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호의 월드컵 파일] 한때 3골 차로 이기던 일본, 지금 우리를 앞선 '이유'
  • 최순호 전 국가대표
  • 입력: 2026.07.04 00:00 / 수정: 2026.07.04 00:00
한국의 상대가 아니던 일본, 이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나
2026 북중미 월드컵 통해 격차 재확인, 흔들리지 않는 철학 필요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이끈 일본대표팀 선수들이 6월 30일 브라질과 2026 북중미 월드컵 32강전에서 사노 가이슈(24번)의 선제골에 환호하고 있다. 일본은 1-2로 역전패했다./휴스턴=AP.뉴시스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이끈 일본대표팀 선수들이 6월 30일 브라질과 2026 북중미 월드컵 32강전에서 사노 가이슈(24번)의 선제골에 환호하고 있다. 일본은 1-2로 역전패했다./휴스턴=AP.뉴시스

[더팩트 | 최순호 전 국가대표] 1980년 국가대표로 처음 태극마크를 단 뒤 1991년까지 약 12년 동안 일본과 15차례 안팎의 한·일전을 치렀다. 당시 일본은 솔직히 말해 한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대부분 두세 골 차 승리를 거뒀고, 패배는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이 사실상 유일했다. 경기력에서도 기술과 투지, 경험, 자신감 모두 한국이 앞섰다. 당시 선수들에게 일본전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였지만, 동시에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뛰는 경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축구에서는 과거의 승리가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가장 잘 보여준 나라가 일본이다.

1983년 한국이 프로축구 출범으로 국내 리그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을 때 일본은 더 긴 시간을 바라봤다. 일본축구협회는 '일본축구 100년 구상'이라는 장기 프로젝트를 발표했고, J리그 출범과 함께 50년 안에 월드컵 우승국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당시에는 허황된 꿈처럼 들렸다. 그러나 꿈은 선언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계획을 정책으로 만들었고, 정책을 시스템으로 연결했으며, 그 시스템을 수십 년 동안 흔들림 없이 유지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철학의 일관성이었다. 유소년부터 성인 대표팀까지 하나의 축구 철학을 공유했고, 지도자 교육도 동일한 방향 아래 체계적으로 이뤄졌다. 특정 감독이 바뀐다고 대표팀 색깔이 달라지는 일이 드물었고, 연령별 대표팀 역시 단기 성적보다 미래 경쟁력을 우선했다. 한두 살 어린 선수들을 국제대회에 과감하게 출전시켜 실패마저 성장의 자산으로 만들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축구 인프라를 꾸준히 확충했고, 협회는 전문성을 존중하며 장기 계획을 이어갔다. 정책은 정권이나 집행부가 바뀔 때마다 흔들리지 않았고, 현장의 목소리는 행정과 연결됐다. 결국 일본 축구의 경쟁력은 뛰어난 선수 몇 명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구조에서 나왔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일본은 비록 32강에서 브라질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경기 내용만큼은 세계 정상권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빠른 공수 전환, 유연한 전술 변화, 높은 기술 완성도, 그리고 체격의 열세를 상쇄하는 강한 체력과 자신감은 오랜 시간 축적된 결과였다. 패배했지만 일본 축구가 걸어온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충분히 증명됐다.

반대로 우리는 어떤가. 한때 일본을 압도했던 기억은 남아 있지만, 지금은 그 기억만으로 현실을 설명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대표팀 감독이 바뀔 때마다 철학이 달라지고, 단기 성적에 따라 정책이 흔들리며, 유소년과 프로, 대표팀이 하나의 방향으로 연결돼 있다는 느낌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축구는 더 이상 개인의 재능만으로 경쟁하는 시대가 아니다. 시스템과 철학, 그리고 기다림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십년수목 백년수인(十年樹木 百年樹人)'이라는 말이 있다. 나무를 키우는 데도 10년이 걸리지만 사람을 키우는 데는 100년이 걸린다는 뜻이다. 일본은 그 긴 시간을 믿었고 끝내 결실을 맺었다. 우리는 한때 일본보다 강했다는 추억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왜 지금 그들이 우리보다 앞서게 되었는지를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축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준비한 만큼 성장하고, 투자한 만큼 돌아온다. 일본 축구가 우리에게 보여준 가장 큰 교훈은 승패가 아니라 '지속성'이다. 지금 한국 축구에 필요한 것도 새로운 구호가 아니다. 누가 회장이 되고, 누가 감독이 되느냐를 넘어 20년, 30년 뒤를 내다보는 국가적 비전과 흔들리지 않는 철학이다. 그것이 다시 아시아 정상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며, 세계 축구와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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