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양극화①] 중소의 기적을 꿈꾸는 것조차 사치
  • 정병근 기자
  • 입력: 2026.05.25 00:00 / 수정: 2026.05.25 00:00
'조 단위' 매출에 '수천 억' 수익 공룡 기획사
성과 내도 다음을 걱정해야 하는 중소
"이제 중소는 없다"고 확신하는 업계
K팝 업계는 극소수의 대형 기획사와 대다수의 중소 기획사의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되고 있다. 거의 모든 업계 관계자들이 2~3년 내 많은 중소 기획사가 무너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더팩트 DB
K팝 업계는 극소수의 대형 기획사와 대다수의 중소 기획사의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되고 있다. 거의 모든 업계 관계자들이 "2~3년 내 많은 중소 기획사가 무너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더팩트 DB

K팝이 글로벌 음악 시장의 중심으로 들어가면서 역사상 유례없는 호황기를 누리고 있지만, 어느 한편에서 보면 대형 기획사 '그들만의 잔치'다. 시장은 넓어졌지만 진입장벽은 더 높아졌고, 그 앞에서 중소 기획사는 점점 작아진다. 문제라는 게 아니라 K팝의 현 상황이 그렇다. 기적을 꿈꾸는 것조차 사치가 된 현실을 들여다 봤다. <편집자 주>

[더팩트 | 정병근 기자] 하이브는 2026년 비수기인 1분기 매출 6983억에 조정 영업이익 585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약 40% 증가했다. 또 같은 기간 SM엔터테인먼트는 매출 2791억에 영업이익 386억 원이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전년 동기 대비 약 20% 증가했다. 국내에서 가장 덩치가 큰 두 대형 기획사의 실적이다.

K팝의 글로벌 영향력이 막강해지면서 파이가 커졌고 이에 따라 대형 기획사들은 매년 '조 단위'의 매출을 내고 '수천억 원'의 수익을 거두고 있다. K팝 산업 최대 호황기라 할 만하다.

반면 다른 한쪽에선 소속 그룹의 다음 앨범 제작비를 확보하기 위해서 오늘도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제작비와 마케팅비에 손익분기점 맞추기가 어렵고, 초기 투자금은 생각보다 빠르게 바닥을 보인다. 어떻게 더 좋은 앨범을 만들지 고민하는 동시에 어떻게 하면 비용을 조금이라도 더 줄일 수 있을지 머리를 싸맨다.

K팝 산업이 호황기라고 하지만 제작자 대부분의 모습은 후자에 가깝다. 4~5년 전만 하더라도 잘 만들면 띄울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그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 됐고 이젠 그 작은 불씨마저 사실 다 꺼졌다. 대형 기획사도 중소 기획사도 이렇게 말한다. "이제 중소의 기적은 없어요."

2025년 써클차트 연간 앨범 차트를 보면 대형 기획사로 채워져 있다. 100만 장 이상 판매고를 올린 앨범 20개는 모두 그렇고 약 45만 장인 50위로 범위를 넓혀도 더보이즈, 지드래곤, 클로즈유어아이즈, 이찬원, 에이티즈, 제니, 플레이브, 백현 7팀만 비 대형 기획사다. 약 20만 장인 100위까지 해도 중소 기획사는 10팀을 겨우 넘긴다.

국내 음악 시상식 출연 가수 라인업을 보면 더 극명하게 대비된다. 90% 이상이 대형 기획사 소속이고 주요 수상 부문 트로피는 모두 그들 몫이다.

하이브는 방탄소년단(사진) 컴백 효과에 신인 아티스트들의 가파른 성장세까지 더해져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전통적 비수기에 매출 7000억 원에 근접하는 사상 최대 1분기 실적을 냈다. /빅히트 뮤직
하이브는 방탄소년단(사진) 컴백 효과에 신인 아티스트들의 가파른 성장세까지 더해져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전통적 비수기에 매출 7000억 원에 근접하는 사상 최대 1분기 실적을 냈다. /빅히트 뮤직

대형 기획사는 상장사이거나 거대 기업이라는 모체가 있는 경우로 구분했다. 사실 이들 중에서도 차이는 꽤 크다. 하이브 SM JYP 3개 회사가 거의 독식이다. 또 순위권에 있는 비 대형 기획사 소속 아티스트들 중 대부분은 대형 기획사에서 데뷔해 최정상의 자리에 오르고 확고하게 입지를 다진 이들이다. 순수 중소 출신은 찾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들이 꼽는 마지막 중소의 기적은 KQ엔터테인먼트에서 2018년 론칭한 보이그룹 에이티즈다. 이들은 앨범을 100만 장 넘게 팔고 수십만 명 규모의 월드 투어를 한다. 대형 기획사의 최정상 그룹과도 어깨를 나한히 하는 수준이다. 이들이 데뷔한 지 8년이다. 이들 이후 그 비슷한 영역에 진입한 팀은 전무하다.

