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최근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벌어진 배재고 야구부 선수들의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응원은 단순한 장난이나 즉흥적인 야유로 넘길 사안이 아니다. 특정 지역과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희화화한 언어가 학교 스포츠 현장까지 스며들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런 표현이 한두 명의 돌출 행동이 아니라 여러 선수가 함께 외친 집단적 응원 형태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이 사건은 비단 배재고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학생 스포츠의 인성교육을 되돌아보게 만든 사건이란 점에서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문제의 장면은 지난 29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발생했다. 배재고는 제81회 청룡기 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에서 광주제일고와 맞붙었다. 배재고가 6-2로 앞선 8회초, 더그아웃에 있던 일부 선수들은 광주제일고를 향해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구호를 반복해서 외쳤고, 일부 선수는 "탱크데이"라고 소리쳤다. 더그아웃에서는 이를 제지하는 움직임이 없었고, 결국 광주제일고 코치진이 심판을 통해 항의하면서 상황은 마무리됐다.
불과 한 달 전 온 나라를 들끓게 만들었던 대기업의 반역사적 마케팅 논란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이다. 그런데도 정정당당한 승부와 상호 존중을 배우고 가르쳐야 할 고교야구의 현장이 혐오와 조롱의 무대로 변질됐다. 상대 학교의 역사적 아픔과 연고 지역을 조롱의 소재로 삼은 학생 선수들의 모습은 스포츠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품격마저 무너뜨렸다.
스포츠는 경쟁을 배우는 공간인 동시에 상대를 존중하는 법을 익히는 교육의 장이다. 승패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곳이 학교 운동부다. 그런데 학생 선수들이 상대 학교를 자극하기 위해 역사적 상처와 지역 정체성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이는 개인의 일탈을 넘어 교육의 실패라고 볼 수밖에 없다.
논란이 커지자 학교는 사과했고, 서울시교육청도 조사에 착수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역시 진상 조사와 함께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사후 조치는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학생들은 결코 진공 상태에서 성장하지 않는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유튜브 쇼츠와 SNS,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수많은 밈과 자극적인 언어를 소비한다. 혐오와 조롱은 재미로 포장되고, 역사적 사건마저 '드립'의 소재로 소비된다. 반복적으로 노출된 언어는 죄의식을 희석시키고, 집단 속에서는 놀이처럼 재생산된다. 이번 응원 역시 그런 사회적 환경이 학교 운동장으로 그대로 옮겨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사회 분위기만 탓할 수도 없다. 학교 운동부는 일반 학생들보다 공동체 의식이 강하고 지도자의 영향력도 절대적이다. 감독과 코치의 한마디는 선수들의 행동 기준이 되고, 선후배 문화 역시 일반 학급보다 훨씬 강하게 작동한다. 그만큼 지도자의 책임도 무겁다.
누군가 처음 "스타벅스 가야지"를 외쳤을 때 이를 즉각 제지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여러 선수가 함께 따라 외칠 정도가 되도록 방치됐다는 사실은 운동부 내부의 인성교육과 지도 체계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스포츠 현장에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다.
미국 프로야구 MLB와 미국 대학 스포츠를 총괄하는 NCAA는 경기력 교육과 함께 다양성, 인권, 차별 금지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한다. 유럽 축구계 역시 인종차별이나 혐오 표현에 대해 경기 중단과 중징계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경기장 내 인종차별과 모욕적 언행을 근절하기 위해 상대 선수에게 모욕적인 말을 은밀하게 전달하는 행위를 엄격히 제재하는 이른바 '비니시우스 룰'을 도입했다. 스포츠가 사회적 영향력이 큰 만큼 선수의 언행 역시 경기력의 일부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제 학교 운동부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체력 훈련과 전술 훈련만으로는 좋은 선수를 만들 수 없다. 역사 인식과 인권 감수성, 스포츠맨십, 지역 다양성 존중 교육을 정규 프로그램으로 의무화해야 한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물론 대한체육회와 교육부, 각 종목 단체가 공동으로 표준 교육 과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대회 참가 조건에 인성교육 이수 여부를 포함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만하다.
징계 역시 교육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잘못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하지만 학생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왜 잘못됐는지를 이해시키고, 피해자에게 진정성 있게 사과하며, 다시는 같은 행동을 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처벌은 끝이 아니라 변화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공자는 "예(禮)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행하지도 말라"고 했다. 스포츠의 예는 상대를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 예가 무너지면 승리 역시 의미를 잃는다.
이번 사태는 배재고 한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혐오와 조롱의 문화가 학교 스포츠 현장까지 침투했다는 경고다. 이번 일을 몇몇 학생의 철없는 행동으로만 치부한다면 같은 일은 또 다른 운동장, 또 다른 학교에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학교 스포츠는 메달을 만드는 공장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교육의 현장이다. 승부는 기록으로 남지만 인성은 평생을 따라다닌다. 이번 사건이 학생 스포츠가 기술 중심에서 인성 중심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이번 논란이 남길 수 있는 가장 값진 교훈일 것이다. 기술은 훈련으로 익힐 수 있지만, 품격은 교육으로만 길러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