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는 것을 넘어 경험의 영역으로, 이머시브가 관객과 무대의 경계를 제대로 허물면서 공연 문화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더팩트>는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시간을 되돌아보고 현장을 생생하게 경험하고 이를 만드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머시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편집자 주>
[더팩트|박지윤 기자] 보는 것에 끝나지 않고 직접 경험하는 공연으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관람 기준을 제시해 온 이머시브 공연이 최근 영화관이라는 무대를 만나면서 또 다른 형태의 몰입형 콘텐츠로 진화하고 있다.
롯데컬처웍스는 대형 스크린과 음향, 객석, 로비 등 영화관의 인프라를 공연과 결합한 '인사이드 더 플레이'를 론칭하며 이머시브 공연이 확산되는 흐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서바이벌'을 시작으로 '군체'(감독 연상호)의 세계관을 직접 즐길 수 있는 '군체'와 영화관 환경에 맞게 재구성된 뮤지컬 '룰렛' 그리고 다크웹 생중계라는 기술 구현이 돋보이는 '데스게임' 등을 선보이며 극장에서만 가능한 차별화된 몰입 경험을 제공 중이다.
이 가운데 <더팩트> 취재진은 롯데시네마 도곡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사이드 더 플레이: 룰렛'을 관람하면서 이머시브 뮤지컬의 매력을 직접 느껴보고 배우들과 관객들의 생생한 후기를 들어봤다.

이는 초·재연 당시 평균 객석 점유율 95%를 기록했던 원작 뮤지컬을 영화관 환경에 맞게 재구성한 작품으로, 극장 로비와 상영관을 하나의 거대한 카지노 공간으로 재해석하고 관객이 직접 게임과 베팅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15세 이상부터 관람할 수 있으며 인터미션없이 90분 동안 펼쳐진다.
현재 공연은 매주 월, 수, 목, 금요일 오후 8시에, 토, 일요일 오후 4시와 8시에 진행되고 있다. 이머시브석 7만 7000원, 다이아석 6만 6000원, 스페이드석 5만 5000원, 하트석 4만 4000원, 클로버석 3만 3000원이며 좌석별로 티켓 가격과 공연에 참여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르니 예매 전에 세부 내용을 확인하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을 고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인사이드 더 플레이: 룰렛'은 본격적으로 공연의 막이 오르기 30분 전부터 로비에서 프리쇼를 진행한다. 이에 이머시브석을 예매한 이들은 티켓과 함께 칩 5개를 받고 3개의 카드 중 컬러 조커 찾기, 주사위의 짝수와 홀수 및 합 예측하기, 카드 색상 맞추기 등 배우들과 카드 게임을 즐기고 이 과정에서 칩을 따거나 잃으면서 극의 분위기를 미리 맛볼 수 있다. 다른 좌석에서 관람하는 이들은 로비에서 직접 혹은 스크린을 통해 송출되는 화면을 통해 프리쇼를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공연 시간보다 약 20분 정도 일찍 극장으로 향한 기자는 티켓을 받을 때부터 베팅에 과몰입한 관객들의 열띤 함성을 들을 수 있었다. 해당 과정에서 손에 쥔 칩의 개수에 따라 배우들을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자리로 이동하거나 작품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등 공연을 보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스크린을 통해 카드 게임을 더 즐기고 몰입한 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20대 여성 A 씨는 "프리쇼도 공연의 일부라는 걸 알고 있지만 손에 칩이 잡히고 눈앞에서 현란한 손놀림으로 카드 게임이 진행되니까 더 몰입하게 되더라"고 웃어 보이며 "보통 공연은 불이 꺼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인사이드 더 플레이: 룰렛'은 프리쇼에서 본공연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더 색달랐다"고 후기를 남겼다.

