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시브의 매력에 빠져①] 내가 작품의 일부?…경계를 허문 공연의 등장
  • 박지윤 기자
  • 입력: 2026.07.27 00:00 / 수정: 2026.07.27 00:00
2000년대 등장한 영국 '슬립노모어'에서 확산된 몰입형 작품들
'위대한 개츠비'·''그레이트 코멧' 등 국내 공연계에도 영향 끼쳐
슬립 노 모어(왼쪽)와 위대한 개츠비 등 관객이 객석에 앉아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연 공간 안에서 이동 및 선택하며 체험하는 형식의 이머시브 공연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작품 포스터
'슬립 노 모어'(왼쪽)와 '위대한 개츠비' 등 관객이 객석에 앉아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연 공간 안에서 이동 및 선택하며 체험하는 형식의 이머시브 공연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작품 포스터

보는 것을 넘어 경험의 영역으로, 이머시브가 관객과 무대의 경계를 제대로 허물면서 공연 문화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더팩트>는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시간을 되돌아보고 현장을 생생하게 경험하고 이를 만드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머시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편집자 주>

[더팩트|박지윤 기자] 이제 관객들은 정해진 좌석에 가만히 앉아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를 감상하는 걸 넘어 세계관에 직접 뛰어들고 배우들과도 가까이서 호흡하며 공연을 다양한 방법으로 만끽하고 있다. 관객들의 관람 방식에 색다른 변주를 주는 이머시브 공연이 등장한 덕분이다.

영어 'immersive(몰입형)'에서 온 말인 이머시브 공연은 관객이 객석에 앉아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연 공간 안에서 이동 및 선택하며 체험하는 공연 형식을 뜻한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느슨하게 하거나 없애면서 관객의 참여와 감각 경험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이머시브 공연은 정확히 언제부터 등장한 것일까. 미국의 연극 이론가 겸 연출가 리어츠 셰크너는 1960년대 후반부터 전통적인 극장의 고정된 무대 구조 대신 다양한 공간에서 공연이 이뤄질 수 있고 관객과 배우 사이의 관계도 변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 예술가들도 관객과 작품의 경계를 허무는 해프닝과 환경극을 시도하며 공연을 공간 자체의 경험으로 확장하려고 노력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던 중 이머시브 공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고 있는 '슬립노모어(Sleep No More)'가 2003년에 첫 등장한 것이다. 이는 관객을 공연의 중심에 배치하는 형식의 '이머시브 시어터'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 영국 공연단체 펀치드렁크(Punchdrunk)가 선보인 공연이다.

'슬립노모어'는 1930년대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히치콕 스타일의 서스펜스로 재해석한 논버벌(대사가 없는) 공연으로, 하나의 건물 자체를 무대로 펼쳐지는 배우들의 연기와 퍼포먼스를 관객들이 자유롭게 따라다니면서 관람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2011년 미국 뉴욕으로 무대를 옮긴 후 14년간 5000회 이상의 공연을 이어오며 누적 관객 수 200만 명을 돌파했고, 2016년 중국 상하이로 확장해 2670회의 장기 공연을 펼치고 있다.

색다른 해외 공연 형식과 함께 관객 참여형 콘텐츠와 체험형 전시 등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국내 제작진도 관객 경험을 중심으로 한 공연 방식을 시도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위대한 개츠비가 2019년 국내에서 막을 올렸다.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색다른 해외 공연 형식과 함께 관객 참여형 콘텐츠와 체험형 전시 등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국내 제작진도 관객 경험을 중심으로 한 공연 방식을 시도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위대한 개츠비'가 2019년 국내에서 막을 올렸다.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이러한 이머시브 공연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10년대 후반이다. 색다른 해외 공연 형식과 함께 관객 참여형 콘텐츠와 체험형 전시 등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국내 제작진도 관객 경험을 중심으로 한 공연 방식을 시도하기 시작한 것.

대표적인 예로 2019년 국내에서 공연된 '위대한 개츠비'가 있다. 이는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자 국내 최초 라이선스 이머시브 공연으로 많은 화제가 됐다.

관객들은 1920년대 미국의 화려한 황금기이자 재즈시대를 느낄 수 있도록 꾸며진 개츠비맨션에 방문해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찰스턴 댄스를 추고 개츠비의 티파티 준비를 돕는 등 공연의 일부가 된다. 하나의 사건이 각 캐릭터의 관점에 따라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다르게 펼쳐지도록 각색된 만큼, 캐릭터를 따라 이동하며 본인이 작품 속의 인물이 된 듯한 기분도 느낄 수 있다. 특히 선택에 따라 여러 가지 시선으로 작품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은 관객들을 'N차 관람'으로 이끌었다.

