼 있었지만 열기를 식히기는 역부족이었다.

'서울교통공사'가 적혀있는 선풍기 조끼를 입고 청소도구가 든 수레를 끌며 승강장 구석구석을 살피던 이모(64) 씨가 바닥에 떨어진 음료수 캔을 치우기 위해 허리를 숙이자 땀 한 방울이 떨어졌다. 이 씨는 음료수 캔을 치운 뒤 바닥에 떨어진 땀과 음료수의 흔적을 걸레로 닦았다. 흰색 마스크는 땀에 젖어 짙게 변했고, 눈가와 미간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안국역에서 4년째 서울메트로환경 소속 청소담당 공무직으로 일하고 있는 이 씨는 "안국역은 에어컨이 없어서 많이 덥다"며 "에어컨이 있는 휴식실에서 나오면 금세 땀이 난다"고 했다. 그는 입고 있는 선풍기 조끼를 손으로 가리키며 "선풍기 조끼가 처음에 입었을 때는 시원했는데 승강장을 계속 돌아다니다 보니 뜨거운 바람만 나와서 더 덥다"며 "이제 좀 벗어야겠다"고 했다.

장갑을 낀 손으로 분리수거함에 쌓인 플라스틱병과 음료수 캔을 정리하던 정모(65) 씨의 이마와 미간에도 땀방울이 흘렀다. 자리를 정리한 뒤 수레를 몰던 정 씨는 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더니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정 씨는 "땀이 뻘뻘 나서 겨울보다 여름이 더 힘들다"며 "더워서 아주 고역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6일 서울교통공사(서교공)에 따르면 지하철 역사 281곳 중 51곳(지하 26곳·지상 25곳)에 냉방장치가 설치돼 있지 않다. 서교공은 공공기관 에너지 이용 합리화 추진에 관한 규정에 따라 여름철 역사 내 온도를 28도 기준으로 유지하고 있지만, 51곳은 냉방장치가 없어 온도 조절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안국역 승강장의 온도는 34.4도로, 실외인 안국역 1번 출구 앞 34.1도보다 0.3도 높았다.

지난 4일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승강장의 온도는 34.4도로, 실외인 안국역 1번 출구 앞 34.1도보다 0.3도 높았다. 이날 오후 5시21분께 서울역 승강장의 온도는 33.5도로 서울역 1번 출구 앞 32.9도보다 0.6도 높았다. /안디모데 기자
지난 4일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승강장의 온도는 34.4도로, 실외인 안국역 1번 출구 앞 34.1도보다 0.3도 높았다. 이날 오후 5시21분께 서울역 승강장의 온도는 33.5도로 서울역 1번 출구 앞 32.9도보다 0.6도 높았다. /안디모데 기자

지하철 4호선 서울역 승강장도 냉방장치가 없어 덥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날 오후 5시21분께 서울역 승강장의 온도는 33.5도로 서울역 1번 출구 앞 32.9도보다 0.6도 높았다. 회현 방면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승객 12명의 이마에는 땀이 흘러내렸다. 승강장에 열차가 도착하자 출입문에서 승객 20여명이 쏟아져 내렸다. 열차를 기다리던 승객들과 뒤엉키며 피부가 맞닿자 시민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한 남성은 큰 소리로 "지나갈게요"를 외지며 인파를 빠져나갔다.

열차에서 내린 한 60대 남성의 안경에는 새하얗게 김이 서렸다. 승객 10여명은 "와", "어후" 등 탄식을 외치며 얼굴을 찡그렸다. 열차가 떠나고 4분여 만에 승강장은 다시 300여명으로 가득 찼다. 승객들은 열차를 기다리며 손으로 부채질하거나 부채와 손 선풍기를 사용했다. 한 40대 남성은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전화 통화를 하며 "날씨가 정상이 아니다. 서울역 너무 덥다"고 했다.

서울역에서 지하철 승하차 안전도우미로 일하고 있는 한 60대 남성의 회색 반소매 티셔츠는 목부터 가슴까지 땀으로 검게 젖어있었다. 그는 안경을 벗고 땀을 닦은 뒤 다시 고쳐쓰기를 반복했다. 인중은 땀에 젖어 반짝거렸다. 그는 "서울역에 에어컨이 없으니 더울 수밖에 없다"며 "사우나보다 더하다. 이러다 살 빠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시니어승강기안전단으로 활동하며 승강장 앞 에스컬레이터에서 "두 줄로 서주세요"를 외치던 70대 여성의 이마에도 땀이 흘렀다. 그는 "안전장비를 착용해야 해서 땀이 주룩 나지만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다"며 "목걸이형 선풍기가 있어도 덥다"고 했다.

시민들도 한목소리로 불편을 호소했다. 종로구에 거주하는 강정순(80) 씨는 "다른 역보다 안국역이 더 덥다. 부채로도 해결이 안 된다"고 말했다. 동대문구에 사는 박모(77) 씨는 "찜통이다. 지하철역이면 시원해야 하는거 아니냐"고 지적했다.

대학생 황민영(22) 씨는 이동형 냉방기기 앞에 상의를 펄럭거리며 "지하철역 들어오고 5분 정도만 지났는데도 땀이 난다"고 했다. 40대 직장인 최모 씨는 "역사 전체를 시원하게 하는 건 힘들겠지만 승강장만이라도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현태(42) 씨는 손 선풍기를 쐬면서도 "더운 바람만 나와 별 효과도 없다"고 말했다. 딸 김슬기(12) 양은 왼손에 든 모자로 부채질하며 "빨리 지하철 타고 싶다"고 졸랐다. 열차가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슬기 양은 "와 시원하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elahep1217@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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