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클로즈업] K팝은 세계를 삼켰는데…왜 엔터주가는 웃지 못하나
  • 강일홍 기자
  • 입력: 2026.07.27 00:00 / 수정: 2026.07.27 00:00
엔터기업 가치 '성장 딜레마', 고비용·고위험 구조의 복합 악재
'스타 의존' 넘어 IP·플랫폼·글로벌 현지화…제2 성장 공식 절실
한때 증권가에서는 엔터주가 미래 성장산업의 대표주라는 평가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화려한 한류의 확산과 달리 국내 엔터기업들의 주가는 최근 몇 년 사이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AI 이미지
한때 증권가에서는 엔터주가 '미래 성장산업의 대표주'라는 평가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화려한 한류의 확산과 달리 국내 엔터기업들의 주가는 최근 몇 년 사이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AI 이미지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2000년대 들어 한국 연예산업은 말 그대로 '기적의 성장'을 일궈냈다. 드라마와 영화, 음악을 중심으로 시작된 한류는 이제 국가 브랜드를 대표하는 문화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BTS와 블랙핑크, 세븐틴, 스트레이 키즈, 뉴진스 등 K팝 아티스트들이 세계 음악시장의 중심에 서면서 'K콘텐츠'는 더 이상 아시아권에 국한된 문화가 아니라 글로벌 대중문화의 주류로 인정받고 있다.

드라마 역시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 플랫폼을 통해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 '폭싹 속았수다' 등 세계적인 흥행작을 잇달아 배출했고, 영화 역시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이후 한국 콘텐츠의 경쟁력은 한 단계 더 도약했다. 자연스럽게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몸집도 커졌다. SM, YG, JYP, 하이브를 비롯한 주요 기획사들은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 규모 기업으로 성장했고, 소속 아티스트들의 몸값 역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다.

음반 판매와 공연, 팬덤 플랫폼, MD사업, IP(지식재산권) 사업까지 수익구조도 다변화됐다. 한때 증권가에서는 엔터주가 '미래 성장산업의 대표주'라는 평가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화려한 한류의 확산과 달리 국내 엔터기업들의 주가는 최근 몇 년 사이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가장 먼저 꼽히는 변수는 2016년 사드(THAAD) 배치 이후 촉발된 중국의 한한령이다.

K팝이 세계를 석권한 지금, 국내 엔터기업들이 넘어야 할 다음 과제는 글로벌 인기가 아니라 글로벌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그룹 트와이스의 정연과 나연, 채영, 다현, 지효, 쯔위(왼쪽부터)가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딴따라 JYP 포토월 행사(2024년 9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예원 기자
K팝이 세계를 석권한 지금, 국내 엔터기업들이 넘어야 할 다음 과제는 '글로벌 인기'가 아니라 '글로벌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그룹 트와이스의 정연과 나연, 채영, 다현, 지효, 쯔위(왼쪽부터)가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딴따라 JYP' 포토월 행사(2024년 9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예원 기자

글로벌 금리 인상과 경기침체 우려, 증시 전반의 변동성 확대 위기

중국 시장은 단순히 공연 한두 건이 취소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광고와 음반, 팬미팅, 예능 출연 등 거대한 소비시장이 한순간에 닫히면서 기업들의 성장 기대치 역시 크게 낮아졌다. 중국은 한국 연예인의 방송 출연과 공연, 콘텐츠 유통을 사실상 막아섰고, 이는 엔터기업들에 치명적 타격을 안겼다. 물론 이후 일본과 북미, 유럽 시장으로 외연을 넓히면서 중국 의존도는 상당 부분 줄었지만, 중국 시장이 갖고 있던 폭발적인 소비력을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평가다.