물론 이후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위기로 이머시브 공연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고 제작이 잠시 주춤하던 때도 있었으나, 관객 참여형과 공간을 활용한 이색 공연들이 꾸준히 등장했고 2021년 이머시브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이 국내 초연을 올렸다.

작품은 객석을 완전히 없애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 부분 이머시브 형식을 적용했다. 이에 배우들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 객석을 오가면서 관객들과 호흡했고 공연 중에는 객석 사이를 이동하거나 관객들에게 말을 걸면서 색다른 경험을 제공했다. 또한 공연장인 유니버설아트센터 내부를 작품의 배경인 1812년 러시아 사교장으로 꾸며 객석과 무대를 하나의 공간으로 활용하며 이머시브 공연의 가능성을 한층 더 넓혔다.

2003년에 첫 등장한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는 관객을 공연의 중심에 배치하는 형식의 이머시브 시어터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 영국 공연단체 펀치드렁크(Punchdrunk)가 선보인 공연이다. 현재 국내에서도 개막 1주년을 기념해 공연되고 있다. /미쓰잭슨
2003년에 첫 등장한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는 관객을 공연의 중심에 배치하는 형식의 '이머시브 시어터'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 영국 공연단체 펀치드렁크(Punchdrunk)가 선보인 공연이다. 현재 국내에서도 개막 1주년을 기념해 공연되고 있다. /미쓰잭슨

그리고 '슬립노모어 서울'이 지난해 개막했다. 작품은 서울 중구의 호텔 건물 전체를 무대로 활용하면서 관객이 자유롭게 공간을 탐험하도록 구성하며 해외에서 성공한 대형 이머시브 시어터를 국내에 그대로 구현한 첫 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았고, 국내 공연계에서도 이머시브 공연이 하나의 독립적인 장르로 확실하게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이에 힘입어 '슬립노모어 서울'은 개막 1주년을 기념해 충무로 대한극장 7층 규모의 매키탄 호텔(The McKithan Hotel)로 새롭게 탈바꿈시키면서 '슬립 노 모어' 역사상 최대 규모의 프로덕션을 선보이고 있다.

이렇게 이머시브 공연은 관객의 이동 경로나 선택에 따라 각기 다른 장면을 마주하게 하면서 같은 작품이라도 다양한 감상을 안긴다는 매력을 지닌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빠르고 즉각적인 만족감을 추구하는 동시에 콘텐츠를 단순히 소비하기보다 직접 경험하는 데 가치를 두는 문화의 확산과 맞물리며 더욱 긍정적인 시너지를 내고 있다. 이와 함께 공연 제작자에게는 기존의 무대라는 공간적 한계를 넘어 다양한 장소를 공연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함으로써 표현 방식과 연출의 폭을 확장시키고 있다.

이에 제작사 미쓰잭슨은 <더팩트>에 "'슬립노모어'는 이머시브 씨어터라는 장르를 탄생시켰다고 평가받을 만큼 관객에게 강렬한 몰입감과 다층적인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것이 단순히 새로운 공연 형식을 제시한 데 그치지 않고 공연예술의 지평을 확장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선구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다"며 "특히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넘어 공연이 이루어지는 공간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는 '공간 지향형 프로젝트'라는 점에 깊이 매료됐다"고 이머시브 공연을 제작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모든 이머시브 공연을 하나로 일반화하기는 어렵고 '슬립노모어'만 놓고 본다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미술 무용 음악 디자인 건축 문학 등 다양한 문화예술 요소가 하나의 작품 안에 집약된 종합예술이라는 점"이라며 "관객이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장면과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고 끊임없이 새로운 해석과 경험의 가능성을 열어둔 작품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바라봤다.

공연 제작사 ㈜스포트라이트 김민석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가만히 앉아서 관람하는 수동적인 공연보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관객이 직접 극에 개입하는 능동적인 관람 형태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산업 측면에서도 이러한 경험 경제의 규모가 매년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며 "이러한 변화 속에서 선도적으로 이머시브 극을 시도해 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어린 시절 봤던 영화 '웨스트월드'처럼 '내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공연이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라면서 꿈꿔왔던 상상을 현실로 구현해 낸 셈"이라고 회상했다.

또한 그는 "관객이 단순한 관람객에 머물지 않고 극의 일부가 돼 한층 깊게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며 "전통적인 무대 공연이 시각과 청각에 주로 의존한다면 이머시브 공연은 시각·청각·촉각은 물론 현장의 분위기까지 오감 전체로 즐기는 경험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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