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던 25일(한국시간)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남아프리카공화국전의 0-1 패배. 자력 진출이 무산된 채 타국의 경기 결과에 운명을 맡겨야 하는 참담한 현실 앞에서, 축구 팬들이 마주한 것은 비단 성적에 대한 실망감만이 아니다. 경기 직후 "모든 것은 감독의 책임"이라며 툭 던지듯 뱉어낸 홍명보 감독의 건조한 한마디, 그리고 그 너머에 숨겨진 지독한 '유체이탈 화법'과 '사적 욕망'의 민낯에 대중은 깊은 환멸을 느끼고 있다.
반면, 이날 남아공전 후반 교체 멤버로 월드컵 데뷔전을 치른 옌스 카스트로프는 경기가 끝난 뒤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실점 장면을 돌아보면 내가 맡은 구역을 완벽하게 커버하지 못한 명백한 실수가 있었다"며 "죄송합니다"라고 무겁게 자책했다. 사과의 정석이었다. 팬들이 바란 것은 바로 그런 정직한 고개 숙임이었다. 하지만 한국 축구의 권력을 독점해 온 거물급 지도자에게서는 그 어떤 진심 어린 사과도, 책임지는 구체적인 행동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책임을 피해가는 정치적 수사만 남았다.
그는 늘 한국 축구의 구조적 모순과 대한축구협회(KFA)의 장기 플랜 부재를 남의 이야기하듯 비판해 왔다. "일본의 성공은 단기간에 이뤄진 게 아니다"라며 시스템을 성토하고, 일본이 대표팀 감독 체제를 장기간 유지하는 점을 언급하며 한국 축구도 단기 성과만 보기보다 긴 시간의 계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묻고 싶다. 그가 말하는 한국 축구가 주먹구구식 행정으로 퇴보하는 동안, 그 행정의 중심에서 가장 무거운 책임의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누구였는가.
홍명보만큼 한국 축구에서 지도자와 행정가로서 특혜를 누린 인물은 전무후무하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여론의 거센 우려와 반대를 무릅쓰고 감행했던 독단적인 선수 선발 논란은, 당시 동메달 획득이라는 결과 뒤로 잠시 묻어둔다 하더라도,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의리축구' 논란 끝에 조별리그 1무 2패로 침몰했던 장본인이자, 2018년부터 3년간 협회의 실무 총책임자인 전무이사를 맡아 행정 난맥상을 이끈 주역이 바로 그다.
이후 K리그 최고 명문 울산 HD의 지휘봉을 잡으며 엘리트 코스를 독점했다. 남들은 평생 한 번도 꿈꾸기 힘든 월드컵 사령탑을 유일하게 두 번이나 거머쥐는 호사를 누린 한국축구 이너서클의 정점, 그가 바로 홍명보다. 본인이 직접 이끌어온 시스템의 붕괴를 왜 이제 와서 구조의 탓으로 돌리며 혼자만 책임에서 자유로운 척 모면하려 하는가.

이번 월드컵을 대하는 그의 태도 역시 대중의 상식과는 완전히 괴리된, 철저히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울산 팬들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하며 그는 "한국 축구를 위한 마지막 봉사"라는 기만적인 단어를 꺼내 들었다. 세상 천지에 연봉 20억 원에 육박하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행하는 '봉사'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가 이토록 무리하게 지휘봉을 잡은 목적이 2014년의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실패의 낙인을 지워내고,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사적인 조급함 때문이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회 전 "1차 목표는 32강 진출"이라며 조기에 목표치를 낮춰 잡은 행보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유럽 명문 클럽과 세계 무대의 핵심으로 활약하는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등이 포진한 역대 최고의 '황금 세대', 그리고 온 우주의 기운이 도운 최상의 조 편성이라는 기회를, 그는 오직 개인 명예 회복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결과는 어떤가. 남아공전에서 손흥민을 선발 제외하고 오현규를 투입하는 무모한 전술적 오판을 저지르며 0-1 패배라는 처참한 경기력을 노출했다. 체력 안배라는 명분은 있었지만,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던 경기에서 팀의 가장 결정력 있는 공격수를 벤치에서 시작한 선택은 결과적으로 공격의 무게를 크게 떨어뜨렸다. 이전 경기의 일시적 성공에 갇혀, 상대에 대한 정밀한 분석도 없이 그저 요행수만을 바라는 원칙없는 선수 기용으로 일관한 대가는 '월드컵 통산 4패'라는 한국인 월드컵 감독 최다 패배의 불명예 기록이었다. 개인의 불명예를 세탁하려다 오히려 더 큰 무능의 낙인을 스스로 이마에 새긴 셈이다.

리더가 책임을 말하는 태도는 "내 책임이다"라는 말 한마디로 어물쩍 넘어가는 방어기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실패를 직시하고 거취를 포함한 구체적인 행동으로 증명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자신이 누린 권력과 특권은 온전히 챙기면서, 패배의 순간에는 유체이탈 화법으로 선수와 시스템 뒤에 숨는 비겁한 리더십. 홍 감독 개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대한민국 대표팀을 개인 명예 회복의 무대로 활용했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한국 축구의 미래는 늪으로 빠졌고 국민들은 온갖 수모와 굴욕을 감내해야 했다.
지금 한국 축구는 남은 조들의 경기 결과를 지켜보며 32강 진출 여부를 구걸하듯 기다리고 있는 처지다. 냉정하게 말해 이런 무기력한 상태로 32강에 나간들 무엇하겠는가. 조별리그에서 당한 창피와 수모를 본선 토너먼트에서 더 처참하게 반복할 게 뻔하다. 구태여 32강에 목을 매는 것 자체가 한심하며, 설사 극적으로 올라간다 한들 시스템과 전술이 실종된 현 대표팀에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설령 32강에 오른다 해도 지금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결과가 아니다. 말뿐인 책임이 아니라 행동으로 책임지는 리더십이다. 대표팀 감독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의 수사가 아니라, 진심 어린 사과와 거취에 대한 결단이다. 국민들은 더 이상 홍명보라는 사람이 대한민국 대표팀의 사령탑에 앉아있는 모습을 원치 않는다. 오직 개인의 명예 회복에 사로잡혀 팀의 방향성을 잃게 만드는 리더가 벤치를 지키고 있는 것보다, 차라리 사령탑이 비어 있는 '무(無)감독 상태'가 낫다는 것이 지금 축구 팬들과 국민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이제 대중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로만 책임을 외치는 태도에 더 이상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화려한 수사가 아닌, 진솔하고 겸허한 사과와 분수에 맞지 않았던 지휘봉을 내려놓고 사적 욕망의 무대에서 내려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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