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참 좋겠다"...비인기종목의 뼈아픈 '푸념' [유병철의 스포츠 렉시오] 
  • 유병철 기자
  • 입력: 2026.07.07 00:00 / 수정: 2026.07.07 00:00
한 비인기종목 지도자의 푸념 
축구에 대한 지나친 반응과 소외받은 종목들
고름은 키우지 말고, 바로 짜내야
지난 6월 30일 홍명보 전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이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는 모습. 오전 이른 시간임에도 많은 축구팬들이 입국장을 찾아 북중미 월드컵 졸전을 규탄했다. / 뉴시스
지난 6월 30일 홍명보 전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이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는 모습. 오전 이른 시간임에도 많은 축구팬들이 입국장을 찾아 북중미 월드컵 졸전을 규탄했다. / 뉴시스

[더팩트 l 유병철 전문기자] # 2021년 학폭 미투가 확산될 때 접했는데, 지금도 기억에 또렷한 말이 있습니다. 학폭 피해자의 댓글로 추정되는데, ‘너희는 참 좋겠다. 가해자가 유명인이어서’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 현장 지도자로부터 이를 연상시키는 한탄의 말을 들었습니다. ‘축구는 참 행복한 종목입니다. 정말이지 부럽습니다. 다른 비인기종목에서는 축구보다 훨씬 더한 일들이 벌어져도 관심이 없으니 묻히는 경우가 많거든요."

# 따지고 보니 ‘축구는 참 좋겠다’는 푸념이 나올 법도 했습니다. 한국축구가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당하자,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팬들의 실망과 분노는 홍명보 감독과 정몽규 회장 등 축구협회의 카르텔에 집중됐죠. 무너진 한국축구는 외신도 보도할 만큼 이슈입니다.

여기까지는 뭐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이내믹 코리아’답게 한국은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무능한 지휘관‘ 발언을 하고, 경찰은 2년 묵은 축구협회 고발사건을 재점화했죠. 급기야 최휘영 문화체육부장관이 ’축구 레전드‘ 박지성과 함께 공동위원장을 맡아 K-축구 혁신위원회를 가동하기로 했습니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부진은 큰 충격이었다. 역대급 전력에 조편성도 나쁘지 않아 16강 이상의 성적도 기대됐다. 사진은 서울역사에서 시민들이 32강 진출 실패 뉴스를 접하며 실망하고 있는 장면이다. /뉴시스
한국 축구대표팀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부진은 큰 충격이었다. 역대급 전력에 조편성도 나쁘지 않아 16강 이상의 성적도 기대됐다. 사진은 서울역사에서 시민들이 32강 진출 실패 뉴스를 접하며 실망하고 있는 장면이다. /뉴시스

# 이처럼 뜨거운 축구열기는 결과(성적)지상주의를 전제했다는 점에서 일단 불쾌합니다. 만일 한국축구가 이번 월드컵에서 호성적을 냈다면 어땠을까요? 대통령의 ’숟가락 얹기‘는 칭찬과 격려로 바뀌고, 경찰은 묵은 사건을 영원히 덮지 않았을까요? ’옳고그름‘ 같은 건 모르겠고, 오로지 결과만 중요하다는 우리네 속물근성이 제대로 배어있습니다.

두 번째, 축구에 대한 비이성적인 반응은 ‘축구는 참 좋겠다’는 푸념을 유발할 정도로 공정과 형평의 가치를 상실했습니다. 야구 대표팀이 몇 번이나 WBC에서 졸전을 펼쳤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다른 스포츠에서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정부 주도의 축구발전은 우리가 조롱조로 언급하는 중국의 '축구굴기'처럼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합니다. 1990년대까지 한국에 뒤졌던 일본축구가 백년대계를 세워 ‘스시타카’(스시+티키티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성공한 것은 민간이 자발적으로 추진한 일입니다.