대형 기획사는 예전에도 있었다. 일명 빅3라 불리는 SM JYP YG가 오랫동안 K팝 시장을 이끌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중소 기획사도 해볼 만했다. 2013년 데뷔한 방탄소년단도 당시엔 중소 기획사였던 빅히트 뮤직 소속이다. 그때만 해도 실력이든, 음악이든, 콘셉트든, 마케팅이든 뭔가를 차별화할 틈새가 제법 있었다.

이젠 그 틈이 좁아지다 못해 희망의 빛 한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정도가 돼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K팝의 세계화가 이를 부추겼다. 시장 확장으로 대형 기획사가 더 거대화되면서 연습생 선발부터 인큐베이팅, 제작, 마케팅, IP(지식재산권) 활용까지 원스톱화했고 이는 점차 더 빠르고 굳건해져 도저히 넘기 어려운 높은 벽이 생겨버렸다.

대형 기획사에서 오랫동안 매니지먼트를 비롯해 신인 발굴 및 기획 제작 업무를 했고, 지금은 독립해 아이돌 그룹을 제작하는 한 기획사 대표 A 씨는 "양극화가 너무 심하다. 허리가 아예 없다. 이미 그러고 있지만 향후 2~3년 안에 중소들이 더 많이 무너질 거다. 확률 낮은 게임에 들어와 있고 1~2년이 그나마 마지막 기회일 거 같다"고 말했다.

그룹 에이티즈는 중소 기획사의 기적이라 불린다. 이들은 2018년 데뷔했다. 이들 이후 중소의 기적은 더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KQ엔터테인먼트
그룹 에이티즈는 중소 기획사의 기적이라 불린다. 이들은 2018년 데뷔했다. 이들 이후 중소의 기적은 더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KQ엔터테인먼트

이는 중소의 생각만이 아니다. 한 대형 기획사 임원 B 씨 역시 "안타깝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중소 기획사가 제작을 지속하고 경쟁을 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 대형과 중소의 양극화가 점점 더 심해질 텐데 결국에는 큰 회사들 중심으로 K팝 산업이 재편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바라봤다.

중소가 넘기 힘든 가장 높은 벽은 규모, 즉 돈이다. 대형 기획사들이 제작비의 기준을 계속 끌어올리면서 돈은 경쟁력 그 자체가 됐다. 돈이 다는 아니지만 일정 수준 이상 차이가 나면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된다. 특히 앨범 판매량과 직결되는 팬덤 확보가 관건인 보이그룹은 소위 '때깔'이 매우 중요한데 그 차이를 가르는 게 돈이다.

K팝 아이돌의 앨범과 무대는 해마다 스케일이 커진다. 뮤직비디오와 각종 사전 콘텐츠를 포함한 앨범 제작비로 대형 기획사는 중소의 4~5배 이상을 쓴다. 그 중소도 어느 정도 자금력이 있고 앨범 제작에 꽤 많은 돈을 쏟아붓는 곳에 비해서다. 제작자의 노하우와 역량만으로 온전히 좁히기 어려운 차이다.

걸그룹이 더 강세를 보이는 음원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소 아이돌의 곡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건 하늘에 별 따기다. 다양한 툴을 활용한 마케팅과 바이럴이 동반되지 않으면 청자들에게 도달하기 어려운데, 그 마케팅과 바이럴은 아이디어의 영역이 아니라 인프라와 돈 싸움이다.

A 씨는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자금 문제로 못 하는 것들이 많다. 지금은 크게 써야 크게 먹는 구조"라며 "큰 회사는 큰 회사대로 하고 작은 회사는 작게 투자해서 수익을 내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작게 쓰면 아예 빛도 못 보고 매출을 올리기 힘들다. 그래서 비용을 늘려봐야 대형을 따라갈 수 없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지적했다.

그렇다 보니 업계 관계자 '거의 모두'가 2~3년 내에 중소 기획사가 다 무너질 거라고 전망한다. 화려하게 빛나는 글로벌 K팝 이면의 어두운 그림자다. <계속>

kafka@tf.co.kr
[연예부 | ssent@tf.co.kr]

<관련 기사>

[K팝 양극화②] 넘을 수 없는 벽..돈을 벌어도 돈이 안 된다

[K팝 양극화③]"크게 써야 크게 먹는 시장..틈새조차 사라져"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