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 없으면 어떠랴...최혜진·조민규의 '위대한 꾸준함' [박호윤의 IN&OUT]
  • 박호윤 기자
  • 입력: 2026.06.18 00:00 / 수정: 2026.06.18 00:00
승리의 여신이 외면한 이름들
최혜진, 우승없이 상금 100억원 돌파
조민규, 생애 상금 60걸 중 유일한 '무관(無冠)'
최혜진이 지난해 하와이에서 열린 롯데챔피언십에서 티샷하는 모습. 최혜진은 최근 끝난 다우챔피언십에서 또 다시 정상 문텩에서 주춤,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대홍기획
최혜진이 지난해 하와이에서 열린 롯데챔피언십에서 티샷하는 모습. 최혜진은 최근 끝난 다우챔피언십에서 또 다시 정상 문텩에서 주춤,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대홍기획

[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프로골프의 세계는 잔인하다 할 만큼 이분법적이고 냉정하다. 스포트라이트는 마지막 날 18번 홀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린 단 한 사람(팀)에게만 쏟아진다. 준우승자의 눈물이나 3위의 도약은 월요일 아침이면 이내 잊히고, 시간이 흐르면 우승 횟수만이 선수의 커리어를 설명하는 숫자가 된다.

하지만 과연 이게 정답일까. 때론 우승 숫자가 미처 담아내지 못하는 가치가 있다. 트로피의 광채 보다 오히려 더 은은하고 묵직하게 빛나는 꾸준함이다.

#투어 5승의 US여자오픈 챔피언 미셸 위 위에 최혜진

지난 15일(한국시간) 미 미시건주 미들랜드CC에서 끝난 LPGA투어 다우챔피언십에서 김효주와 짝을 이룬 최혜진(26)은 나흘 내내 좋은 호흡으로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쳤으나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다. 이들은 포섬-포볼-포섬-포볼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대회에서 ‘찰떡 케미’를 과시하며 합계 15언더파 265타를 기록했다.

최종일에는 보기 없이 버디만 5개 기록하는 완벽에 가까운 플레이를 펼쳤지만 지나 킴-야나 윌슨조(이상 미국)가 기록한 17언더파에는 2타가 부족했다. 올들어 2승을 거두며 최고의 순간을 보내고 있는 김효주와 짝을 이뤄 출전한 대회였기에 더욱 기대를 부풀렸지만 다시 한번 정상의 문턱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최혜진(오른쪽)과 김효주가 다우챔피언십에서 퍼팅 라인을 상의하고 있다./LPGA
최혜진(오른쪽)과 김효주가 다우챔피언십에서 퍼팅 라인을 상의하고 있다./LPGA

최혜진은 국내 여자투어를 평정한 선수다. 통산 11승을 거두며 대상, 상금왕, 평균타수상을 휩쓸었고 미국 진출 이후에도 경쟁력은 변함이 없었다. LPGA투어 데뷔 첫해인 2022년 준우승 한차례(CP캐나디언오픈) 포함 10회의 톱10으로 210만여 달러의 상금을 획득, 상금 랭킹 6위에 오르면서 단숨에 투어 정상급 선수로 자리매김한 바 있다.

이후에도 꾸준한 활약으로 총 114경기에서 33차례 톱10을 기록, 692만 8,871달러의 상금을 벌어 들였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00억원이 홀쩍 넘는 액수다. 투어 경력이 4년 반 정도 밖에 되지 않음에도 생애 획득 상금 순위 65위에 올라 있다. US여자오픈 우승을 포함해 투어 5승을 올린 미셸 위(66위, 682만5282달러) 보다 앞선 순위다. 더욱이 미셸 위가 236개 대회에 출전했던 것을 감안하면 최혜진의 꾸준함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직 우승이 없다. 그간 다섯 차례의 준우승과 네 차례의 3위 등 우승 문턱을 여러 번 드나들면서도 아직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실력과 성적, 그리고 쌓아온 기록을 생각하면 실로 안타까운 서사가 아닐 수 없다.