# 더 큰 문제는 축구만 썩은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일단 숫자로 확인해보죠. 2020년 8월 설립된 스포츠윤리센터에 따르면 2025년 인권침해 및 비리 신고는 총 1536건으로 전년 대비 80.5%가 늘었습니다. 단순 상담도 69.3%나 증가했습니다. 이 숫자는 올해 더욱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2025년 11월 ‘가명 조사’가 도입된 이후 신고 및 상담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용은 폭언과 폭력, 과도한 체벌, 지나친 통제, 체육단체 권력층의 비리 및 불공정 행위 등이라고 합니다. 지난 2월 사임한 스포츠윤리센터의 박지영 전 이사장은 최근 <더팩트>에 "스포츠윤리센터에 들어오는 게 이 정도이니, 현실은 더 많을 겁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축구의 월드컵 졸전 말고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체육계 문제는 차고 넘칩니다.

# 숫자 말고 그 속을 들여다봐도 충격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대한체육회의 모 직원은 직장 내 갑질로 정신과치료를 받다가 현재 입원치료 중이라고 합니다. 구체적인 피해자의 진술 확보가 어려워 아직 진위를 판단하기 어렵지만 지인들이 여러 루트로 도움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최근 접한 한 회원종목단체의 전직 고위직원(A씨)이 벌인 일은 정말 황당합니다. 해당종목에서 회장을 등에 업고 막강한 파워를 과시했던 A 씨는 B 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습니다. 수사가 진행 중일 때 B 씨는 ‘빨리 A 씨를 찾아가 합의해라. 그렇지 않으면 큰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C 씨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편지는 B 씨가 보낸 것이었습니다. 사문서 위조였죠. 즉, A 씨는 자기가 고소하고, 사문서를 위조해 상대방에게 자신과의 합의를 종용한 겁니다. 원래의 명예훼손 건은 불송치(무혐의)로 종결됐고, A 씨는 현재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는 전설이 된 사진. 2025년 10월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축구협회 등에 대한 현안질의에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은 홍명보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오른쪽은 이임생 당시 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 / 뉴시스
이제는 전설이 된 사진. 2025년 10월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축구협회 등에 대한 현안질의에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은 홍명보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오른쪽은 이임생 당시 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 / 뉴시스

# 축구협회 문제는 특정 개인의 비리가 아닌,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반론이 막강합니다. "축구와 야구는 인기종목인 까닭에 보는 눈이 많아 권력자들이 함부로 행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비인기종목은 회장 및 측근들의 영향력이 막강합니다.

큰 용기를 내지 않으면 내부고발 등 외부로 알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권력에 저항했다가, 혹은 바른 소리 한 번 했다가 먹고사는 일이 고달파질 수 있거든요. 사정이 이러니 상식을 초월하는 황당한 일들이 많습니다. 알려지지 않을 뿐이죠." ‘축구가 부럽다’는 지도자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 모든 사회분야가 그러하듯 스포츠도 종목별 관심(인기)이 다르고, 그에 따른 사회적 대우가 달라지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문제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참아왔던 화를 폭발하듯 처리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 주체가 정부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축구협회의 구조적 문제는 정몽규 회장이 4연임할 때, 그리고 홍명보 감독이 선임될 때 이미 부각됐습니다. 문체부와 스포츠윤리센터의 조사가 이뤄졌고, 국정감사 때도 질타를 받았습니다. 대한체육회도 논란 속에 정몽규 회장의 4연임을 인준했죠. 월드컵 성적 말고는 이미 나온 이야기들입니다.

이제 와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대책을 모색한다고 하니 웃픈 겁니다. 특히 이런 관심 자체를 받아보지 못한 비인기종목 처지에서는 그마저도 부럽고, 서운할 수밖에 없죠. 문제가 있다면 그때그때 해결해야 합니다. 그냥 놔두면 철없는 배재고 야구선수들처럼 사건은 더 크게 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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