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작업은 로봇이, 품질은 AI가 예측
숙련공 경험은 데이터로…M.AX 현장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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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코 포항제철소 2고로에서 활용하고 있는 사족보행 로봇. / 포스코 |
[더팩트ㅣ포항·울산=정다운 기자] 지난 11일 찾은 경북 포항 포스코 포항제철소 2고로에서는 쇳물의 열기만으로도 등에 땀이 맺혔다. 강한 열기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풍구의 표면 온도만 200~300도, 내부 쇳물 온도는 1500도에 달한다고 한다.
초여름 날씨까지 겹치자 안전모를 쓴 채로는 가만히 서 있기조차 힘든 작업환경이었다. 이처럼 작업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고온 구역을 개를 닮은 사족로봇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로봇은 열화상카메라와 각종 센서를 활용해 풍구 설비 등 작업장의 상태를 점검했다.
위험 구역을 오가는 사족보행 로봇은 제조업 AI 전환(M.AX)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현장에서는 위험 작업을 로봇이 맡고 품질은 AI가 예측했으며 숙련공의 경험은 데이터로 축적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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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로봇융합연구원에서 연구 중인 포스코 벨트컨베이어 예지보전 로봇. / 정다운 기자 |
◆M.AX 입은 포스코 철강…전통 제조 틀 바뀐다
포항제철소 2고로는 철광석을 쇳물로 만드는 제선 공정의 핵심 설비다. 포항제철소에는 5700t급 2고로 외에도 1만2700t급 3·4고로가 가동 중이다. 5700t급 2고로에서는 1분마다 약 5t의 쇳물이 생산된다.
사족보행 로봇이 점검하는 곳은 고로 하부의 풍구다. 풍구는 초고온 열풍을 고로 내부로 불어넣는 통로로, 고온과 가스 누출 위험 때문에 작업자 접근이 쉽지 않은 대표적 위험 구역이다.
박지성 포스코 포항제철소 1제선공장장은 풍구를 가리키며 "풍구 주변은 고온에 가스 누출 위험까지 있어 점검 자체가 쉽지 않다"며 "지난해 12월부터 사족보행 로봇을 투입해 설비 이상 여부(하루 최대 12번 점검)를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설비도 소리와 열, 영상 데이터를 보면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며 "풍구 데이터를 축적해 이상 징후를 예측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로봇은 열화상카메라와 음향센서, 영상장비를 활용해 풍구 주변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관제 시스템으로 전송한다. 포스코는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비 이상 여부를 사전에 판단하는 예지보전 체계를 고도화하고 있다.
특히 포스코는 산업부 지원 아래 총 175억원 규모의 AI 자율 예지보전·고위험 작업용 모바일 로봇 기술을 개발 중이다. 내년 하반기 현장 적용이 목표다.
현장에서는 철광석과 원료를 운반하는 핵심 설비인 벨트컨베이어 예지보전 로봇도 볼 수 있었다. 무게 약 70㎏에 달하는 롤러 하나만 고장 나도 생산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기존에는 작업자 4명이 설비를 정지시킨 뒤 약 20분 동안 롤러를 교체해야 했다. 하지만 개발 중인 로봇은 벨트를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약 5분 만에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최용준 포스코 연구위원은 "설비 이상을 감지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롤러 교체까지 수행하는 것이 목표"라며 "사람이 위험한 곳에 들어가지 않고도 설비를 관리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의미"라고 말했다.
포스코는 디지털트윈 기반 통합 관제 시스템도 구축 중이다. 실제 고로 설비를 가상 공간에 구현해 이상 징후를 사전에 파악하고 로봇 운영과 연계하는 방식이다.
스마트고로 구축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포스코에 따르면 스마트고로 도입 이후 품질 불량률은 기존 13.3% 수준에서 4.9% 수준으로 개선됐다. 생산량도 연간 190만5000t 수준에서 199만t 수준으로 늘어나며 연간 약 8만5000t의 증산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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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코프로비엠 AMR 점검 영상. / 에코프로비엠 |
◆中 인력 30배 맞서기...에코프로비엠의 AI 승부수
같은 날 찾은 포항 에코프로비엠 양극재 공장은 제철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쇳내 대신 공정 데이터를 보여주는 모니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공장 내부 모니터에는 생산량과 설비 상태, 품질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품질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이제는 AI가 먼저 불량 가능성을 예측한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6층에서 투입된 원재료가 중력을 따라 아래층으로 이동하며 양극재로 만들어진다.
송태현 에코프로 수석은 "길이 65m에 달하는 소성로 안은 깜깜해서 사람이 직접 볼 수 없다"며 "어떤 조건에서 어떤 품질이 만들어졌는지 추적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고 말했다.
양극재 원료는 혼합 공정을 거쳐 700~800도 고온의 소성로에서 화학반응을 거친다. 에코프로비엠은 이 과정에 AI를 접목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하루 평균 25만건의 MES 데이터와 4억7000만건의 설비 데이터가 쌓인다고 한다. 과거 5년 동안 축적된 20TB 이상의 데이터도 AI 학습에 활용되고 있다.
에코프로비엠이 AI 자율제조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이 있다. 송호준 에코프로 대표는 "배터리 산업은 누가 더 많은 엔지니어를 확보하고 시행착오를 줄이느냐의 싸움"이라며 "중국은 배터리 관련 인력이 우리보다 30배 이상 많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AI가 가장 좋은 솔루션"이라며 "AI를 통해 시행착오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여 중국과의 경쟁에서 새로운 전기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고 부연했다.