조민규가 올해 GS칼텍스매경오픈 경기 도중 퍼팅라인을 살피고 있는 모습./KGA
조민규가 올해 GS칼텍스매경오픈 경기 도중 퍼팅라인을 살피고 있는 모습./KGA

#우승없이 생애 상금 20억원 돌파, 조민규 꾸준함의 위력

이러한 최혜진의 모습을 보면 자연스레 국내 남자골프의 조민규(37)가 떠오른다. 조민규 역시 한국프로골프계를 대표하는 꾸준함의 상징이다. 2010년에 투어에 데뷔, 올해로 17년차인 그는 한국과 일본(JGTO)을 오가며 철인처럼 버텨왔다. 국내에서만 총 142경기에 출전해 34차례나 톱10을 기록했으며 7차례의 준우승 등 여러 차례 우승 경쟁을 경험했다. 생애 상금은 이미 20억원을 넘어섰고, 역대 상금 순위는 24위다. 특히 2022년에는 GS칼텍스매경오픈과 코오롱한국오픈, 그리고 신한동해오픈 등 메이저급 대회에서만 잇달아 준우승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런데 조민규 역시 최혜진 처럼 아직 우승이 없다.(일본투어에서는 2승이 있슴)

더 놀라운 사실은 KPGA투어 생애 상금 순위 60위 이내 선수 중 우승 경험이 없는 선수는 조민규가 유일하다는 점이다. 그의 톱10율은 23.9%로 생애 상금 1, 2위에 올라 있는 박상현(29.9%, 73회/191경기)과 강경남(35.7%, 109회/305경기)에는 못미치나 3위부터 6위까지 랭크돼 있는 최진호(22.6%), 이태희(21.3%), 김비오(21.8%), 이정환(21.2%) 보다는 앞선다. 다시 말해 우승 없이도 역대 최상위권 상금을 쌓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통계다.

조민규에게도 실로 아쉬운 장면이 많았다. 특히 올해 GS칼텍스매경오픈 최종일 마지막 홀 더블보기는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순간이다. 당시 조민규는 16번홀을 마칠 때 까지 까다롭기로 유명한 남서울 코스에서 무려 61홀 노보기 플레이를 펼치며 3타차 선두를 유지, 생애 첫 승 직전까지 갔었다.

그러나 17번홀(파3) 보기와 마지막 홀 티샷 미스로 촉발된 1미터 보기 퍼팅이 홀을 외면했고 결국 송민혁과 가진 연장에서 패배, 다 잡았던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수 많은 갤러리들의 탄식 속에서 고개를 떨궈야 했던 그 순간은 조민규 커리어를 대표하는 아쉬운 장면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

그리고 달포 남짓 뒤, 최혜진 역시 미들랜드의 18번홀에서 보기 없는 65타를 치고도 준우승에 만족해야 하는 아쉬움을 삼켰다.

조민규가 올해 GS칼텍스매경오픈에서 어프로치 샷을 하고 있는 모습. 조민규는 최종라운드 2홀을 남기고 3타차 선두를 지키지 못하고 연장을 허용한 뒤 송민혁에 패해 첫 승을 올리는데 실패했다./KGA
조민규가 올해 GS칼텍스매경오픈에서 어프로치 샷을 하고 있는 모습. 조민규는 최종라운드 2홀을 남기고 3타차 선두를 지키지 못하고 연장을 허용한 뒤 송민혁에 패해 첫 승을 올리는데 실패했다./KGA

#가장 긴 호흡으로 우승을 향해 가고 있는 진행형

최혜진, 조민규 두 선수의 이야기는 단순히 ‘왜 아직 우승이 없을까’라는 질문보다는 ‘어떻게 우승 없이도 이렇게 오랫동안 정상급 선수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사실 우승은 한 주간의 폭발적인 샷 감각과 운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수년 동안 꾸준히 컷을 통과하고, 상위권 성적을 내고, 상금을 쌓아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능력이다. 부상 없이 버텨야 하고, 슬럼프를 견뎌내야 하며, 매년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을 통해 상위권 자리를 지키는 것은 결코 요행이 개입할 수 없는, 선수의 영혼과 성실함이 만들어 낸 순수한 실력 그 자체다..

물론 모든 스포츠의 목표는 우승이다. 최혜진도, 조민규도 언젠가는 반드시 그 마지막 한걸음을 완성하고 싶을 것이고, 지금까지 보여준 경기력이라면 그 순간이 오지 말란 법도 없다. 그러나 설령 아직 트로피가 없다 하더라도 이들이 쌓아 올린 빼어난 궤적을 평가절하할 이유는 없다.

한번의 우승은 뜨겁게 빛날 수 있다. 하지만 수십 차례의 톱10과 수년간 이어지는 꾸준함은 결코 우연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최혜진, 조민규, 둘의 커리어는 아직 미완성의 서사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긴 호흡으로 우승을 향해 가고 있는 진행형의 이야기다. 그리고 어쩌면 우승보다 더 어렵다는 골프에서의 꾸준함을 이미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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