여기에 코로나19는 공연산업 자체를 멈춰 세웠다. 오프라인 공연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엔터기업들의 핵심 수익원을 바닥부터 뒤흔들었다. 팬덤 플랫폼과 온라인 콘서트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긴 했지만 공연이 만들어내는 수익성과 파급력까지 상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최근에는 또 다른 고민이 등장했다. 글로벌 금리 인상과 경기침체 우려, 증시 전반의 변동성 확대가 성장주인 엔터기업들의 밸류에이션을 크게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활동 공백만으로 기업가치 흔드는 사례 반복. 앨범 판매량 증가세 둔화, 팬사인회 중심의 소비 모델마저 한계를 드러내면서 K팝 기업의 수익성은 예전만큼 가파른 성장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연습생 육성과 콘텐츠 제작, 글로벌 마케팅 비용은 과거보다 몇 배 이상 늘어났지만 성공 확률은 오히려 낮아졌다. /AI 이미지
'활동 공백만으로 기업가치 흔드는 사례 반복'. 앨범 판매량 증가세 둔화, 팬사인회 중심의 소비 모델마저 한계를 드러내면서 K팝 기업의 수익성은 예전만큼 가파른 성장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연습생 육성과 콘텐츠 제작, 글로벌 마케팅 비용은 과거보다 몇 배 이상 늘어났지만 성공 확률은 오히려 낮아졌다. /AI 이미지

주요 아이돌 멤버 이탈, 활동 공백만으로 기업가치 흔드는 사례 반복

무엇보다 시장은 이제 더 이상 "좋은 아티스트를 보유했다"는 이유만으로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른바 '원톱 리스크'다. 한 팀의 흥행 여부가 회사 실적을 좌우하는 구조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실제로 BTS의 군 입대 시기 하이브의 실적 우려가 증폭됐고, 주요 아이돌 그룹의 재계약 문제나 멤버 이탈, 활동 공백만으로도 기업가치가 크게 흔들리는 사례는 반복되고 있다. 신인 그룹 데뷔 역시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세계 시장이 넓어진 만큼 경쟁도 더 치열해졌다는 얘기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제작비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연습생 육성과 콘텐츠 제작, 글로벌 마케팅 비용은 과거보다 몇 배 이상 늘어났지만 성공 확률은 오히려 낮아졌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미국, 중국은 물론 동남아 시장까지 글로벌 아이돌 육성 프로젝트가 본격화되면서 K팝의 독점적 경쟁력은 시험대에 올랐다. 앨범 판매량 증가세 둔화, 팬사인회 중심의 소비 모델마저 한계를 드러내면서 K팝 기업의 수익성은 예전만큼 가파른 성장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화려한 스타보다 안정적인 수익모델, 지속 가능한 성장전략 요구 절실

결국 지금 엔터산업이 맞닥뜨린 과제는 '제2의 성장 공식'을 찾는 일이다. 단순히 음반과 공연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IP 사업 확대는 물론 게임과 웹툰, 드라마, 영화, 캐릭터 산업을 연결하는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의 진화가 필요한 이유다. AI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 제작과 버추얼 아티스트, 팬덤 플랫폼의 글로벌 고도화 역시 향후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현지화 전략도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미 하이브는 미국 시장에서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현지 레이블 체제를 구축했고, JYP와 SM 역시 북미와 일본을 중심으로 현지 그룹 육성 프로젝트를 확대하고 있다. 이제는 한국에서 만든 콘텐츠를 해외에 수출하는 시대를 넘어, 현지에서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고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세계 음악시장의 중심축에 선 K팝을 필두로 한류는 더 이상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세계 문화산업의 중요한 흐름이다. 그러나 산업의 외형 성장만으로 기업 가치가 자동으로 높아지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 시장은 화려한 스타보다 안정적인 수익모델, 일회성 흥행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을 요구한다. K팝이 세계를 석권한 지금, 국내 엔터기업들이 넘어야 할 다음 과제는 '글로벌 인기'가 아니라 '글로벌 비즈니스 모델'이다. 엔터주가의 반등 여부는 그 해답을 얼마나 빨리 찾느냐에 달려있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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