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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원 환율에 멈춘 금리인하 시계…한은 다음 카드는 '인상'?
입력: 2026.06.04 11:14 / 수정: 2026.06.04 11:14

원·달러 환율 1530.0원 상승 출발…장중 1520원대 등락
5월 외환보유액 4269억9000만달러…점도표 21개 중 19개 '인상' 전망


코스피가 8900선을 돌파한 후 하락 전환한 2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과 코스피, 코스닥이 표시돼 있다. /송호영 기자
코스피가 8900선을 돌파한 후 하락 전환한 2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과 코스피, 코스닥이 표시돼 있다. /송호영 기자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으면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셈법이 달라지고 있다. 경기 둔화에 대응한 금리 인하 기대는 사실상 후퇴했고 고환율과 물가 불안을 막기 위한 금리 인상 가능성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모습이다. 한은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금통위원 2명이 즉시 인상을 주장한 데다 점도표에서도 대다수 위원이 향후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다음 금융통화위원회의 관전 포인트는 '인상 시점'으로 옮겨가고 있다.

4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주간거래 종가 1516.4원보다 13.6원 오른 1530.0원으로 거래를 시작했다. 이후 1530원 초반대까지 상승하며 지난 3월 31일 이후 2개월여 만에 장 중 1530원대를 기록했다. 환율이 1530원을 넘겨 거래를 시작한 것은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10일(1554.0원) 이후 17년 3개월 만이다. 전날 야간 거래에서도 환율은 1530원을 넘어섰다.

정부도 외환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날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시장상황점검회의에서 "대외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불안심리가 확산하지 않도록 높은 경계감을 가지고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과도한 쏠림에는 필요한 조치를 즉시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환당국의 구두개입 이후 환율은 장중 1520원대 초반까지 내려왔다 다시 1520원대 후반에서 등락 중이다.

환율 흐름은 최근 들어 한층 불안정해졌다. 서울외환시장 기준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2일까지 12거래일 연속 1500원대에서 마감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11거래일 연속 기록을 넘어섰다. 중동 정세 불안과 국제유가 상승, 달러 강세, 외국인 자금 흐름 등이 맞물리면서 원화 약세 압력이 커진 영향이다.

고환율은 물가 측면에서도 부담이다. 원유와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국내 경제 구조상 원화 약세는 수입물가를 끌어올리고 이는 에너지 가격과 공업제품 가격, 서비스 물가로 번질 수 있다. 특히 국제유가가 지정학적 리스크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상황에서는 환율과 유가가 동시에 물가를 자극하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은 입장에서는 경기보다 물가와 금융안정에 더 무게를 둘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달 28일 기준금리를 연 2.50%로 동결했다. 다만 동결의 의미는 이전과 달랐다. 한은은 중동전쟁의 영향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진 반면, 국내 성장세는 우려와 달리 예상보다 확대됐다고 판단했다. 당장은 중동사태의 전개와 파급 영향을 더 지켜볼 필요가 있어 금리를 유지했지만, 금통위 내부에서는 이미 인상 필요성을 제기한 의견이 나왔다. 장용성·유상대 금통위원은 기준금리를 연 2.75%로 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금통위원들의 향후 금리 전망을 담은 점도표도 인상론에 힘을 실었다. 한은이 지난달 공개한 점도표에서 전체 21개 점 가운데 19개가 현재 기준금리보다 높은 수준에 찍혔다. 6개월 뒤 기준금리 전망으로 연 3.00%가 10개로 가장 많았고, 연 2.75%가 7개, 연 3.25%가 2개였다. 현재 금리와 같은 연 2.50%는 2개에 그쳤고, 현 수준보다 낮은 금리를 전망한 점은 없었다. 석 달 전 점도표에서 동결 전망이 우세했던 것과 비교하면 금통위 내부의 무게중심이 뚜렷하게 매파적으로 이동한 것이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취임 후 첫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취임 후 첫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신현송 한은 총재의 발언도 시장의 해석을 바꿨다. 신 총재는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물가와 성장, 환율, 부동산 흐름을 함께 보면 기준금리를 앞으로 인상함으로써 여러 요인을 일관성 있게 관리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물가상승률이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웃돌 것으로 전망되고, 성장은 견조한 개선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이며, 환율 변동성과 수도권 주택가격 및 가계부채 리스크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는 만큼 향후 적절한 시기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의 경제전망도 금리 인하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한은은 5월 경제전망에서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2.6%로 상향했다. 반도체 경기 호조와 IT 수출 확대가 성장세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판단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도 기존 2.2%에서 2.7%로 높였다. 성장률과 물가 전망이 동시에 상향된 상황에서는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 명분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외환보유액은 감소했지만 아직 위기 수준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2026년 5월 말 외환보유액'에 따르면 지난달 말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269억9000만달러로 전월 말 4278억8000만달러보다 8억8000만달러 줄었다. 한은은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왑 등 시장안정화 조치에 주로 기인해 외환보유액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자산별로는 유가증권이 3806억8000만달러로 전체의 89.2%를 차지했고, 예치금은 213억5000만달러, 특별인출권은 157억8000만달러, 금은 47억9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외환보유액이 4200억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외화 유동성 자체가 부족한 상황은 아니다. 다만 고환율 방어를 위한 시장안정 조치가 이어지고, 달러 강세에 따른 기타통화 표시 자산의 미 달러 환산액 감소가 겹치면 외환보유액 감소 압력은 반복될 수 있다. 외환시장 방어 여력은 유지되고 있지만, 환율 1500원대 장기화가 물가와 자본유출 우려를 자극하는 점은 한은의 통화정책 부담으로 남는다.

증권가에서는 한은의 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한 가운데 환율이 연말로 갈수록 하향 안정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26일 발간한 하반기 외환 전망 보고서에서 원·달러 환율 전망을 기존 우상향에서 우하향으로 변경했다. 권 연구원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 호조와 당국의 정책적 노력을 감안할 때 원·달러 환율이 연내 1400원 중반대로 하향 안정화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현재 환율은 매크로와 수급 개선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2분기부터 4분기까지 원·달러 환율 전망치를 각각 1480원, 1460원, 1440원으로 제시했다. 해당 보고서에선 한은이 올해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한 차례 인하하면서 한미 기준금리 역전 폭이 줄어들 가능성도 제시됐다.

이는 현재의 고환율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렵지만 통화정책과 외환당국의 대응이 원화 약세 압력을 완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시장에서는 환율이 1500원대 초중반에 머무는 동안 한은이 금리 인하로 방향을 틀기는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금리 인하가 원화 약세와 수입물가 상승 압력을 더 키울 수 있어서다.

다만 다음 금통위에서 곧바로 기준금리 인상이 단행될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금리 인상은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을 키워 내수 회복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동 정세와 국제유가 흐름, 반도체 경기 지속 여부, 근원물가의 파급 정도도 더 확인해야 한다. 한은 역시 금리 인상의 시기와 속도는 앞으로 입수되는 데이터를 토대로 물가상승 압력, 경기 개선 흐름, 금융안정 상황을 점검하면서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환율이 1500원대에서 장기화되면 한은 입장에서는 물가와 금융안정을 동시에 봐야 해 금리 인하를 선택하기 어려워진다"며 "다만 실제 인상까지는 내수 부담과 가계부채 이자 비용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만큼 환율과 국제유가 흐름이 다음 금통위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seonyeo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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