관객의 말처럼 공연은 프리쇼에서 한 방을 노리다가 모든 걸 잃은 도일이 난동을 부리면서 시작되고, 포우가 자신이 살고 있는 비밀스러운 대저택의 문을 열고 파티에 관객들을 초대하며 현실에서 작품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입장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어 손님들에게 환영의 인사를 건넨 그는 사실 이 파티의 주인공은 도일이라고 알리면서 대저택의 문을 걸어 잠근다.
포우는 15년 전 자신과 고아원에서 이별하고 일련의 사고로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유일한 형제인 도일에게 대저택과 전 재산 그리고 목숨을 건 내기를 제안하고 게임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포우가 사랑하는 여인이자 게임의 또 다른 변수가 되는 아가사가 등장하고 내기와 얽히고설킨 비밀이 하나둘씩 밝혀진다. 과연 포우가 도일과 게임을 하려는 이유가 무엇이고 이들의 대결이 어떤 결과를 마주할지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인사이드 더 플레이: 룰렛'은 상영관에 큰 테이블과 여러 의자를 설치하고 극장 로비에는 여러 소품을 곳곳에 놓아두면서 공간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카지노 느낌으로 조성하고, 프리쇼와 본공연을 자연스럽게 이으면서 시작부터 높은 몰입도를 빠르게 형성한다.
포우의 대저택과 아가사의 카지노 등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의 배경이 되는가 하면, 배우들의 연기를 더욱 생생하게 라이브로 송출하는 대형 스크린의 다양한 활용법도 눈에 띈다. 또한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감과 동시에 적절한 넘버와 자유로운 안무가 돋보이는 퍼포먼스도 선보이며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공연을 보는 이들은 배우들의 인도 하에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직접 게임 베팅에 참여하고 무대 위에 올라가 새로운 캐릭터로서 연기할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여기에 관객들의 참여와 그날의 운에 따라 결말이 달라지는 점도 다른 공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색다른 관전 포인트다.

20대 여성 B 씨는 "익숙한 영화관에 큰 탁자와 의자를 놓았을 뿐인데 분위기가 달라지는 게 신기했다. 좋은 음향과 큰 스크린을 통해서 배우의 연기를 더 생생하고 자세하게 볼 수 있고, 좌석이 계단식이라 시야 방해가 없다는 점은 오직 영화관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장점인 것 같다"며 "이머시브 공연을 들어만 봤고 직접 관람하는 건 처음인데 기대 이상의 몰입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군체'에 이어 '룰렛'도 봤다는 10대 여성 C 씨는 "스포일러라서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생각보다 더 스토리가 탄탄했고 배우들의 실력도 대단했다. 기대 이상으로 완성도가 높은 공연이었다"며 "카드 운에 결말을 맡긴다는 점이 신선했다. 물론 큰 틀은 짜여있겠지만 그 안에서 라이브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있어서 다른 공연들과는 또 다른 감상을 갖고 돌아가는 것 같다"고 전했다.
여자친구와 함께 방문했다는 30대 남성 D 씨는 "MBTI가 E(외향형)인 사람들만 즐길 수 있는 공연일 것 같았는데 배우들과 거의 소통하지 않는 자리도 있으니까 누구나 잘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며 "배우들의 눈을 가까이서 볼 일이 별로 없다 보니까 처음에는 당황하고 어쩔 줄 몰랐는데 점점 익숙해지더라. 무엇보다 제가 베팅한 캐릭터가 이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보니 몰입하는 게 완전히 다르더라"고 차별점을 언급했다.
이는 관객들뿐만 아니라 배우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이 되고 있다. 포우를 연기하고 있는 박상준은 "배우로서 늘 배우와 관객 사이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궁금했다. 관객들이 단순히 공연을 보는 게 아니라 이야기 안으로 들어와서 호흡한다면 어떤 경험이 만들어질까라는 호기심이 컸다"며 "'룰렛'은 그 질문을 가장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었고 배우로서도 새로운 도전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출연을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이머시브 공연만의 매력으로 "일반적인 프로시니엄 형태의 극장에서 진행되는 공연도 그렇지만 더욱이 매 공연이 똑같지 않다는 점"을 꼽으며 "같은 대본으로 같은 배우가 공연을 해도 관객의 선택과 반응에 따라 분위기와 에너지가 완전히 달라진다. 배우도 그 순간을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훨씬 즉흥적이고 리얼한 공연이 되는 것 같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오늘은 다시 없을 오늘'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남는다"고 의미를 되새겼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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