품질검사실에서는 AI가 먼저 결과를 내놓고 있었다. AI 품질예측 시스템의 예측 결과는 실제 품질검사 결과와 99.62% 수준까지 일치한다. 기존에는 품질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최장 6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실시간 예측이 가능해졌다.
원료가 투입되는 공정 한편에서는 리튬 순도도 실시간으로 분석되고 있었다. 기존에는 하루 두 차례 수동으로 순도를 측정했지만 현재는 실시간 순도분석기를 통해 제조 로트별 투입량을 자동 계산한다. 오차율은 ±0.1% 수준이다.
해당 시스템은 이미 양산라인에 100% 적용됐으며 향후 포항 다른 생산라인과 헝가리 공장 10개 이상 라인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설비 점검도 로봇이 맡는다. 소성 공정을 순찰하는 자율주행 로봇은 약 200개 점검 항목 가운데 70%를 수행할 수 있다. 항목별 세부 점검 포인트까지 합치면 약 900개에 달한다.
에코프로비엠은 제조가공비 30%, 사무업무 50% 절감을 목표로 AI 자율제조 혁신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양극재 업계 최초의 다크팩토리 구현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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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D현대중공업 셀 용접 로봇. / 정다운 기자 |
◆용접 불꽃 튀는데 사람은 없다...HD현대중공업 AI 조선소
지난 12일 울산 HD현대중공업 선각2공장 안에서는 용접 불꽃이 쉴 새 없이 튀어 올랐다. 하지만 용접봉을 잡은 작업자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대신 셀 용접 로봇들이 일정한 속도로 부재를 이어 붙이고 있었다. 선각2공장에서만 21대의 셀 용접 로봇이 가동 중이라고 한다. 조선소 전체로는 55대 안팎의 로봇이 현장에 투입된다.
황상민 HD현대중공업 중형선자동화혁신부 선임은 "비전 AI가 로봇의 눈 역할을 한다"며 "작업물 위치를 정확하게 인식해 로봇에 전달하고 도면 정보와 실제 형상을 비교해 자동으로 용접을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용접에 들어가기 전에는 가상환경에서 먼저 작업이 이뤄지는데, 로봇 동선과 설비 간섭 여부를 시뮬레이션으로 검증한 뒤 현장에 적용할 수 있다고 한다.
황 선임은 "고숙련 기능장을 양성하려면 통상 5년 이상 걸리지만 로봇 오퍼레이터는 약 1년 정도면 운용이 가능하다"며 "품질도 균일하고 생산성도 크게 향상됐다"고 말했다.
특히 기존 도수형 협동로봇은 작업자가 직접 용접 조건과 이동 경로를 입력해야 했지만 레일형 협동로봇은 도면 정보를 기반으로 자동 이동과 용접이 가능하다. 작업자 1명이 관리할 수 있는 로봇 수도 기존 2대 수준에서 최대 6대로 늘었다.
소조립 용접 로봇 시스템은 기존 하루 약 500t 처리하던 공정을 주간 기준 750t, 주야간 운영 시 최대 1000t까지 확대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여전히 조선업은 선박마다 구조와 형상이 달라 자동화가 가장 어려운 산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반면 러그(선박 블록을 크레인으로 들어 올릴 때 사용하는 연결 부재)는 조선소에서 드물게 규격화가 가능한 품목이다. HD현대중공업은 이 점에 착안해 러그 자율제조 시스템을 구축했다.
러그 자율제조 시스템은 지난해 5월 도입됐다. 산업용 로봇 8대와 자율주행로봇(AMR) 2대가 제작과 이송 공정을 맡고 있다. 이날 현장에서는 핸들링 로봇이 부재를 옮기고 용접 로봇이 조립을 이어가고 있었다. 사용이 끝난 러그는 플라즈마 절단 공정을 거쳐 재사용되며 공정 간 이송은 AMR이 담당한다. 기존 6명이 수행하던 작업은 현재 2명이 관리한다고 한다.
HD현대중공업은 기존 수동용접 방식에서 3종 러그 자율제조 체계로 전환한 뒤 현재 43종까지 자율제조 가능 품목을 확대했다. 이는 전체 러그 사용 물량의 약 95%를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다. 러그 자율제조 시스템 도입 이후 생산량은 기존 대비 87.5% 향상됐다.
윤대규 HD현대중공업 상무는 "조선은 자동차처럼 동일 제품을 반복 생산하는 산업이 아니다"라며 "중국과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AI와 자동화는 반드시 필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이어 "국산 로봇과 자체 기술을 활용해 현장 맞춤형으로 고도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HD현대중공업은 올해 말까지 러그 자율제조 시스템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다품종 유연생산 체계를 확대하고 디지털트윈 기술도 적용한다.
나아가 정형 부재 자동화를 넘어 비정형 구조물 자동화와 휴머노이드 활용 기술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 같은 조선소 자동화 기술은 한미 조선협력 프로젝트(MASGA)와 맞물릴 경우 생산성 향상과 글로벌 수주 경쟁력 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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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D현대중공업 러그자율제조 시스템에 도입된 산업용로봇. / 정다운 기자 |
포항의 고로와 배터리 공장, 울산 조선소는 서로 다른 현장이었지만 공통점은 분명했다. 사람이 하던 위험 작업은 로봇이 맡고 있었고, 숙련공의 경험은 데이터로 축적되고 있었다. M.AX는 이미 생산 현장 깊숙이 스며든 모습이었다.
산업부도 M.AX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1조1000억원 규모 예산을 투입해 AI 팩토리와 산업용 로봇, 온디바이스 AI 반도체 개발 등을 지원하며 제조 현장의 AI 전환을 뒷받침하겠단 계획이다.
danjung638@tf.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