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이우탁 칼럼니스트] 이달 초 여수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에서는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 온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은 미디어의 대응이 가장 큰 주제로 다뤄졌다. 거의 모든 세션 토론들이 AI 이슈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디지털-AI시대, 공영미디어의 혁신은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주제가 특히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발제를 한 한림대 최영재 교수는 ‘포털 포획(Portal Capture)’이라는 용어로 우선 청중의 관심을 모았다. 그는 "한국 언론-미디어는 AI 기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이전부터 이미 신뢰도 하락, 시장 왜곡, 경영난, 저널리즘 가치의 약화 등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고 진단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디지털 기술 확산 속에서 언론은 포털 중심의 뉴스 유통 구조에 깊이 포섭돼 독립적 공론장 주체에서 플랫폼 생태계의 콘텐츠 공급자로 전락했다고 그 이유를 지적했다. 이를 ‘포털 포획’이라 부른 것이다.
필자도 30년간의 취재현장에서 실감했지만 사실 한국 언론의 지난 25년간의 궤적을 큰 줄기로 정리해보면 상업 플랫폼이 주도하는 ‘뉴스 유통’ 구조에 종속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포털과의 관계를 주도적으로 설정하지 못하면서 한국 언론은 언론의 본연의 기능인 편집권을 사실상 상실했다고 고백해야 한다.
그런데 AI기술의 급속한 확산은 이런 구조적 종속을 새로운 형태로 재현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최 교수의 표현대로 ‘AI 포획(AI Capture)’이 우려되는 것이다. 이미 글로벌 플랫폼은 음성인식이나 번역, 데이터 분석, 클라우드 연산 등 핵심 AI 기술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으며, 웬만한 언론사들은 이를 활용하지 않고서는 뉴스 생산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AI 생태계에서는 인간 편집자가 아니라 알고리즘이 뉴스의 가치를 판단하고 배치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을 의미할 지도 모른다. 자연스럽게 AI 시대를 좋은 저널리즘과 연결하려는 혁신 사례는 없을까에 관심이 쏠렸는데, 최 교수를 비롯해 언론학자들이 주목한 사례는 영국 언론의 AI 대응이었다.
BBC 방송과 파이낸셜 타임스, 가디언, 데일리 텔레그래프, 스카이뉴스 등 영국의 주요 언론들은 올 2월 SPUR(언론사 사용권리 표준 연합. Standards for Publisher Usage Rights) 라는 연합체를 구성했다. 정치적 지향점이나 타깃 독자층이 다르더라도 ‘공동으로, 힘을 모아’ AI 대응을 하자는데 뜻을 모은 것이다.
초국가적인 거대 AI 기업들이 언론사의 기사를 마음대로 쓰지 못하게 하고, 뉴스 사용 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정당한 값을 치르게 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SPUR에 참여한 언론사 대표들은 전 세계 미디어 리더들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을 통해 글로벌 연대를 촉구하면서 "AI 개발자에게는 고품질 저널리즘에 대한 합법적 접근 경로를 제공하는 동시에, 언론사에는 실질적인 콘텐츠 통제권 확보와 정당한 가치 보상을 보장하자"고 호소했다.
BBC 방송은 또 뉴스 유통의 최강자로 등장한 유튜브와도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면서 디지털 환경에 부합하는 새로운 형태의 공공서비스미디어(PSM)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공영미디어가 단순한 콘텐츠 공급자를 넘어 '뉴스 생태계 설계자(Architect)'로 전환하려는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영국 언론들의 AI 혁신 노력을 보면서 포털 포획에 이어 다시 AI 포획 위기에 직면한 한국 언론들의 현실이 안타깝게 다가왔다.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한국의 뉴스 생태계가 과연 AI 시대를 맞아 '굿 저널리즘'의 길로 나아갈 담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는 없을까, 학회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머리가 무거웠다.
